민주당 ‘925조 퍼주기’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통령 고발…대통령실 “선거와 관계없어, 이후에도 계속할 것”
#민주당, 윤 대통령 고발
민생토론회가 처음 시작된 곳은 경기도 용인시다. 1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용인 중소기업인력개발원에서 “정부와 국민 사이에 핵이 터져도 깨지지 않을 만한 아주 두툼한 그런 콘크리트 벽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깨야 됩니다”라며 대통령실 신년 업무보고를 현장에서 민생토론회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주식시장의 전자 시스템이 구축될 때까지 공매도 금지 조치를 풀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 7일까지 총 18차례의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민생토론회가 열린 곳은 서울(영등포구·동대문구·성동구), 경기(용인·고양·수원·의정부·판교·성남·하남·광명), 영남(부산·울산·창원·대구), 충청(대전·충남), 인천 등이다. 민생토론회에 참석한 지자체장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에서 지역 현안 공약을 발표했다. 1월 민생토론회에서는 △활력 있는 민생경제 공약(용인·1월 4일) △30년 이상 노후 주택 안전진단 완화를 통한 재건축 활성화(고양·1월 10일) △622조 원 규모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구축(수원·1월 15일)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서울 영등포·1월 17일) △단통법 등 생활규제 개혁(서울 동대문·1월 22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F 노선 신속 추진 약속(의정부·1월 25일) △1500여 개 행정서비스 구비 서류 디지털화,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의무화, 게임 소액 사기 근절, 매출 이후 서비스 조기 종료 철저 대응(성남 판교·1월 30일) 등을 약속했다.
2월 민생토론회에서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성남 분당·2월 1일) △‘늘봄학교(방과 후 돌봄 시스템)’ 전국 확대(하남·2월 5일)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서울 성동·2월 8일) △3대 민생 패키지 정책 발표(일자리, 인재 유치, 생활 환경 개선), 금융·물류 특구 지정 약속, 산업은행 이전 방침 재확인(부산·2월 13일) △전일제 이공계 대학원생 지원 등 과학기술 발전 지원(대전·2월 16일) △그린벨트 규제 완화, 농지 규제 완화(울산·2월 21일) △20조 원 규모 원전 투자 약속, 창원국가산업단지 개발(창원·2월 22일) △군사보호구역 해제(서산·2월 26일) 등을 공약했다.
3월에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 등 대구발전 공약(대구·3월 4일) △국가장학금 대폭 확대, 청년도약계좌 혜택 강화, 문화활동비 소득공제, 출산지원금 전액 비과세, 양육비 선지급제 조속 도입(광명·3월 5일) △인천 첨단복합항공단지 조성(인천·3월 7일) 등을 주제로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강원·호남 지역에서는 민생토론회가 열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강기정 광주시장은 2월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남, 충청권에서만 민생 탐방을 할 게 아니라 호남 민생도 민생인 만큼 광주·전남에도 와서 인공지능(AI) 사업이 어떻게 됐는지, 한국건설 등 건설회사가 어떤 어려움에 부닥쳤는지 살펴야 한다”며 “영남과 충청에서만 민생토론회가 반복적으로 진행된다면 호남 패싱이자, 자칫 선거개입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을 마지막으로 호남 지역을 방문하지 않았다. 광주·전남 지역은 2023년 10월 목포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가 마지막 방문이었다. 강원도의 경우 1월 19일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강릉을 찾은 게 마지막이었다. 대통령실은 3월 중 호남과 강원 지역 방문 일정을 조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구실로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3월 6일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지금 두 달째 관권선거를 이어가고 있다”며 “국민을 현혹하는 선심성 공약 살포, 그리고 불법선거운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 원내대표는 “아무런 법적 검토나 비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누가 어떻게 책임질지 답해야 한다”며 “두 달 동안 약 925조 원의 퍼주기 약속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선 1월 24일 민주당은 관권선거저지 대책위원회(위원장 서영교)를 출범했다. 대책위는 3월 7일 “윤 대통령은 토론회를 명목으로 전국을 다니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며 불법 관권선거를 자행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대책위는 윤 대통령이 선거법 제9조와 제85조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선거법 제9조는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돼 있다. 제85조는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2월 16일 대전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약속한 ‘전일제 이공계 대학원생 지원’을 약속한 대목이 특히 문제가 된다고 본다.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기부행위 대상자와 기부행위 금액을 특정해 공표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가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모든 전일제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석사는 매월 최소 80만 원, 박사는 매월 110만 원을 빠짐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3월 7일 대통령실은 “민생토론회는 선거와 관계없이 선거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선거용이라는 주장은 여러모로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925조 원 퍼주기 주장은) 사실 왜곡”이라며 “대부분은 자발적인 민간 투자, 또는 민자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고 중앙 재정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복되는 대통령 선거개입 논란
대통령 선거개입 논란은 역대 정부마다 나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에 표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이 발언을 두고 노 전 대통령이 불법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며 탄핵을 추진했다. 국회는 노 전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결의했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5월 14일 기각할 때까지 64일 동안 대통령 탄핵 정국이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8대 총선 4일 전 은평뉴타운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이 지역은 이 전 대통령 측근인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던 선거구다. 또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을 동원해 선거개입을 시도했다.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 등 3500명을 동원해 댓글 조작을 자행했다. 법원은 국정원 트위터 글 등 11만 건이 선거개입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붉은 옷을 입고 대구를 방문했다. 그다음에는 격전지로 꼽히던 부산을 찾았다. 이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의 상징색인 붉은 옷을 입고 지역을 방문했다는 점 때문에 선거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100만 원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다. 당시 현금살포를 통한 선거개입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2021년 2월에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부지를 찾아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고 발언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채진원 경희대학교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선거법은 정치 활동과 선거운동을 구별한다. 민생토론회가 정치 활동은 맞지만, 그것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선거운동이라고 보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다”며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이) 누군가를 특정해서 지지하거나 (낙선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선거운동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