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세상, 그를 쓸고 간 바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가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전시가 있다. 지금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베르나르 뷔페, 천재의 빛, 광대의 그림자’다. 베르나르 뷔페, 그의 그림에서 1차적으로 느낀 것은 ‘고독’이었다.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젊었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세상이 그를 지지할 때나 비난할 때나, 건강했을 때나 병들었을 때나 고독이야말로 변치 않는 그의 가족이었던 것 같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뷔페는 피카소만큼이나 유명한 화가다.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10대 때였다.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는 직선은 생명의 선이 아니라며 곡선만을 고집했는데, 뷔페는 가우디가 버린 바로 그 ‘직선’으로 생기 없는 실존들을 묘사했다.
그의 그림 속에선 여인들도, 남자들도, 심지어 무대를 기다리는 서커스단의 코끼리까지도 모두 표정이 없다. 가난을 겪고 전쟁을 겪고 의지했던 어머니를 잃으며 이리저리 휘둘린 젊은 날, 그의 털린 영혼은 마르고 뾰족하고 쓸쓸한 것들을 담아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털린 영혼들의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가 단테의 ‘신곡’에 기대, 얼음지옥에 떨어져 당황하고 미워하고 배신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을 그렸을 때 그가 그린 것은 지옥도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전쟁과 기아 속에서 어찌해볼 수 없는 민초들은 두려움에 떨며 분노를 토해내고, 분노는 또다시 협박과 폭력을 낳고, 그런 악순환 속에서 어디 마음 쉴 곳이 있었겠는가.
그렇듯 죽어서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괴로움에 시달리며 쉬지 못하는 영혼들을 그리며 그는 “여기 들어서는 자 희망을 버려라, 지옥은 바로 희망이 없는 곳”이라는 단테에 공감하지 않았을까. 그 가운데 오로지, 그림만이 길 없는 길을 내며 희망이랄 것도 없는 희망이 되지 않았을까.
그는 미술의 대세가 추상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진 구상을 고집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세상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들었던 고독을 드러내는 방법이고, 털린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내 시선을 강렬하게 끌었던 작품은 바로 죽음 시리즈였다. 그가 그린 죽음 시리즈를 보며 나는, 그에게 그림은 마침내 고독과 대화하게 된 영혼의 집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년에 파킨슨병을 앓았다.
평생 ‘나’인 줄 알았던 몸이 어느 날부터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얼마나 당황하고 흔들렸겠는가. 그는 그 상황까지 놓치지 않고 그림으로 드러냈다. ‘브르타뉴의 폭풍’이었다. 브르타뉴는 그에게 어머니이고, 그리움이고, 그리하여 고향이라 해도 좋은 곳이었다. 거대한 폭풍 속에 가라앉고 있는 작은 배를 통해 그는 가파르게 무너지고 있는 몸을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지 않았을까.
그렇듯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덮치고 있을 때 그는 ‘죽음’을 그렸다. 뼈대로만 인체를 표현했는데 망토만을 입고 있는 해골의 어깨와 발치엔 죽음의 전령사라 해도 좋을 검은 새들이 그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고독한 시간을 증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상적인 붉은 심장! 나는 생각한다. 그는 죽음에 직면해서 심장의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고. 평소 있는 줄도 몰랐던 심장, 그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으며, 깊이 느끼며, 비로소 우리 몸을 이끄는 생명의 힘에 깊고 커다랗게 공명하면서 죽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였겠는가. 누구에게나 생의 진실을 감당하기 버거운 시간이 온다. 그 버거운 진실 앞에서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고독의 시간이 찾아올 때 그 진실을 감당하게 하는 자기만의 방편을 찾아야 하는 것 같다. 뷔페에게는 그것이 그림, 자기가 본 세상을 그려내는 일이었던 것 같다. 당신에게는 그것이 무엇인가,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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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