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후 복귀작으로 택한 인생 첫 대하사극…“‘현쪽이’ 논란 체감 못해, 그저 매 신에서 최선”
장장 32부로 이어진 대작을 뒤로하고 기자와 만난 배우 김동준(32)은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첫 사극 도전, 그것도 그의 말마따나 내로라하는 ‘대선배’들과 함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이었다. 10개월여 동안 작품을 촬영하며 단 한 순간도 어깨가 가벼워진 적 없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나마 조금씩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김동준이 연기한 왕순, 곧 현종이 왕으로서의 면모를 보일 때부터였다고 귀띔했다.
“대하사극에서 선배님, 선생님들과 함께 한다는 건 결국 긴장과 부담감을 계속 가져야 한다는 것이거든요(웃음). 왕순도 어린 나이에 왕이 돼 나라를 이끄는 인물로 변해가는데 그 과정에 배우 김동준이 가진 부담감도 함께 녹여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긴장을 계속 가져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최)수종 선배님이 NG를 정말 한 번도 안 내셔서 그랬어요(웃음). 선배님이 그렇게 하시는데 제가 민폐를 끼쳐선 안 되잖아요. 그래서 준비를 더 철저히 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님들이 제게 ‘너도 NG 안 내고 참 잘한다’는 칭찬을 해주셔서 너무 기뻤죠.”
3월 10일 종영한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에서 김동준은 고작 열아홉 살에 갑자기 황제로 등극해 40만 거란군과 맞서는 전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고려의 제8대 황제 현종(대량원군, 왕순)을 맡았다. 밖으로는 거란군, 안에서는 호족들의 정치 싸움으로 주체할 수 없는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끝까지 백성을 위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은 물론, 그를 연기한 김동준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처럼 철없는 10대 소년의 모습부터 오롯한 군주로 성장하는 현종의 일대기를 한 사람이 연기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기의 강약을 조절하게 됐다는 게 김동준의 이야기다.
“왕순은 왕이 되기 전부터의 모습이 먼저 비춰지는데요, 그때 촬영하며 생각했던 부분 중 하나가 ‘지금은 왕이 돼 있으면 안 돼’라는 거였어요. 속으로 ‘아직 아니야, 참아야 해’하며 연기했죠(웃음). 그래야 나중에 왕이 돼 성장해나가는 모습도 더욱 큰 폭으로 보일 거고, 시청자 분들도 그 폭을 함께 바라봐 주실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한 인물의 성장 드라마를 보여드리고 싶단 마음에 초반에는 항상 어린 왕의 모습으로 있으려고 했죠.”
작가의 문제인지, 연출의 문제인지 ‘고려 거란 전쟁’은 중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조금 ‘삐끗’하며 현종의 캐릭터가 흔들렸다는 시청자들의 비판도 있었다. 명군으로 칭송받는 현종의 역사적 사실과 작중에서 픽션으로 그려진 현종의 모습에 큰 괴리가 생기며 현종을 향해 ‘현쪽이(현종+문제 아동을 가리키는 단어 금쪽이의 합성어)’라는 오명이 붙기도 했다.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던 만큼 시청자들의 비판도 격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속, 김동준은 마지막까지 뚝심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작품을 찍으면서 ‘이거 다음엔 어떤 논란이 있을 거야’라는 예상은 할 수 없죠. 하루 앞일도 모르는 게 저희 인생이잖아요. 사실 촬영할 때는 그 신을 어떻게 하면 더욱 밀도 있게 만들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하느라 (논란에 대한) 체감은 거의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저 최선을 다해 신을 만들어나가는 게 배우의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면서 현종의 감정선은 ‘오로지 백성만 생각하는 왕’이라고 잡고 끝까지 유지하려고 했죠. 현종을 연기하며 저 자신조차도 ‘현종 화(化)’됐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최대한 표현해내고 싶었고요.”
