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일각서도 찬성 목소리, 거부권 후 재표결 주목…민주당 폐기되더라도 22대 국회서 재추진 입장
민주당은 ‘순직 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채 상병 특검법’의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를 공언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4월 15일, 총선 후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총선 후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 역시 19일 최고위에서 “주요 법안들을 21대 국회가 반드시 매듭지어야 한다”며 “특히 채 상병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추진에 정부·여당의 동참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 상병 특검법은 2023년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태워져 지난 4월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여야는 오는 5월 2일 본회의를 열어 21대 국회 마지막 밀린 법안들을 처리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채 상병 특검법이 안건으로 상정돼 표결이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민의힘은 채 상병 특검법 처리에 부정적 입장이다.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은 4월 16일 “독소조항이라든지 법안 내용의 문제점이 (민주당이) 선거 승리만 하면 다 해독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특검은 전제조건이 있다. 공정성이 최소한 담보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공수처 수사는 사실상 착수했다 보기 애매할 정도의 단계”라며 “이런 게 다 진행되고 미흡하거나 공정하지 못했다 결론 나면 특검의 전제조건이 충족됐다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식적 대응은 당 의원총회에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최종적인 당 입장을 정해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민의힘으로선 반대 입장을 고수하기 난감한 상황이다. 해병대 수사외압 의혹에서 이어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도피출국 논란이 이번 총선 결과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채 상병 특검법 처리를 거부하면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민주당이 본회의 처리 날짜를 5월 2일로 못 박고 압박에 나선 것도 여론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라고 해석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채 상병 특검법에 찬성 입장을 내는 목소리가 나온다. 총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의원은 4월 1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채 상병 특검법 표결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찬성”이라고 했다. 당내 최다선 6선 고지에 오른 조경태 의원도 16일 같은 방송에서 “우리 당이 민주당보다 먼저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찬성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채 상병 특검법 처리에 협조하지 않으면, 야당 단독으로 국회법상의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을 제출해 안건을 상정하고 표결 처리까지 하는 구상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이 과반 의석을 보유하고 있어 채 상병 특검법 안건이 본회의에 상정만 되면 무리 없이 통과될 전망이다.
관건은 윤 대통령이 정부로 이송된 특검법에 대해 다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최종 폐기된 법안은 노란봉투법·간호법·김건희 특검법 등 9개에 달한다.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이 국정쇄신을 약속했는데 곧바로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고 독선을 반복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지적에도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발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긴 하다. 야권 한 관계자는 “해병대 수사외압 의혹은 윤 대통령에게 아킬레스건이라고 볼 수 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정도에 따라 대통령 탄핵까지 갈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다. 그러니 윤 대통령 입장에서 어떻게 특검법을 받겠느냐. 당연히 재의요구를 하리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 일정상 재표결이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민주당은 잠정 합의한 5월 2일 외에도 28일 본회의를 열기 위해 여당과 협의 중이다. 특검법 재표결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2일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통과돼도, 국회 관행상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기까지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 이후 대통령은 법안을 받아들고 15일 안에 공포 또는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숙의기간을 갖는 등 15일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그럴 경우 5월 24일이 돼서야 재의안이 국회로 돌아온다. 28일 본회의가 잡힌다면 물리적으로는 재표결이 가능하지만 빠듯한 일정인 것은 분명하다.
국회 재표결이 이뤄지더라도 현행 의석상 여당이 반대하면 부결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앞서 거부권 행사된 법안들처럼 채 상병 특검법도 재의결까지 가면 최종 폐기될 것으로 본다”며 “그럼에도 ‘대통령이 본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거부권을 전횡한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 누적시키기 위해 재표결은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으로선 부결되더라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셈법이다.
특검법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범여권은 최대 116석(국민의힘 101석·국민의미래 13석·자유통일당 1석·무소속 1석)이다. 전원(297명)이 표결에 참여한다고 가정하면 198명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국민의힘에서 17명 이탈표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찬성 의사를 밝힌 의원은 2명(안철수 조경태)이지만 현 당내 기류상 15명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내상이 불가피하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두고 장고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이 이번에 폐기돼도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다시 발의할 계획이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한 당선인은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것은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라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의 문제를 밝혀낼 특검법을 순차적으로 통과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채 상병 특검법 등이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면 통과 가능성은 높아진다. 22대 국회는 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 의석이 192석에 달한다. 국민의힘에서 8표만 이탈하면 산술적으로 대통령 거부권은 무력화될 수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