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수사단 설치·합동수사 방안 검토…전문직 집단 처벌 전례 없어 부담
#경찰의 '자신감'
의·정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경찰도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의사 집단행동과 관련한 고발사건을 놓고 전국 일선에 '엄정 대응'을 직접 지시한 한편, 서울경찰청은 주말인 3월 9일까지도 노환규 전 의협 회장과 의료계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 글쓴이 등을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력을 내고 있다. 이 가운데 '메디스태프'에다 집단행동 불참 동료를 '참의사' 등으로 비꼰 글을 올린 작성자는 경찰에서 자신이 글을 쓴 행위까지만 인정했다고 전해졌다.
윤 청장은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 수천 명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고발이 잇따를 상황까지도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청 본청이 선제적으로 수사 방안을 마련하고, 집단행동 주동자는 각 시·도경찰청이 맡으며 일반 전공의는 일선 경찰서가 맡도록 하는 등 큰 틀의 가이드라인도 동시에 제시했다. 이에 각 시·도경찰청은 광역수사단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또 일선서에서도 지능팀을 중심으로 한 전담팀을 꾸리거나, 지능·경제팀의 합동수사 방안 등을 살피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예고해온 절차를 착실히 밟고 있다. 3월 4일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을 압수수색하며 추가 강제수사를 암시한 바 있는데, 실제 꼭 일주일 뒤인 3월 11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곳은 이른바 '집단사직 불참 전공의 블랙리스트 작성 지침' 게시글이 작성된 사이트다. 경찰은 의협이 해당 지침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의심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다. 다만 의협은 이를 위조문서로 규정하며 게시자를 동시에 고발했다.
아직까지는 경찰의 자신감 있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의협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한 업무방해 교사 혐의는 적용 여부가 아주 간단하다"며 "이들이 가령 투쟁 지침 등을 만들거나 다른 방법을 동원해 근무지 이탈자를 지원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병원의 정상 업무를 방해했다면 그 자체로 혐의가 성립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구체적인 지침이 아니어도 SNS(소셜미디어) 등에 올린 글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업무방해와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고발 내용에 따라 적용을 검토할 수 있는 혐의는 더 있다. 한 의료기관에 속한 변호사는 "집단사직을 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겠다'는 등의 발언은 단체의 위력을 과시해 환자들을 겁박하는 행위로 특수협박죄를 다툴 수 있다"며 "의협 간부들이 '정원확대 강행 시 의사들은 진료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 역시 묵묵히 의료현장에서 진료 행위를 하는 선량한 의사들을 향한 명예훼손으로 볼 만한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불안감'
그러나 경찰로서는 앞으로가 진짜 문제다. 윤 청장의 가정대로 전국에서 전공의 수천여 명 등을 대상으로 한 고발이 잇따르면 현실적으로 처벌이 가능할지가 불확실하다.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표면상으로는 '일신상의 이유' 등을 들어 사직서를 제출한 까닭에서다. 의사 증원에 항의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실제 개인 사정 때문에 사직서를 냈다고 주장하면 혐의 입증이 까다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혹은 주변의 강요 등으로 원치 않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주장해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피해자로 볼 여지도 있으므로 경찰의 개별적인 판단이 매우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전문직 피의자 수천 명을 마치 일망타진하듯 집단 처벌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서울의 한 경찰관은 "정부의 업무복귀 명령을 따르지 않은 점을 들어 의료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할 수야 있다"면서도 "다만 2000년 의약분업 등 과거 사례를 보면 검찰에 사건을 넘겨도 실제 처벌된 인원은 집단행동 주동자급에 그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국 경찰서에서 송치 여부가 제각각 다르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며 "법 적용이 일관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 등 또 다른 논란을 낳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물론 다른 분석도 존재한다. 