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지분 가진 토지 소유자들에 임대수익 공유 요구…사위 박정훈 후보 “정당한 권리 주장”
건물 지분 없이 토지 지분만 가진 4명은 건물 때문에 토지를 활용할 수 없다. 누군가 재건축을 위해 잔여 토지 지분을 함께 매입하지 않는 이상 이 토지 지분은 매매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로 인해 토지 지분만 가진 4명은 땅값이 올라도 재산세 부담만 올라가는 상황이다. 결국 토지 지분만 가진 4명은 건물 지분을 가진 토지 소유주들에게 건물 임대 수익 공유를 요구하는 소송에 나섰다.
그런데 소송 시점이 의아하다. 토지 지분을 가진 4명 중 3명은 2008년 소송을 제기했다. 나머지 1명은 2013년 소송을 제기했다. 건물이 지어진 지 약 30년 만에 소송을 건 것이다. 토지 지분만 가진 4명은 1978년부터 토지 지분을 갖고 있었다. 당시는 건물이 지어지기도 전이었다. 이후 1980년 건물이 지어지고 현재까지 이들 4명은 단 한 번도 건물 지분을 가진 적이 없다. 건물 소유주 중 한 명은 재판에서 "건물 사용을 승낙해놓고 이제 와서 소송을 걸었다"고 항변했다.
약 30년 만에 소송을 제기한 4명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 노태우 씨 등과 함께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켰던 차규헌 전 교통부 장관 자손이다. 차 전 장관 장남의 두 아들과 차남, 그리고 딸 차 아무개 씨다. 방배동 토지와 관련해 2013년부터 소송에 나선 딸 차 씨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갑에 출마한 국민의힘 소속 박정훈 후보 아내이기도 하다.
박정훈 후보는 2023년 12월 말까지 TV조선 시사제작국장으로 일했다. 이후 2024년 1월 12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송파갑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2월 14일 단수 공천됐다.
박 후보는 방배동 토지 소송과 관련해 “(방배동 토지는) 실질적으로 아버님(차 전 장관)이 소유했다. 공동으로 땅을 샀던 친하시던 분이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내버려뒀다”며 “(차 전 장관이 2011년) 돌아가시고 나서 정당한 권리를 찾으려고 한 소송이다. 불법이나 편법으로 볼 만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차 전 장관 자손이 소유한 서울 방배동 토지에 얽힌 사연은 복잡하다. 차 전 장관은 1975년 정 아무개 씨, 권 아무개 씨와 함께 서울 방배동 XXX-XX번지 토지 461.4㎡(약 140평)를 매입했다. 정 씨는 차 전 장관 육군사관학교 동기다. 방배동 토지 매입 당시 장군 계급이었다. 차 전 장관 역시 토지 매입 당시 장군 계급이었다.
또 다른 매입자인 권 씨 지분은 차 전 장관과 정 씨의 차명 지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 씨 지분 소유권은 1996년 6월 말 신탁 해지를 이유로 차 전 장관과 박 아무개 씨에게 절반씩 넘어갔다. 박 씨는 정 씨와 친인척 관계로 알려졌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7월 부동산실명제를 실시하면서 1년 뒤인 1996년 6월 말까지 차명 부동산을 실명 전환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장군 두 사람이 매입한 방배동 토지는 허허벌판 한가운데 있었다. 매입 시점인 1975년엔 토지 구획 정리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인근 삼호아파트가 1976년 4월 완공되는 등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며 1980년대 초 방배동 카페골목이 조성됐다.
차 전 장관과 정 씨 방배동 토지엔 1980년 12월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이 완공된다. 특이하게도 차 전 장관과 정 씨는 건물 지분을 단 하나도 소유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된 정 씨와 친인척 관계로 알려진 박 씨가 송 아무개 씨와 함께 건물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가졌다. 건축물대장에도 박 씨와 송 씨가 건축주로 명시됐다. 건물 소유권은 지하층, 1층 1호~5호, 2층, 3층, 4층 등 9개(5개 호실 및 4개 층)로 구분 등기됐다.
