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표 사건’ 이후 전관 변호사 고액 수임료 줄어드는 추세…“돈 되는 사건만 맡으려 한 것 아닌가” 추측도
#재산 급증에서 비롯된 전관예우 논란
논란의 시작은 총선 후보 재산 내역 공개부터였다. 조국혁신당에 입당한 박은정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총선 후보 재산 내역에 따르면, 박 후보 재산은 본인(10억 원)과 남편 이종근 변호사(39억 원) 등을 모두 합쳐 49억 8100만 원을 신고했다. 지난해 5월 이 변호사가 신고한 부부의 공직자 재산 내역이 8억 7526만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재산이 41억 원 늘어났다. 이 같은 재산 증가 배경에는 이 변호사의 다단계 사기 사건 수임료가 상당 부분을 채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변호사는 피해 규모가 최대 1조 원에 달하는 ‘휴스템코리아 사기 사건’에서 업체 대표 등의 변호를 맡아 총 22억 원을 수임료로 받았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이외에도 최근 다단계 피해 액수가 4000억 원대에 달하는 ‘아도인터내셔널 사기 사건’의 변호인으로도 선임됐다.
논란이 커지자 박 후보는 3월 28일 유튜브 채널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에 출연해 ‘이 변호사가 전관예우로 돈을 벌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보시냐’는 질문에 “통상 전관으로 검사장 출신이 착수금을 5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 받는 걸로 알고 있다”며 “남편의 경우 전체 건수가 160건이기 때문에 전관으로 한다면 160억 원을 벌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성실하게 수임하고, 까마득한 후배에게 가서 성실하게 변론해서 매출을 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후 이종근 변호사는 박 후보 페이스북을 통해 “모두 사임할 것”이라며 “윤석열 정권에서 전관예우를 받을 입장도 아니고, 그럴 의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누가 1억 원씩 받으면서 사건 시작하나”
전관 변호사가 전화 변론이나 선임계를 내지 않고 자문만 하면서 5000만 원, 1억 원이 넘는 고액의 사건 수임료를 받는 문제는 법조계의 오래된 관행이었다. 전관 변호사의 고수익 얘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홍만표 변호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말이다.
홍만표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으로 근무하며 이인규 중수부장과 함께 박연차 게이트를 담당했던 당대의 특수통이다. 이 전 부장이 검찰을 떠난 직후 홍만표 변호사는 서울고검 송무부장(검사장)을 거쳐 대검 기획조정부장(검사장)을 끝으로 2011년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검사장 시절 재산이 13억 원 수준이었던 홍 변호사는 개업 후 2012년과 2013년 2년 만에 각각 100억 원에 가까운 소득을 신고해 논란이 됐다. 이 과정에서 2015년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 도박 사건,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사건 무마 청탁 등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전관 업계에서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르는 경우가 많이 줄었기에, 박은정 후보가 언급한 ‘사건 당 1억 원’은 성공 보수 등을 고려하면 가능한 사건도 있지만 아닌 경우들이 더 많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이종근 변호사는 서울동부지검에서 근무하면서 9만 명을 대상으로 2조 원의 돈을 가로챈 제이유그룹 등 6개 다단계 사기업체를 수사해 주범 31명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2016년에는 대검찰청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검사에게만 수여하는 자격인 '블랙벨트'를 받았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종근 변호사는 대검 형사부장 시절 지휘 및 보고를 받았던 사건 피의자도 변호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인데, 브이글로벌이 발행한 코인 ‘브이캐시’에 투자하면 300%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한 사건이다. 이 사건 피해자는 5만여 명, 피해액은 2조 8000억 원에 이르는데, 이런 사건을 선임한 것 자체가 ‘돈’을 벌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의뢰인의 경제 사정을 보고 공무원처럼 큰 소득이 없는 경우에는 500만~1000만 원만 받고 사건을 맡기도 하지만, 내가 보고를 받거나 지휘를 했던 사건이면 상담만 해주고 맡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검사장 출신이라고 해서 5000만 원, 1억 원을 받는다고 정해진 것은 없다. 물론 이종근 변호사는 다단계 관련 전문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고액을 부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재산이 급증한 것을 보면 거꾸로 돈이 되는 사건만 맡으려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한 소형 로펌 대표 변호사는 “다단계 사건은 사건을 파악하는 것도 복잡하지만 공모관계에 있는 이들을 여러 명 맡아야 하다 보니 한 사건에서도 수억 원을 받을 수 있긴 하다”면서도 “일각에서는 22억 원의 선임료를 문제삼지만 성공보수 성격까지 고려하면 받을 수 없는 것만도 아니긴 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부가세를 제외하고 사건 하나로만 소형 로펌의 1년 매출에 준하는 20억 원에 달하는 사건을 맡을 수 있는 변호사가 지금 서초동에서 몇 명이나 될지는 의문”이라며 “전관예우가 아니라고 하지만 사건을 맡긴 이들은 전관임을 감안해 더 큰 선임료도 부담하지 않았겠냐”고 덧붙였다.
#재산 40억 원 늘어나려면 변호사 선임은 80억?
8억 원에서 재산이 49억 원까지 늘어나려면 실제로 선임한 사건은 80억 원은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부가세와 40%가 넘는 세금, 사무실과 직원 비용 등을 종합하면 실제로 변호사가 사건 선임료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은 3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수통 출신으로 고검장까지 역임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2017년 퇴임 후 5년 동안 46억 5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사무실 비용 등을 제외한 실제 소득은 연 2억~3억 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2023년 2월 검찰을 떠난 이종근 변호사 부부가 1년 만에 재산을 40억 원 늘린 것을 놓고 “실제로는 100억 원 안팎의 사건 수임을 하지 않았겠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사건 선임을 할 때 받은 돈의 3분의 1 정도만 변호사가 실제로 만질 수 있다. 여기서 만일 브로커를 끼고 했다면 4분의 1 정도로 더 줄어든다”며 “재산이 수십억 원이 늘었고 이게 모두 변호사 실적으로만 거둔 것이라면 못해도 늘어난 재산의 2배 이상의 사건 선임료를 받았다는 게 상식적 추론”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