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배상비율에서 가감하는 방식, 평가기준 모호…향후 소송보다는 장기간 협상으로 갈 가능성
금감원 기준안은 기본배상비율에 가감항목을 적용해 최종 배상비율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우선 법에서 정한 판매사의 의무인 적합성(적정성) 평가나 설명 의무 위반 시 20%포인트(p), 금지 사항인 부당 권유에 해당하면 25%p를 배상하도록 했다. 3가지 사항 중 2개에 해당하면 30~35%p, 셋 모두 해당하면 40%p로 기본배상비율이 높아진다.
또 내부통제 마련 의무에도 제도를 부실하고 부적정하게 운영한 책임에도 10%p의 배상 비율을 적용했다. 여기에 예금목적고객(10%p), 금융취약계층(5~15%p), 최초 투자(5%p) 판매과정 부실(5~10%p), 비영리공익법인(5%p) 등에 해당하면 배상 비율을 가산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투자경험(2~25%p)이 있거나 투자금액이 많거나(5~15%p) 금융상품 이해능력(5~10%p)이 높다면 배상 비율이 낮아진다. 이론적인 배상 가능 범위는 0~100%다.
그런데 가감항목을 잘 뜯어보면 대부분 기본 항목과 중복된다. 법에서 정한 적합성(적정성) 평가항목은 투자목적, 재산상황, 투자경험 등이다. 예금목적, 금융취약계층 항목과 겹친다. 가입금액이 크다고 일괄적으로 배상 비율을 깎는 방식 역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금융상품 이해능력을 어떻게 평가할지 방법과 기준도 모호하다.
또 자본시장법은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투자한 돈에 회수한 돈을 뺀 금액을 손해액으로 추정해 배상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설명의무 위반만으로 최대 100% 배상도 가능한 셈이다. 종합하면 은행은 배상 비율을 낮출 수 있고 투자자는 더 많은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개별 투자 건마다 상황도 다르다. 신속한 사태 해결을 위한 자율배상안이지만 협의도 합의도 모두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소송을 택하기도 애매하다.
은행 입장에서는 배상액이 최대 ‘조 단위’인 만큼 과잉 배상에 따른 주주들의 배임 추궁을 피하기 위해서는 소송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파생결합펀드(DLF) 사건에서도 자율배상이 이뤄졌지만 배임 추궁은 없었다. 금감원 조정안을 거부하면 향후 이뤄질 제재 수위가 낮춰질 여지가 사라진다. 최고경영자(CEO)는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연임이 제한된다.
거액의 과태료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 2021년 3월 25일 이전에 부당권유 금지를 위반했다면 자본시장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자율배상을 거부해 법으로만 다투면 자칫 형사처벌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투자자들 역시 소송을 택한다면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법원 판결이 자율배상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과거 DLF 때보다 못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DLF는 은행이 손실의 70~80%를 배상했다. DLF는 원금손실률이 80∼90%에 달했다. 높은 배상비율에도 20~30%의 손실은 감수해야 했다. 홍콩 ELS는 원금의 50%가 남아있다. 손실의 40~60%만 배상을 받아도 투자자 손실 부담은 20~30%가 된다. 투자자 책임 원칙 훼손 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정 부분 투자자 손실 부담은 불가피하다.
한편 은행들이 자율배상에 응해도 당장 배당이나 주가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증권가의 평가다. 홍콩H지수 ELS의 올해 예상 추정손실액은 5조 8000억 원 가운데 KB국민은행이 약 3조 원을 차지해 부담이 가장 크다. 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은 설명의무 위반(20%)과 적합성의 원칙(20%)에서 본사 차원의 문제가 있어 40%대 수준의 배상 비율이 유력하다는 전망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SC제일은행은 적합성 원칙에서 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아 배상 비율이 20~30% 수준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다. 배상액이 꽤 크지만 이미 손실에 대비해 쌓아 놓은 충당금이 넉넉해 배당 여력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금감원의 자율배상 기준안이 발표된 이후 KB금융을 비롯한 관련 주식 가격은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