이후 송 씨의 건물 소유권 9개 지분은 매매를 통해 여러 사람에게 넘어갔다. 40여 년간 매매, 증여, 상속, 지분 교환 등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는 건축주였던 박 씨 등 4명이 건물 소유권 9개를 나눠 갖고 있다. 건축주 박 씨가 1층 1호, 1층 3~5호, 3층 등 5개 소유권, 김 아무개 씨가 2층과 4층 등 2개 소유권을 갖고 있다. 유 아무개 씨는 지하층, 조 아무개 씨는 1층 2호 소유주다.
차 전 장관 토지 지분 중 117.564㎡(약 36평)는 1978년 7월 장남과 차남, 딸 차 씨에게 증여됐다. 장남 지분은 2007년 5월 장남의 두 아들에게 다시 증여됐다. 이후 차 전 장관의 잔여 토지 지분인 58.78㎡(약 18평)는 차 전 장관이 2011년 5월 사망하면서 딸 차 씨에게 상속됐다.
차 전 장관 장남 측과 차남은 2008년 방배동 XXX-XX번지 건물 소유주들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건물 때문에 자신들이 토지를 전혀 사용할 수도 없어 손해를 입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건물 소유주들이 토지를 독점적으로 사용해 부당이득을 거두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은 차 전 장관 자손들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건물 소유주들은 임대 수익 일부를 차 전 장관 자녀들에게 나눠주게 됐다. 일부 소유주는 법원 판결을 이유로 세입자에게 임대료 인상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딸 차 씨도 2013년 같은 소송에 나섰다. 차 씨도 처음에는 소송에서 연전연승했다. 일례로 차 씨는 건축주 박 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겼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4년 8월 박 씨가 차 씨에게 1억 3944만 원을 지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건물 소유권을 갖고 있는 동안 매달 131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박 씨는 항소했지만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박 씨는 상고했지만 상고장이 각하돼 판결이 2016년 7월 확정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 씨는 건물을 지을 당시 토지 소유주인 차 전 장관과 정 씨에게 무상의 사용승낙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박 씨는 차 씨가 30년 이상 아무런 이의 제기를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토지 무단 사용을 주장한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박 씨 주장을 믿기 어렵고 주장을 입증할 증거도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건축주 박 씨는 건물 소유주들 토지 지분율을 합산하면 50%가 넘어가므로 무단 사용이 아니라는 법리적인 주장도 펼쳤다. 하지만 법원은 건물 소유자들이 토지 지분 과반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토지 지분 소수 보유자가 부당하게 손해를 입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반전은 2022년 시작됐다. 1층 2호 소유주 조 씨와의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2년 8월 원심(차 씨 승소 판결)을 파기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조 씨가 토지 지분을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에 차 씨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조 씨는 건물 전체 면적 중 3.9%를 소유 중이다. 조 씨는 토지도 전체 면적 중 3.9%를 소유 중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결을 내리면서 기존 판례를 변경하기까지 했다. 기존에 법원은 건물 소유자가 토지 지분을 얼마나 가졌는지와 상관없이 건물 지분을 가지지 않은 토지 소유자에게 부당이득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방배동 토지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건물 지분을 가지지 않은 토지 소유자가 토지 지분을 충분히 가진 건물 소유자에게는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례를 변경했다. 판례가 바뀌면서 차 씨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층 소유주였던 정 아무개 씨 소송 결과도 바뀌었다. 차 씨는 정 씨와의 소송 2심에서 2022년 11월 패했다.
