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비서실장 메시지 혼선 경고 ‘보안 유지’ 주문…홍철호 정무수석 ‘영수회담’ 성사 첫 시험대
윤석열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연이어 ‘늘공’ 출신이었다. 김대기 전 비서실장과 이관섭 비서실장 모두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하지만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뒤 대통령실은 인적쇄신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윤 대통령 역시 최근 대통령실 참모들에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윤 대통령은 선택의 결을 달리해, 정치인을 비서실장으로 전격 배치하며 대통령실 유연성 확장에 나섰다. 윤 대통령이 선택한 정치인은 ‘친윤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4월 22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1층 브리핑룸을 직접 찾아 정진석 신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소개했다. 윤 대통령이 인사 발표를 직접 한 것은 취임 이후 최초다. 윤 대통령은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사실 소개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여러분들이 잘 알 것”이라며 “정계에서도 여야 두루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은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충청지역 기반 정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서 정계에 입문했다.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부터는 줄곧 보수 정당에서 활동해 왔다. 5선을 지내며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 사무총장, 충남도지사, 새누리당 원내대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1대 국회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부친 고 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부터 대를 이어 정치 커리어 대부분을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쌓았다. 정 전 장관과 정 실장 부자는 충청권에서만 도합 8선을 하며 ‘지역 강자’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번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공주·부여·청양에서 6선에 도전했지만, ‘친문’ 박수현 민주당 당선인에 패하며 쓴맛을 봤다. 정 실장 입장에서는 향후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통령실 러브콜을 받은 셈이다.
정 실장은 제20대 대선 국면에서 영남권 장제원 의원, 강원권 권성동 의원 등과 함께 ‘친윤 중진’ 주축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여권 내부에선 정 실장을 친윤 중에서도 ‘조용한 친윤’으로 꼽으며 온건파 이미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대통령실은 대통령 비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호 간에 얼마나 이해도가 높은지가 호흡을 맞추는 데 중요한 요소”라며 “경험이 많으면서도 정치권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인사를 중심으로 검토를 한 결과 정 의원이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치하는 대통령’ 콘셉트의 대통령실을 이끌어갈 정진석 신임 실장은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기강잡기에 나섰다. 정 실장은 “대통령실 정치는 비서가 아닌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결정은 최종적인 것이다. 보좌에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실 또는 ‘대통령실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부정확한 얘기가 산발적으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통령실은 일하는 조직이지 말하는 조직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정 실장이 대통령실 그립감을 강하게 가져가면서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서 메시지 혼선이 일어나지 않게끔 ‘보안 유지’를 강력히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 비서진들에서 산발적으로 나오는 메시지들을 통제하는 것이 정치하는 대통령 첫 걸음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대통령실 소통 채널 일원화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정치하는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정치 실무자’다. 그 실무자 역할을 할 신임 정무수석에 윤 대통령은 홍철호 전 국민의힘 의원을 지명했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치킨 창업주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 김포 지역구에서 재선을 한 홍 전 의원은 지역구가 김포갑·을로 분구된 뒤 21·22대 총선에서 연이어 패했다. 윤 대통령은 두 번 연속 낙선한 홍 전 의원을 ‘정치 실무자’로 발탁한 셈이다.
홍철호 신임 정무수석은 취임하자마자 큰 정치적 숙제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추진이다. 홍 수석은 취임하자마자 민주당 측과 영수회담 관련 의제 및 일정을 조율 중이다. ‘취임 이후 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불통’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데 기여한 만큼, 홍 수석 입장에서도 영수회담을 매끄럽게 성사시키는 퍼포먼스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영수회담 의제로 ‘3+1 카드’를 내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대국민 사과, 채 상병 특검 수용, 거부권 행사 자제 등 3개 사안과 함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13조 원 편성 등 의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요구하고 있는 의제 하나하나가 대통령실이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당혹스러워할 만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부분을 정치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운용의 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영수회담 성사 및 진행이 정치 실무자가 된 홍 수석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실장과 홍 수석의 인사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실 핵심적인 위치에 정치인 인력을 보강했지만, 정진석 실장은 ‘친윤’ 이미지가 강해 여야 합의가 어려운 사안에 있어 강대강 대치 국면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정부와 야당의 대치 국면이 행정부와 입법부 대립으로 비화될 경우 정치인 출신 인사가 오히려 여야 합치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정치하는 대통령’이란 메시지를 띄우며 새 판 짜기에 나선 대통령실과 관련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는 설명을 하면 안 된다”며 “한마디로 보여주고, 국민들이 그것을 느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가 보여주는 정무적인 부분이 약했는데 정진석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등 정치인 출신들이 기용되면서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신 교수는 “다선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것은 나쁘지 않은 인사로 본다”며 “정 실장이 그립감을 강하게 가져가면서 홍철호 정무수석과 상의해 정무적인 과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