‘고려 거란 전쟁’의 주인공은 현종이지만, 그의 성장에 함께한 강감찬(최수종 분)의 거대한 존재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황제의 곁에서 늘 그를 꾸짖고 책망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를 도와 거란에 맞서는, 현종의 정치적 스승이자 정신적 아버지와도 같았던 강감찬을 연기한 최수종 역시 배우 김동준에게 있어 똑같은 의미로 다가왔다고 했다. 하늘 같은 선배를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며 그의 모든 걸 눈과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는 김동준은 현장에서 들은 가장 큰 칭찬으로 “너 요즘 최수종 선배님을 닮아간다”는 것을 꼽았다.
“현종에게 강감찬이 있었듯, 배우 김동준에게는 최수종 선배님이 계셨어요. 극 중 대사처럼 때로는 아버지 같았고, 또 때로는 친구 같은 다정한 분이셨죠. 제가 선배님과 친해지고 싶고 선배님을 너무 좋아해서 장난으로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했고요(웃음). 처음 현종으로서 신을 만들어나갈 때 현종이 정치적 스승으로 강감찬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저도 선배님을 따라 해 보려고 했었어요. 선배님에게서 사극 발성법, 톤 조절법 같은 것도 많이 여쭤봤고요. 게다가 저는 선배님의 연기를 제일 앞에서, 제일 많이 보기까지 했으니까요(웃음). 작품 안에서 그런 부분들이 얼마나 많이 표현됐을진 모르겠지만 꼭 선배님을 닮아가고 싶었어요.”
안에서는 대선배들로부터 큰 배움과 교훈을 얻었고, 밖에서는 그의 인생 절반 가까이를 함께한 ‘제아(제국의 아이들)’ 멤버들로부터 응원과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2010년 보이그룹 제아로 데뷔하고 같은 시기부터 배우 활동을 병행해 온 김동준은 같은 멤버인 임시완, 박형식과 함께 ‘성공한 연기돌(연기+아이돌)’로 꼽힌다. 같이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은 서로의 작품을 너나 할 것 없이 모니터링하고 애정 어린 응원을 아끼지 않는 친구이자 팬, 또 가족 같은 존재라고 했다.
“‘고려 거란 전쟁’ 방영 후에 (임)시완이 형한테서 전화를 받았어요. ‘동준아, 너 이 작품 정말 잘 선택한 것 같아. 이 이야기 해주려고 전화했어’ 그러더라고요. 사실 저희는 서로에게 그렇게 응원하는 말을 자주 전해요. 함께 본 시간이 15년이 넘은 사이니까요. 제가 17살 때 서울에 왔는데 정말 딱 그만큼의 시간을 멤버들과 함께 보냈더라고요. 사실 완전히 가족이죠(웃음). 더 좋은 건 이런 순간순간의 고민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제 나이 대의 고민도 그렇고, 앞으로 제가 배우로서 나아갈 방향성의 고민도 그렇고 함께 마음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죠.”
‘고려 거란 전쟁’은 김동준에게 있어 군 복무 이후 복귀작이면서 동시에 30대의 포문을 연 작품이라는 점에서 뜻깊은 작품이다. 대하사극의 주인공을 맡은 것만으로 대단한 첫 도전이었던 만큼 ‘고려 거란 전쟁’의 공개 전부터 그의 연기력을 두고 대중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일었다. 그런 우려와 논란을 불식시키며 당당히 32부작의 대미를 장식한 김동준에게는 앞선 선배들처럼 ‘정통사극이 가능한 배우’라는 브랜드가 주어졌다. 그의 2024년 활약이 기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게 있어 ‘고려 거란 전쟁’의 키워드는 ‘성장’이었어요. 군대를 전역했고,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다 보니 김동준이란 사람이 연기로서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지 정말 많이 생각 했거든요. 그러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어엿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됐는데 이 작품을 만나서 정말 많이 배우게 됐죠. 차기작에서는 제가 음악 할 때부터 갈망해 왔던 파격적인 변신을 해보고 싶어요. 도전과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만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들에 대한 고민도 끝없이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모든 걸 다 해보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