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한 식욕 어디까지…시선집중
레미콘, 시멘트 등 건설기초소재 산업으로 성공한 유진그룹은 향후 물류사업과 금융분야 진출을 선언한 상태다. 이미 서울증권 지분을 인수해 금감원의 지배주주승인을 기다리고 있고, 지난주 흥아해운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 알려져 인수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나아가 대한통운 인수설, 현대증권 인수설까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이중에서도 재계의 관심은 유진이 서울증권 인수에 이어 현대증권을 인수한다는 시나리오의 실현 여부다. 유진이 증권사를 추가인수하려 한다는 근거는 세 가지가 거론된다.
유진그룹이 금융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 유진기업 CFO(최고재무책임자)인 김종욱 부사장이 현대증권 이사를 지냈다는 점, 지난 4월 유진그룹 4000억 달러 규모 CB(전환사채) 발행을 현대증권이 담당하는 등의 협력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김 부사장은 현대증권 이사 퇴직 후 벤처캐피털에서 잠시 일하다 유진그룹에 영입됐다. 무엇보다 유진그룹이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진 측은 “이미 오래된 루머다. 서울증권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대증권도 그럴싸하게 엮인 것이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고, 김종욱 부사장의 출신 등이 맞물리면서 제기된 시나리오다. 그렇지만 이미 서울증권에 대한 지분 인수가 진행되고 지배주주변경 승인을 기다리는 상황이라 현대증권 인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소문을 부인했다.
유진그룹이 서울증권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2008년부터 시작되는 자본통합법에 따라 증권사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는 증권업, 선물거래, 투자운용의 본래 기능에 은행 여수신업무까지 가능한 투자은행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자금만 충분하다면 작은 증권사라도 충분한 사업기회를 만들 수 있다. “서울증권이 17위권으로 중소규모지만, 선물거래 등에서 탁월한 노하우가 있는 데다 작지만 내실 있는 회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인수하려 한 것이다. 서울증권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유진 측의 판단이다.
현대증권 측도 “현재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으며 나도는 얘기는 그야말로 루머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으로서도 현대건설 인수전에 돌입하면 중요한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증권사를 미리 정리할 필요성은 없어 보인다.
다만 현대증권과 서울증권 사이에 인수 협상이 오갔던 것도 유진그룹과의 소문에 대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서울증권이 유진그룹에 지분을 매각하기 전 현대증권에 인수를 요청한 것이 그것이다. 현대증권은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을 먼저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 증권사이다 보니 겹치는 인력이 생겼던 것. 유진그룹은 금융사가 없었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없어 성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증권노조)은 이와는 다른 내막을 제기하고 있다. 유진그룹이 금감원으로부터 지배주주승인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퍼뜨린 얘기라는 것. 현대증권처럼 큰 증권사에 대한 인수설을 통해 증권사 인수에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내막은 현대그룹이 강찬수 서울증권 회장의 인수 요청을 거부한 까닭은 구조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강 회장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을 만나기는 했지만 자신을 대표이사로 유지해 달라는 조건을 내걸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라고 증권노조는 얘기하고 있다. 증권노조는 강 회장이 회사 지분매각 차익을 위해 스톡옵션을 활용해 본래 스톡옵션의 취지를 훼손한 만큼 강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사들인 유진기업에 대해 지배주주 승인을 내줘선 안된다는 내용으로 금감원에 진정서를 낸 상태다. 즉 금융당국에서 유진그룹의 서울증권 인수를 승인할지 여부도 장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한편 유진그룹이 흥아해운 지분을 9월부터 꾸준히 매수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져 최근 M&A테마가 부상하고 있는 증시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진 측은 “투자한 자금은 8억 원으로 지분 1%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대우건설 인수 자금으로 마련한 현금성 자산을 당분간 투자한 것으로 회장의 지시에 의한 것도 아닌 재무적인 판단일 뿐이다. 어느 기업이나 여유자금이 있으면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하필 해운사냐’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분 투자 외에도 여차 하면 물류업 확대를 위해 중소해운사를 인수할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금융업 진출과 더불어 물류업 진출도 유진그룹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분이다. 때문에 대한통운 인수에도 유진이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업계는 추측하고 있다. 대한통운에는 이미 STX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벌써부터 지분을 사모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진 측은 “이미 경쟁이 치열한 택배 위주의 물류회사를 인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건설소재로 출발한 만큼 특수물류업을 고려하고 있다. 소비자물류는 이미 경쟁이 치열하지만 건설소재, 건설폐기물 등 특수물류는 아직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라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대한통운 인수 의사를 부인했다.
결국 아직까지는 유진그룹의 M&A 소문의 구체적 근거는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대우건설 인수까지 욕심낼 정도로 왕성한 식욕 때문인지 유진그룹은 M&A 시장에서 주목받는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