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씨 사망으로 남은 추징금 환수 어려워져…‘소급입법금지’ 걸림돌이지만 공익성 매우 큰 경우 예외 가능
#추징 기간만 26년
1997년 4월 대법원은 전두환 씨에게 군 형법상 반란 및 내란죄 혐의로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했다. 전 씨는 법정에서 재산이 29만 1000원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했다. 전 씨는 2013년까지 약 533억 원만 납부한 채 버텼다.
앞서 2004년 2월 검찰은 차남 전재용 씨에게 비자금 73억 원이 유입된 것을 확인했다. 전 씨 돈이 자녀들에게 상속된 것이다. 추징 과정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비자금 유입이 확인된 지 9년이 지난 2013년 5월에서야 검찰은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을 집행하기 위한 전담팀을 구성했다. 같은 해 6월엔 국회에서 공무원의 불법 재산 몰수 추징시효를 10년 연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전두환 추징 3법’이 통과됐다.
이 법이 통과될 때 국회에서 진통이 있었다.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일부 의원들이 헌법의 소급입법금지 조항을 근거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책위의장이었던 김기현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 은닉재산을 반드시 찾아내 추징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소급입법을 통해 형벌을 가하자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가족들 재산을 무조건 추징하는 것은 연좌제에 해당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는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이라며 “역대 정부가 해결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여당의 기류도 바뀌었다. 이 발언 후 새누리당은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법안이 통과되자 검찰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13년 7월 전 씨의 자택과 재산을 압류하고 재산과 관련된 장소 17곳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해 9월 전 씨 측은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에 대한 납부계획을 발표하며 한발 물러섰다.
납부계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2018년 전 씨 측은 소송전을 시작했다. 전 씨 일가는 연희동 자택 등에 대한 압류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전두환 추징 3법에 대해서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헌법재판소는 추징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전 씨 부인 이순자 씨가 소유한 연희동 자택 본채 등 일부 재산은 대법원 판결로 추징할 수 없게 됐다.
2020년에는 검찰이 전 씨 가족 명의로 된 안양시 임야에 대한 토지 수용 보상금 12억 원 등 21억 7600만 원을 환수했다고 발표했다. 2021년 11월 당사자인 전 씨가 추징금 956억 원을 미납한 채 사망했다. 12월 15일에는 대법원이 신탁사인 교보자산신탁의 이의신청을 기각하고 검찰 손을 들어줬다. 2013년 검찰은 경기도 오산시의 임야 5필지를 전 씨의 차명재산으로 보고 환수했다. 금액은 약 55억 원이다. 당시 교보자산신탁은 이에 반발해 2016년 이의신청을 했는데 대법원이 기각한 것이다. 이 재산이 국가가 환수할 수 있는 마지막 추징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3년째 계류
전 씨가 사망하면서 남은 추징금 환수는 어려워졌다. 2022년 7월 대법원은 전 씨의 며느리인 이윤혜 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전 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검사는 재산형 등 집행불능 결정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한 대법원은 “공무원범죄몰수법은 범죄자 사망 시 범인 외의 자에 대한 추징의 집행에 관하여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범인 외의 자를 상대로 추징을 집행할 수 없다”고 했다. 현행법으로는 사망한 전 씨의 재산을 추징할 근거가 없다는 취지다.
전 씨가 사망하기 전 법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20년 6월 유기홍 민주당 의원은 전두환 추징 3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고령이었던 전 씨가 사망한 다음에도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서다.
전두환 추징 3법 개정안은 형법 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을 말한다. 형법 개정안은 몰수 범위를 범죄수익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추징금을 미납한 자가 사망해도 사망자의 상속재산에서 미납금액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한다.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은 범인이 아닌 자가 정황을 알면서 불법재산을 취득한 경우나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취득할 경우 그 재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법안 3개 모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3년째 머물고 있다. 그러다 3월 15일 전 씨 손자인 전우원 씨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에 전 씨 일가의 검은돈 의혹을 폭로했다. 전우원 씨는 “제 아버지(전재용)와 새어머니(박상아)는 출처 모를 검은돈을 사용해 가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순자 씨로 추정되는 이가 스크린 골프를 치는 영상을 올리며 “연희동 자택에 구비되어 있는 스크린 골프시설”이라고도 말했다. 이후 언론에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연희동 자택 금고 안에 비자금이 있다고 들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전우원 씨 폭로가 나온 후 전두환 추징 3법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이때까지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의 경우 한 차례의 심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우원 씨 폭로가 나온 직후인 3월 22일 법사위 제1법안소위(1소위)에서 논의가 있었다.
폭로의 여파가 잦아들자 전두환 추징 3법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12월 12일 유기홍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10명과 5·18민주유공자유족회 등은 국회에서 전두환 추징 3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 의원은 “전두환은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서울의 봄’을 군홧발로 무참히 짓밟은 역사의 죄인”이라며 “은닉재산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전두환 추징 3법이 신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급입법금지 조항이 법 통과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헌법 제13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라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행위로 소추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법 시행 이후에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만 효력을 발휘하고, 과거의 사실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될 수 없다는 뜻이다.
법사위 관계자는 “(1소위 때) 법무부는 별도의 의견을 내지 않았고, 법원행정처에서는 부패재산몰수법과 법인이 아닌 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어 이 내용에 대해서 고려가 필요한 것 같다고 의견을 준 것 같다”며 “(1소위에서) 쟁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3월 22일) 이후 진행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소급입법은 공익적 필요성이 매우 클 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1948년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과 1995년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5·18 특별법이 통과될 당시 헌법재판소는 소급입법 논란에 대해 ‘기존의 법을 변경해야 할 공익적 필요는 심히 중대한 반면에 그 법적 지위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기홍 의원 등은 이 사례를 근거로 법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유기홍 의원실 관계자는 “일단 법을 통과시켜 놓고 나서 전 씨의 재산에 대한 소급 적용을 시킬지 논의하면 된다. 그런데 법 통과조차도 문제를 겪는 상황”이라며 “저희가 광주까지 가서 기자회견하고 법사위에 촉구도 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이 관계자는 “소급적용금지 문제도 이미 5·18 특별법이라는 전례가 있다”며 “처리가 안 되면 22대 국회에서 특별법을 내서라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재열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은 “영화 ‘서울의 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유족 입장에서는 이렇게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법이 통과됐으면 하는 입장”이라며 “법정 기한을 떠나 반드시 처벌해야만 두 번 다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양 회장은 “극적으로 법이 통과됐으면 한다. 만일 통과가 안 됐을 때는 내년에 강력하게 다시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