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보고 받은 청와대 직권남용? 정당한 지휘권 행사?…총선 앞둔 기소 놓고 “정치적” 비판도
법조계에서는 수사를 담당한 대전지검이 ‘확실한 유죄 카드’를 확보한 사건이라는 평이 나온다. 통계법에 따르면 작성 중인 통계를 공표 전에 다른 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불허하도록 돼 있다. 때문에 청와대 요구로 자료를 넘긴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사전에 보고 받은 것이 직권남용인지 여부’를 놓고 법원에서 다른 판단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양한 혐의들 가운데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사상 초유의 사건
대전지검(검사장 박재억)은 3월 14일 김수현·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11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통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김수현·김상조 전 실장과 김현미 전 장관 등 대통령비서실과 국토부 관계자 7명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효과로 집값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주택 통계인 한국부동산원(부동산원) 산정 ‘주간 주택가격 변동률’(변동률)을 125차례 조작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보도자료 등에 따르면 이들은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4년 6개월 동안 부동산원에 끊임없이 압력을 행사했다. 국토부가 집값 변동률 확정치(7일 동안 조사 후 다음 날 공표)를 공표하기 전 주중치(3일 동안 조사 후 보고)와 속보치(7일 동안 조사 즉시 보고)를 매주 3차례 대통령비서실에 미리 보고하게 했고, 수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2021년 8월까지 상시적으로 서울·인천·경기 지역 주택 매매·전셋값 변동률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김수현 전 실장과 윤성원 전 국토부 1차관은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부동산 대책 효과를 변동률 산정에 반영하라”고 지시하고, 김현미 전 장관은 “부동산 대책 효과가 숫자로 나타나야 한다”고 국토부 직원들에게 지시해, 부동산원이 변동률을 낮췄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부동산원 내부에서는 사전 보고가 부당하다며 중단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김상조 전 실장은 “부동산원 예산이 없어질 텐데, 괜찮겠냐”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6·17 대책 등 각종 부동산 대책 시행 전후와 2019년 대통령 취임 2주년, 2020년 총선 무렵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청와대의 지시가 집중됐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그 결과가 2017년 11월에서 2021년 7월까지 서울 지역 아파트의 부동산원 주택가격 상승률 통계는 12%에 그쳤지만, 실거래가 상승률은 81%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 지표와 변동률이 최대 30%포인트(p) 격차가 나타난 것도 검찰은 보도자료에 첨부했다.
#KB 데이터가 ‘절대 지표’?
하지만 이를 놓고 ‘검찰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계법 27조 2항에는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통계작성기관에서 작성 중인 통계 또는 작성된 통계를 공표 전에 변경하거나 공표 예정 일시를 조정할 목적으로 통계종사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법정형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인데, 검찰은 형이 너무 낮다며 입법 개선을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검찰은 이를 중대범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청와대에서 사전에 받은 보고를 ‘정당한 사유’로 볼 수도 있다는 시선도 있다.
이번 사건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청와대에서 지휘권이 있는 부처에게 사전에 보고를 받고 ‘다시 조사하라’고 지시한 것이 영향력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정당한 권한일 수도 있다”며 “이 법을 청와대까지 적용한 첫 사건인데, 결국 부동산원과 부동산원이 내놓는 자료에 대한 독립성을 법원이 얼마나 존중하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KB국민은행의 지표를 절대적으로 ‘맞다’라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그런 부분에서 조작인지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보니 검찰이 중대범죄라고 하면서도 구속기소자는 한 명도 없는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소주성' 강조 하려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한 축인 ‘소득통계 조작 부분’도 검찰은 유죄를 확신하는 부분이다.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평등이 악화하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통계청에 불법으로 개인정보가 포함된 통계기초자료를 제공했다고 한다. 개인정보가 포함된 자료를 제공받은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게 검찰의 주장인데,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로 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고 임의로 해석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 밖에도 검찰은 김상조 전 실장과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4명은 고용통계 조사 결과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자 새로운 통계조사 방식 때문에 비정규직 수치가 증가했다는 식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도 문제 삼았다. 대전지검은 “정부가 권력을 남용해 국가통계의 정확성과 중립성을 정면으로 침해한 최초의 통계법 위반 사례”라며 “부동산, 일자리 정책이 실패하자 대통령비서실 주도로 장기간 국가 통계를 조직적으로 조작하거나 통계조사 결과를 왜곡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보도자료를 살펴본 검찰 출신 변호사는 “개인정보 유출 등 몇 가지 혐의는 검찰이 유죄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진행한 게 보인다”며 “다만 검찰이 유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부분들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기에, 결국 법원이 ‘청와대의 사전 통계 보고’를 유죄로 판단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기소 시점을 고려할 때,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조작’을 내세우기 위해 검찰이 무리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2023년 9월 감사원의 의뢰를 받아 수사에 착수한 것은 맞지만, 아직 감사원의 최고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 감사원에서 최종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검찰이 먼저 기소한 것은 다분히 ‘총선’을 의식한 검찰의 판단이라는 문제제기다.
이번 사건을 맡은 한 변호사는 “감사원에서 수사 의뢰는 했지만 정작 최종적으로 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최종 입장이 나오기도 전에 검찰이 먼저 ‘불법에 해당한다’고 기소를 한 셈이기 때문에 감사원은 무조건 검찰의 주장과 비슷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감사원 판단도 나오기 전에 기소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문제를 더 두드러지게 보이려 한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