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비서실장 민심 과감히 전달하는 역할 해야…조국 대표와의 만남 정치적 메시지 없어”
―8년 만에 당선됐다. 승리 요인을 꼽는다면.
“발품 팔기다. 정성과 진심을 갖고 근면 성실하게 단단한 유권자 마음의 문을 열고자 부지런하게 다녔다. ‘농작물이 농부 발소리 듣고 자라듯이, 우리들 마음도 박 후보 발소리 듣고 열리는 것’이라고 말해준 한 유권자 분이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는다. 이 말씀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선거 고비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는지.
“충청도 유권자들 성향이 신중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잖나. 그런데 이번 총선만큼은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화가 굉장히 많이 났고, 강한 심판 바람이 불겠다는 것을 지역 돌아다니면서 느꼈다. 20년 정치 인생 처음이다. 그런데 지역 민심과 다른 몇몇 여론조사 결과가 민심에 영향을 끼쳐서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민심이 여론조사에 흔들리지 않았으나, 선거 국면에서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굉장히 덜컥덜컥 놀랐다.”
―지역구를 떠나지 않고 줄곧 표밭을 다져왔다.
“19대 공주시 단독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20대 총선을 불과 42일 앞두고 공주시, 부여군·청양군 선거구가 통폐합됐다. 사실상 낙선이 100% 확실시됐다. 그때 당에서 세종시 공천을 타진하기도 했으나, 공주·부여·청양 선거구를 강하게 고수했다. 선거구 사정이 불리해졌다고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나를 뽑아준 시민 분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8년간 낙선해도 주민 분들 곁에서 지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있다면 세 번째엔 당선될 것이란 계획을 짰다. 극적인 드라마처럼 계획대로 승리했다.”
―경쟁 후보였던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했고, 정 의원 본인이 선택한 일이다. 내가 평가하긴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거물급 정치인인 정 의원이 총선에서 낙선했을 만큼 민심이 준엄하게 심판했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민심 현주소를 윤 대통령한테 과감하게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충분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첫 영수회담이 2년여 만에 열렸다.
“예상은 했으나, 안타깝다. 이재명 대표가 민심 전달하고자 12가지 의제를 제안했는데, 윤 대통령이 답한 내용이 거의 없다.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될 의제들인데, 대통령이 답하지 않음으로써 여당에게 협상 여지를 전혀 주지 않은 것이다. 의제 협상을 거쳐서 윤 대통령이 1~3가지 의제에 대해 답변해서 여당에 협상 여지를 열어줬어야 한다. 결국 22대 국회도 여야 관계 경색된 21대 국회가 재연될 가능성 매우 높다.”
―민주당이 비공개 영수회담 내용을 공개하며 비판했다.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정치가 그런 게 문제인 것 같다. 모처럼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만났으면, 내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덕담을 주고받는 여운을 줘야 한다. 그래야 서로 신뢰가 쌓이고,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가 있다. 사전에 의제 설정을 하지 않으면서 형식과 내용 다 문제가 있었다. 다음 영수회담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게 됐다. 다만 이재명 대표는 2년여 만의 첫 만남이다 보니까 그동안 쌓인 민생 주제를 18분 동안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윤 대통령도 이 대표 발언에 대한 정부 입장 설명해야 하니까 비공개 회담 발언 비중 85%를 차지한 건 당연한 일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영수회담 전 범야권 연석회의 개최를 제안했으나 민주당이 거절했다.
“민주당이 범야권 맏형 역할을 잘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오랫동안 요구했던 영수회담이 갑작스럽게 성사됐다. 의제 조율 민감한 시기이기도 했다. 범야권 연석회의를 개최했으면 좋았겠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앞으로 범야권 대화 구조를 열린 구조로 만들고 자주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거대 야당이 됐다고 해도 국회 안에서 대화와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걸 못 해냈을 때 민주당이 입법 독재라는 프레임에 또 갇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부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이 “선비질하지 마라”며 비난했다.
