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찰행정 자료 수집 분석 일환” 해명에도…제안서 곳곳 장관의 지휘·감독권 확립 의지 뚜렷
#"국내외 비교 사례 필요"
행안부는 4월 13일 '경찰행정의 발전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30일 입찰을 마무리했다. 4000만 원 규모의 연구 과제로서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몇몇 있었고, 행안부는 현재 용역 수행기관을 검토하고 있다. 연구는 수행업체가 선정되는 대로 3개월 동안 이뤄질 계획이다.
이번 연구용역은 한동안 잊혔던 행안부 장관의 경찰 지휘·감독권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을 집중시켰다. 행안부는 연구제안서에서 "바람직한 행안부와 경찰의 지휘관계 정립 제언이 필요하다"며 "경찰은 국민에 밀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관이므로 민주적 관리와 운용, 적절한 지휘 및 견제가 필요하다"고 기재했다.
일각에선 '경찰 장악 논란'을 일으킨 경찰국 신설의 후속조치로 행안부 장관의 경찰 통제 근거를 마련하려는 시도로 바라본다. 다만 행안부는 "국내와 해외의 경찰 제도를 분석한 연구가 부족한 탓에 객관적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려는 목적"이라며 "특정한 방안을 사전에 상정하고 진행하는 연구는 결코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심이 이어지는 이유는 연구제안서를 자세히 볼수록 행안부 장관의 경찰 통제 강화가 핵심 과업으로 읽혀서다. 제안서는 "행안부 장관은 경찰의 인사제청 외에는 실질적 지휘‧감독권이 없다"며 "경찰제도발전위원회가 행안부 장관의 경찰 지휘 관련 권고안을 낼 계획이며 객관적 학술자료를 수집하고자 함"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내외 사례 비교'가 필요하다며 프랑스와 영국만 특정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두 국가는 경찰이 내무부 등에 소속된 곳으로, 국가경찰이 상급부처 장관 등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행안부는 이들 국가와 비교 등을 토대로 "지휘체계에 따른 정부조직법, 경찰법 등 관련 법령규칙 개정안 제언이 필요하다"고 했다.
만약 미국을 예로 들었더라면 연구 방향이 달라졌을 수 있다. 미국은 각 주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지역이 시민을 중심으로 한 경찰 감사 등을 시행한다. 시카고의 경우 시장과 시의회 승인으로 구성된 경찰 감시 기구 'COPA'가 경찰 압수수색의 정당성 등 과도한 경찰력 행사 여부 등을 감사하고 민원인과 경찰 양측에 결과를 통보한다.
#이태원 참사 후 사라진 경찰 지휘·감독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국 신설을 추진하던 2022년 8월 이전까지만 해도 경찰의 지휘·감독권이 본인에게 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용역처럼 돌연 지휘·감독권이 없다고 인정한 배경에 이태원 참사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애초 주장대로 경찰 지휘·감독권이 이 장관에 있다면 그 역시 참사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 전 장관은 경찰국 설립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경찰 지휘·감독권이 행안부 장관에 있다고 피력해 왔다. 구체적인 근거도 내세웠다. 정부조직법 제34조 5항이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행안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은 둔다'고 명시했다는 논리였다.
이 장관은 2022년 6월 27일 브리핑에서는 이 같은 정부조직법을 거론한 뒤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여기서 사무 관장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백하게 나타난다"며 "행안부 장관이 치안 업무를 직접 수행은 않더라도, 경찰청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지휘·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며 말을 바꿨다. 이 장관은 2022년 11월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 "현재 행안부는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관련 질의를 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이제라도 경찰을 지휘할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 장관은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연구용역은 행안부 장관의 경찰 지휘·감독권 강화 명분을 마련하는 데다,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서 지휘 권한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수단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실제 국회는 5월 2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통과시켜 참사 책임을 규명할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최장 1년 3개월 가동하기로 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특조위는 이 장관은 물론 윤희근 경찰청장 등 기존 수사에서 무혐의를 받은 윗선의 법적 책임을 규명하는 데에 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특조위는 조사한 내용이 사실로 확인돼 범죄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는 규정도 뒀다.
#'국가경찰위 실질화' 결국 다음 국회로
경찰국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해당 연구용역은 오는 6∼7월까지 이뤄지며, 이쯤 경찰제도개선위원회(제도발전위)가 추진하는 경찰대 개혁 권고안 등도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경찰국 한 관계자는 "연구용역 전후로 제도발전위 권고안을 내놓는 방안을 논의하는 단계"라며 "조금 더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국가경찰위원회'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권고안이 동시에 나올 기미도 엿보여 주목된다. 행안부가 발주한 연구용역에 이 같은 내용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연구제안서는 '자문위원회로서 국가경찰위원회 위원의 전문성 및 중립성 확보 방안' 마련도 과제로 명시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자문위원회로서'라는 표현이다. 국가경찰위는 경찰 관련 각종 심의·의결을 하는 곳이다. 외부 민간위원들로 구성돼 있어 경찰국을 대신할 경찰 지휘·감독 기구로 거론돼 왔다. 이 과정에서 행안부는 이곳을 '자문기구'에 그친다는 주장을 펴고, 국가경찰위는 '기속력을 갖춘 기구'라고 맞서는 상황을 되풀이해왔다.
이런 가운데 행안부가 연구제안서에서 국가경찰위를 '자문위원회'로 못 박은 지점은 관련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렇지만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호철 국가경찰위원장은 일요신문에 "국가경찰위는 심의·의결의 기속력을 갖춘 합의제 의결기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면 국가경찰위가 스스로 자문기구로 위상을 낮출 가능성도 거론된다. 오는 8월이면 행안부 장관 제청과 국무총리 임명에 따라 국가경찰위원장도 바뀌는 까닭에서다. 현 정부 기조와 호흡을 맞출 인사가 유력하다. 비상임 위원들은 지난 2월 이미 교체돼 국가경찰위는 사실상 새로운 체제로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정부는 물론 야당을 향한 불만도 만만치 않다. 경찰국 신설이 추진될 당시 민주당 등을 중심으로 '국가경찰위 실질화' 등을 담은 법안들이 여럿 발의됐음에도,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일제히 계류된 탓이다. 당장 21대 국회의원 임기종료가 코앞이라 해당 법안들도 회기만료에 따른 자동 폐기가 유력하다.
이들 법안 가운데에는 '국가경찰위를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임호선 민주당 의원 발의), '국가경찰위 위원 구성 확대'(권은희 전 무소속 의원 발의) 등이 있다. 경찰 출신인 임호선 민주당 의원의 경우 2022년 8월에는 행안부 장관이 해오던 경찰 인사 제청권을 경찰청장 등에게 넘기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도 냈다.
22대 총선에서 당선된 임호선 민주당 의원은 일요신문에 "다음 국회에서도 국가경찰위의 지위를 분명히 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임 의원은 "국가경찰위는 경찰의 정치적 독립과 민주적 통제를 위한 심의·의결기관"이라며 "자문위원회로 격하시키는 자체가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국 경찰직장협의회는 행안부가 연구용역을 발주하자 "정부가 연구용역을 근거로 경찰 통제를 강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즉각 중단하고 경찰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프랑스 등 선진국과 같은 경찰 노동조합을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