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생 첫 자이언트 판다, 5000여 명 모여 배웅…“인터뷰할 기분 아냐” “푸바오 가족도 언젠가는…” 숙연
#"중국에 또 보러 갈 거야"
4월 3일 한국을 떠난 푸바오는 이날 오후 7시쯤 중국에 도착했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에서 그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이 방역 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푸바오를 쿡 찌른 장면이 포착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중국 자이언트 판다 보존연구센터가 "건강 체크에 필수 과정이고 손 소독을 미리 완료했다"고 해명하는 등 푸바오를 향한 곳곳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줬다.
푸바오를 떠나보낸 한국 팬들은 오열했다. 장대비가 쏟아진 이날 오전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의 장미정원. 주변의 각종 놀이기구가 이리저리 돌고 떨어질 때마다 터져 나오는 즐거운 비명은 여느 때보다 또렷하면서도 어쩐지 공허하게까지 들렸다. 정원 일대를 가득 메운 약 5000명의 시민들은 이 순간이 정말 '꿈'이고 '환상'이길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가만히 선 채 푸바오의 마지막 모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0시 40분, 왠지 또 애잔해 보이는 눈빛의 푸바오 사진과 '너를 만난 건 기적이야, 고마워, 푸바오' 글귀가 쓰인 트럭이 등장하자 시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푸바오, 잘가, 고마워!" 소리치며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 트럭은 푸바오가 타고 있는 차량이었다. 푸바오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시민들이 저마다 소지한 배지와 인형 등 '푸바오 굿즈'를 끌어안으며 '보낼 수 없다'는 듯 소리 내 울었다.
'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가 마이크를 잡고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고 입을 뗀 순간은 슬픔의 절정이었다. 가수 정우가 부른 '이젠 웃으며 안녕' 음악과 시민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뒤엉킨 가운데, 강 사육사는 "푸바오야, 네가 새로운 터전에 도착할 때까지 할부지가 곁에 있어 줄게"라고 간신히 말을 이어나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던 푸바오, 제2의 판생을 위해 먼 여행을 떠나야 하는 날이네. 검역을 받는 중에 번식기까지 잘 견뎌낸 네가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 이제 푸바오는 어른 판다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모든 과정을 다 해냈구나. 할부지는 대견스럽단다…시민 여러분, 푸바오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푸바오 잘 데려다주고 오겠습니다."
강 사육사는 전날 모친상을 당했음에도 가족회의 끝에 푸바오를 배웅하러 나왔다고 한다. 그는 이날 푸바오와 중국까지 함께 갔다.
배웅 행사는 불과 20분 만에 끝났다. 그렇지만 푸바오가 '꽃길'이 그려진 동선의 마지막 구간을 지나며 모습을 감춘 뒤까지 여운이 오래 지속됐다. 수백 명의 시민이 굳게 닫힌 문 앞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서 있었다.
경기 부천에서 온 유 아무개 씨(30대)는 무려 지난 3년 동안 매주 1회씩은 푸바오를 보려고 에버랜드에 왔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키운 푸바오가 낯선 곳으로 떠난다고 하니 너무나도 슬프다는 말 외에는 얘기가 떠오르지 않는다"며 "푸바오가 중국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도 들지만, 강 사육사님이 평소 '푸바오는 더 좋은 곳으로 간다'고 설명해 주신 만큼 부디 가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 서 아무개 씨(20대) 역시 1년에 한 번씩은 꼭 푸바오를 보기 위해 에버랜드를 찾았다. 그는 "푸바오는 스스로가 여길 떠난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을지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프다"며 "인터뷰할 기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 대신 옆에 있던 친구가 "저희는 나중에 푸바오 만나러 중국도 함께 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경기 용인에서 온 문 아무개 씨(30대)도 이날 오로지 푸바오를 배웅하려는 목적만으로 에버랜드에 왔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며 "문득 푸바오의 가족 판다들도 언젠가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겁다"고 털어놓았다.