“국회는 대화와 타협 원칙에 의해서 운영되는 곳이다. 어떻게 그걸 안 하나. 22대 국회가 대화와 타협 원칙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21대 국회가 남겨둔 숙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말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채 상병 특검, 영수회담을 21대 국회에서 해결하라고 일관되게 요구했다. 영수회담이 열리긴 했으나, 나머지 의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22대 국회가 21대 국회의 재연이 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장을 두고 친명 경쟁 과열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태도가 이런 현상을 초래했다. 국정기조 변화 없다는 것을 전제로 당내에서 강한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22대 총선, 영수회담까지 보면 윤 대통령이 지금도 변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야당은 국민 명령 받들어서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 이어갈 수밖에 없다. 21대 국회에서 박병석, 김진표 국회의장이 협치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협치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상대와 어떻게 협치를 하냐는 것이 당원들 목소리다.”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으로 친명계가 원내에 대거 진입했고, 최근 당직 인선도 친명 일색이다.
“어느 당이든 당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운영해 나간다. 그동안 민주당 대표 누구든지 그런 모습을 보여왔다. 이재명 대표 체제만 비판받아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이 못하다는 지적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 연임 가능성도 나온다.
“당내에선 연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권력을 견제하고 심판하려면 강한 리더십과 일사불란한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친명계 당 장악, 국회의장 친명 경쟁, 친명 지도부 선출 등은 결과적으로 동일한 현상에서 비롯됐다. 변하지 않는 윤 대통령 한 명 때문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나온다고 하지 않나. 야당은 총선 심판을 강하게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능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야당도 심판받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당선 인사를 나눴나.
“아직 직접 인사를 하진 못했다. 당선되고 제일 먼저 경남 양산 사저에 전화해서 비서진들을 통해서 당선됐다고 보고하긴 했다. 조만간 찾아뵐 계획이다. 또 권양숙 여사(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께는 인사를 드렸다.”
―총선 이후 친문계가 위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계적으로 분류하는 것에 동의한 바 없다. 계파활동을 한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계파가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계파가 있다면 ‘친민’(국민, 민주당)밖에 없다. 언제든지 당의 부름에 제 역량을 다해서 충심을 다해서 일했을 뿐이다.”
―조국혁신당이 이번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의 자업자득이다. 국민께서 ‘조국 사태’ ‘조국의 강’ 등에 대한 비판에 동의하나, 그 문제를 다루는 윤석열 정권과 검찰 태도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이 호남에서 비례대표 지지율 1위를 한 건, 민주당이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다. 민주당이 선명성 측면에서 기민하고 속도감 있게 처리하지 못했기에 조국혁신당에 희망을 걸은 것이다.”
―최근 조국 대표와 술 한잔 기울인 사진이 화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한 동료들끼리 오랜만에 모였다.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사진 같이 찍지 않겠나. 정치적인 메시지 전혀 없다. 조국 대표가 올린 SNS(소셜미디어) 글이 정치적으로 해석으로 될 수 있는데, 정치적인 자리 절대 아니다. 조 대표가 험지에서 두 번 낙선 끝에 거물급 정치인을 꺾은 직장 동료를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국 대표가 친문계를 비롯한 비명계 결집에 나서거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는지.
“그럴 가능성 전혀 없다고 본다. 조국 대표 역시도 그런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행동이 정치적 고립을 자초한다는 건 상식적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합당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 경쟁과 협력 관계가 될 것이다. 범야권이 민생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여당과 대통령 압박 수단으로 강하게 결집하고 연대할 것이다. 민주당이 수권정당이기 때문에 개혁 부분에서 속도감 있게 못할 수 있다. 그러면 조국혁신당이 견인해나가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조국 대표가 “민주당이 먼저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 제안하고 약속한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 사안에 대해 언급하기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22대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극심한 정치 혐오를 해결하고 싶다. 정치를 복원하는 역할하고 싶다. 또 지역구에서 붕괴된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전력을 쏟고 싶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