과거 의약분업 사태 때 직접 의사들을 수사했던 한 지방경찰청 소속 한 경찰관은 "결국 정부 등 윗선의 뜻이 중요하지 않겠나"라며 "지휘부가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지휘를 할 수 없지만, 현재는 포괄적 지휘 형태로 일종의 방침을 내린 격인데 사실상 전부 송치하란 뜻으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바라봤다. 그는 이어 "의약 분업 사태 당시에는 의협 지도부를 제외한 일반 의사들 상당수가 수사 과정에서 반성의 기미를 보여 선처됐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의사 부재로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했다면 상황이 더 꼬인다. 의료진에 과실치사 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등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매우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 당연히 전망도 엇갈린다. 치료가 긴급한 환자를 당장 옆에 둔 채로 이탈했다면 범죄가 되겠지만, 이탈 이후 의사부족으로 환자가 사망했다면 형사가 아닌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일부 경찰들은 '우선 송치해 검찰 및 재판 등에서 다퉈보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직 정부는 집단행동에 동참했다는 이유로는 전공의 등을 고발하지 않았다. 복귀한 전공의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일부 의사들에 대해서만 형사고발까지 예고했다. 단,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반복되는 집단행동을 막기 위해 '법과 원칙'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도 "의료법 제2조는 의료인이 국민보건 향상을 위한 사명을 가진다고 명시했다"며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들도 의료인으로서의 직업정신 및 사회적 책임 등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강성파' 김택우·노환규·주수호 누구?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주도했다는 등의 혐의로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김택우 의협 비대위 위원장과 노환규 전 의협 회장,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의료계 투쟁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부터 목소리를 높여온 강성 인사라는 공통된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가 의약분업 파업에 따른 처벌 경험을 토대로 전공의들에 복귀를 권고해 눈길을 끈 바 있으나, 김택우·노환규·주수호 3명의 인사들은 오히려 당시 경험을 계기로 더 강성적인 면모를 드러내 왔다.
김택우 위원장은 경상국립대 의대 출신 외과의사다. 의약분업 투쟁 당시 강원도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서울 여의도 집회에 참석해 강원도 연설자로 나서 이목을 끌었다. 그 후로도 2023년 간호사법 강행을 규탄하며 혼자 1인 시위를 이어 갔고, 강원도 안에서만 12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해 주목 받았다.
노환규 전 회장은 연세대 의대 출신 외과의사다. 의협 안에서도 강성 중 강성으로 꼽힌다. 그에게 의약분업은 늘 투쟁의 기준이었다. 2012년 포괄수가제, 2013년 원격의료 도입이 거론된 때도 '의약분업보다 심각한 사태'라는 등의 명분으로 거리투쟁 등을 이끌었다. 노 전 회장은 특히 2013년 의협 회장을 맡아 원격의료 도입 등에 반대하며 의사 2만여 명이 모인 궐기대회 현장에서 자해 소동까지 일으켰다. 이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찾아가 원격의료는 물론 의약분업도 파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011년에는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 경만호 당시 회장에게 액젓 등을 투척한 혐의로 윤리위원회에 제소되는 등 거친 행보가 뚜렷했다.
주수호 홍보위원장은 연세대 의대를 나온 외과의사다(관련기사 [단독] 의사협회장 출마 주수호 홍보위원장, 과거 음주운전 사망사고 전말). 의약분업 당시에도 언론을 담당하는 공보이사였지만, 배후에서 투쟁을 이끄는 핵심 인물로 꼽혔다. 당시 의료계는 폐업을 수단으로 정부에 저항했는데, 이를 주도하는 인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경찰 수사를 제대로 받지 않고 도주했으나, 부산 민락동의 한 PC 게임방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결국 붙잡혀 조사에 임했다. 주 홍보위원장 역시 2007년부터 2년 동안 의협 회장을 역임했다. 의약분업 사태 때 맺어온 다양한 네트워크가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는 2012년 당선된 노 전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해당 3인은 최근 전부 경찰 조사를 받고 나와 '전공의 사직 등을 유도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택우 위원장은 3월 12일 출석해 "전공의 후배들의 자발적 사직은 어느 누구의 선동이나 사주로 이뤄진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환규 전 위원장은 3월 9일 조사에서 "전공의 단체와 마주한 적도 없다"고 했다. 주 홍보위원장은 3월 6일 경찰에서 "아무런 혐의도 나올 게 없다"고 자신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