#밍밍·리리 '지못미'…루이·후이도 3년 뒤 이별
푸바오는 2016년 3월 한·중 친선 도모의 상징으로 중국에서 보내온 판다 러바오와 아이바오 사이에서 2020년 7월 20일 자연번식으로 태어난 국내 최초의 자이언트 판다다. 중국 밖에서 태어난 판다는 만 4세 이전에 중국으로 옮겨야 한다는 '자이언트 판다 보호연구 협약'에 따라 결국 한국을 떠나게 됐다.
푸바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도 단연 큰 인기 비결이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첫 판다라 의미가 더욱 컸다. 성장 과정까지 계속 지켜본 시민들로서는 이별이 특히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한국은 판다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감정이 있다. 사실 한국이 만난 첫 판다는 1994년 두 살 동갑내기로 입국한 '밍밍'과 '리리'였다. 중국 장쩌민 전 주석이 한·중 수교 2주년을 기념해 '10년 임대' 조건으로 보내온 녀석들이었다. 두 판다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으며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터를 잡았었다.
밍밍과 리리도 인기로는 푸바오에 밀리지 않았다. 1996년 약혼 후 합방을 시작하며 2세 출산의 기대도 한껏 끌어 모았다. 그 무렵 지구 반대편인 영국에선 소방호스까지 투입해 판다의 부부싸움을 말리느라 애를 먹고, 미국에선 판다 의문사 사건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했는데 밍밍과 리리는 큰 다툼 없이 지내며 꽤 괜찮은 궁합을 자랑했다.
하지만 밍밍과 리리는 한국 생활 4년 만에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1998년 발생한 외환위기(IMF) 사태로 관리 비용에 부담을 느낀 에버랜드 측이 중국에 조기 반환을 결정한 사정 때문이었다.
이때도 중국으로 돌아간 밍밍과 리리가 잘 지내고 있을지는 커다란 관심사였다. 또 외환위기 사태가 해결되면 혹시 돌려받을 수는 있을지 물음이 잇따랐다. 와중에 한국에 전해진 밍밍과 리리의 안부는 충격적이었다. 알고 보니 두 마리가 전부 암컷으로 밝혀졌다는 소식이었다. 통상 판다는 생식기와 항문의 거리로 암수를 구분하는데, 어릴 때는 그 거리가 너무 짧아 착각을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자연농원에서는 성격이 활발한 밍밍이 수컷인 줄 알고 키워왔다. 판다는 독립생활이 가장 큰 특징인데 밍밍과 리리는 인간의 오판 때문에 한국에서 강제로 한 공간을 써야 했던 셈이다. 밍밍과 리리에 대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사례가 반면교사가 됐는지, 푸바오는 최적의 환경에서 3년 9개월을 보냈다. 중국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판다가 가장 좋아한다는 18℃로 맞춰진 실내온도 속 검역과 건강검진까지 이뤄졌다.
푸바오가 중국에서 지낼 곳은 쓰촨성의 션수핑 판다기지다. 서울 여의도 절반 크기로 야생 판다가 사는 해발 1700m 높이의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판생낙원'으로 꼽힌다. 푸바오는 이곳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대나무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전망이다.
앞으로 에버랜드는 푸바오의 엄마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 동생인 루이와 후이 4마리 양육에 주력할 계획이다. 단 인간의 성인기에 해당하는 아이바오·러바오와 달리, 루이·후이는 푸바오와 같은 이유로 만 4세가 되는 2027년쯤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바오·러바오는 2031년 반환 예정이지만, 이미 거의 성장했기에 협의에 따라 한국 생활이 연장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만 4세 이전에 판다를 중국에 보내야 한다는 협약은 판다가 더 나은 환경에서 훨씬 건강해지도록 하고, 번식에도 도움을 주려는 취지"라며 "따라서 루이와 후이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비교적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아이바오와 러바오도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최근 사육곰 구조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에버랜드는 푸바오 열풍으로 번 돈을 시설개선 등 전시동물의 복지를 위해 써야 한다"며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