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야당 굴복시키려 하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 않을 것”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첫 양자 회담을 가졌다. 서로 안부를 묻는 대화가 적당히 오간 후 이 대표는 안쪽 주머니에서 A4 용지를 꺼내며 “대통령님 말씀을 먼저 듣고 말할까 했는데”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손님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하니까 말을 해도 좋다”고 답했다.
이에 이 대표는 “귀한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만남이 국민들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드리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저의 입을 빌린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은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으라는 준엄한 명령”이라며 그는 △언론사 압수수색 △긴급 민생회복 조치 △R&D 예산 복원 △전세사기특별법 등 민생 입법 △의정 갈등 해결 △연금개혁 △과도한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저출생 대책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의 전환 등에 관한 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정부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서 중징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기자,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국민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는 세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긴급민생회복조치’에 대해서도 “민간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게 원칙이다.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민생회복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을 하면 소득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 주길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이어 “R&D 예산도 내년까지 미룰 게 아니라 민생 지원을 위한 추경이 있다면 한꺼번에 처리를 하면 좋겠다. 전세사기 특별법이나, 화급한 민생 입법에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개월째 이어지는 의정 갈등 때문에 의료 현장이 혼란을 겪고 국민도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의료진의 즉각적인 현장 복귀, 공공 필수 지역 의료 강화라는 3대 원칙에 입각해 대화를 통한 신속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해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며 정중하게 요청한다”고 전했다.
또한 “159명 국민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던 이태원 참사, 채 해병 순직 사건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며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특검법 수용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해 주시면 좋겠다. 지난 2년은 정치는 실종되고 지배와 통치만 있었다는 그런 평가가 많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거부권 행사, 입법권을 침해하는 시행령, 인사청문회 무력화 같은 이런 조치는 민주 공화국의 양대 기둥이라고 하는 삼권분립,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 혹여라도 굴복시키려 하시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총선 민의를 존중해주시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발언을 모두 듣고 난 뒤 “이 대표님과 민주당에서 강조해 오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실 것으로 저희가 예상하고 있었다. 자세한 말씀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