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득·임혁백 “윤, 이 대표에 총리 추천 요청”…양측 부인 속, 일각 “물밑 역할 사실” 증언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이후 느닷없는 ‘비선’ 논란이 불거졌다. 영수회담 추진 과정에서 공식 참모라인이 아닌 비공식 라인이 특사 역할을 맡아 물밑 조율을 했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다.
그 비선은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과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였다. 두 사람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영수회담 관련된 자신들의 역할을 공개했다. 함 원장은 윤 대통령 사저 아크로비스타 이웃 주민으로, 윤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교수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다.
인터뷰에는 민감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 ‘총리 추천을 요청’했는데, 이 대표가 ‘국정기조’ 전환을 우선시 하며 “윤 대통령처럼 그립이 센 분 밑에서는 허수아비 총리 임명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 이 대표의 경쟁자가 될 만한 인사는 대통령실 인선에서 배제하겠다’는 뜻을 전했는데, 이 대표가 “경쟁은 많을수록 좋다”며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다만 당초 유력한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됐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해서는 이 대표가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 관련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라며 난색을 표했다는 내용이 인터뷰에 담겼다. 실제 원 전 장관은 이번 대통령실 인사에서 기용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2년간 영수회담을 거절한 것에 대해 ‘강성 지지층과 참모들의 반대 때문에 그간 이 대표를 만나지 못했다’는 말을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영수회담이 쭉 이어져 앞으로 더 자주 만난다면 골프회동도 하고, 부부동반 모임도 하자”고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고 한다.
인터뷰 내용이 정치권에 큰 파문을 일으키자 양측에서 부인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7일 참모들에 “그런 말은 한 적도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오래 전부터 대통령은 이 대표를 만나야 한다는 제안을 언론, 여당과 야당 등을 통해 받아왔다”며 “공식라인을 거쳐 했다. 거창하게 특사라든지 물밑 라인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 역시 8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비서실장(천준호 의원)이 용산과 협의하고 진행한 게 전부”라고 일축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우리 당에서 임 교수를 메신저로 인정한 바 없다”며 “메신저 자처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영수회담 비선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함 원장과 임 교수의 인터뷰 내용이 상세할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이러한 내용을 허위로 인터뷰할 이유가 없기 때문. 또한 대통령실은 인터뷰 내용을 부인하면서도, 함 원장과 임 교수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 사정을 잘 아는 민주당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이 비공식 라인에서 영수회담 추진 과정에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공식 라인이 협상에 정체를 겪을 때는 물 밑에서 뜻이 통하는 인사들이 가교로서 논의를 이어가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갑자기 인터뷰에 나선 이유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서도 “‘윤 대통령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영수회담 전부터 ‘본인이 메신저 역할을 했다’며 관련 내용을 방송에 나와 얘기해왔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도 영수회담이 끝나 후일담이라고 생각해 인터뷰에 임한 것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신평 변호사는 영수회담 사흘 전인 4월 26일 YTN라디오 ‘뉴스킹 배승희입니다’ 인터뷰에서 “얼마 전 이재명 대표의 측근 중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영수회담에 관한 뜻을 전달해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며 “영수회담을 위한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총선 이틀 후인 4월 12일에는 YTN ‘뉴스특보 민신 2024’에 출연해 “간접적으로 전해 듣기로는 ‘두 분이 만남을 하지 마라’고 한 참모가 있었는데, 최근 윤 대통령이 ‘그 참모를 너무 오랫동안 신임해 후회한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이는 함 원장과 임 교수의 인터뷰 내용 중 윤 대통령이 ‘강성 지지층과 참모들의 반대 때문에 그간 이 대표를 만나지 못했다’고 밝힌 부분과 유사하다.
대통령실 비선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윤 정부 인적쇄신 과정에서 ‘박영선 국무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검토설이 나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공식 라인은 부인했지만, 특정 참모들이 인정해 정치권이 크게 술렁였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건희 여사 라인이 비선에서 인사에 관여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보수진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비선’이라는 말에 트라우마가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비선 논란이 이어지면 정부의 존립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일보 인터뷰 내용 중에 ‘이 대표에 총리 추천을 요청했다’ ‘이 대표와 경쟁할 인사는 대통령실 인선에 배제하겠다’ 등의 윤 대통령 발언은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인터뷰가 나온 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는 “윤 대통령은 탈당하라” “충격이다. 윤 대통령은 진짜 보수 궤멸자” 등과 같은 격앙된 글들이 올라왔다.
유승민 전 의원도 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사실이라면 기가 막힌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윤 대통령의 상전인가”라며 “이 대표가 불편해할 사람을 기용하지 않는 게 어떻게 대통령 인사 원칙과 기준이 될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언제는 범죄자라서 못 만난다더니 이제는 두 부부 모두 사법리스크가 있어 동지가 된 거냐”며 “윤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과 자신을 지지해 준 보수를 우롱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국정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