차 씨 남편인 국민의힘 송파갑 박정훈 후보는 방배동 토지 소송과 관련해 “(2011년 5월) 상속을 받은 뒤 재산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어떤 사람이 가족도 아닌 사람에게 무상으로 땅을 쓰라고 내주느냐”고 4월 2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밝혔다. 1978년 토지 지분을 이미 증여받은 것과 관련해선 “명의만 취득한 거다. (방배동 건물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차 씨 장남 측이나 차남과 달리 2013년에야 소송에 돌입한 이유에 대해선 “(방배동 토지를) 아버님(차 전 장관)께서 관리 하셨기 때문에 아버님 뜻을 존중했다”며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아내 오빠(처남)가 소송을 저희한테 권유해서 아내가 소송을 하게 됐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차 전 장관의 1979년 12·12 군사 반란 가담과 관련해선 “영화(‘서울의 봄’)에서 왜곡을 해서 (12·12 군사 반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군대를 동원한 것처럼 묘사했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차 전 장관은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한테 속아서 30경비단(12·12 군사 반란군 지휘부)으로 갔다”며 “장인(차 전 장관)이 수도군단장이었기 때문에 병력에 대한 상당한 권한이 있어서 발을 묶어놓기 위해 (전두환이) 부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 후보는 “(차 전 장관은 1979년) 12월 11일까지 합숙을 하면서 장군 심사를 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 관련해) 진행된 내용을 전혀 몰랐다. 전두환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에게 내란 혐의가 있다고 이야기해서 청와대에 따라갔다”며 “(12·12 군사 반란 관련) 판결문에도 적극적인 가담은 아니었다고 나온다”고 강조했다.
차 전 장관은 12·12 군사 반란 가담 정도와 별개로 전두환 정권에서 요직을 맡았다. 차 전 장관은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린 후에도 전두환 씨와 인연을 이어갔다.
전두환 씨 등 12·12 군사 반란 주동자들은 이틀 뒤인 12월 14일 보안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군사 반란 성공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차 전 장관은 사진 기준으로 전두환 씨 오른쪽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차 전 장관은 12·12 군사 반란 당시 수도군단장이었다. 계급은 이른바 ‘스리스타’로 불리는 중장이었다. ‘투스타’였던 전두환 씨보다 계급이 높았다. 차 전 장관은 육군사관학교 8기로 전 씨(육사 11기)보다 선배이기도 했다. 차 전 장관은 전두환 정권 시절 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과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차 전 장관은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린 뒤 두 차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두 징역형 모두 형기를 채우기 전 특별사면 및 복권됐다.
차 전 장관은 골프장 허가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1989년 6월 징역 5년과 추징금 5억 8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89년 10월 건강 문제로 구속 집행이 정지됐다. 이후 1992년 12월 특별사면됐다. 당시 경향신문은 특별사면 소식을 전하면서 “차규헌 씨는 잔여 형기를 4년 2개월 남기고 형이 모두 면제됨과 동시에 복권까지 이뤄져 가장 큰 혜택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차 전 장관은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혐의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월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8개월 만인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잔여 집행이 면제됐다. 뒤이어 1998년 8월 복권됐다.
전두환 씨는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퇴임 후 어려운 시절을 보낼 때 인연과 의리를 잊지 않고 위안과 우애를 보여준 분”이라며 차 전 장관 이름을 언급했다. 차 전 장관 이름은 58명 중 4번째로 언급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차 전 장관은 2005년 전 씨와 함께 한 경제인 빈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박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낸 재산신고서에 따르면 차 전 정관 딸인 차 씨는 서울 방배동, 경기 평택, 경남 합천 등에 토지 약 22억 원어치를 보유 중이다. 토지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중 약 21억 원어치는 차 전 장관에게 물려받았거나 차 씨가 미성년자일 때 매매로 취득한 땅이다.
박 후보 아들도 미성년자 때부터 땅을 취득해 여전히 소유 중이다. 2000년생인 박 후보 장남은 10세 때인 2010년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전남 진도 땅 330㎡(약 100평)를 50만 원에 매입했다. 2004년생인 박 후보 차남은 7세 때인 2011년 전남 진도 땅 337㎡(약 102평)를 800만 원에 매입했다. 이 땅은 진도군청 인근에 있다. 두 아들이 취득한 땅의 2023년 공시지가는 취득 시점 대비 각각 246%, 30% 올랐다.
가족 소유 토지 대해 박 후보는 “세금을 다 냈으면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하며 “땅 가격도 얼마 안 된다. 저희 재산 다 합쳐도 강남에 집 한 채 값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