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 고리 시달리다 PF대출 실패하고 갖고 있던 땅까지 잃어…BNK투자증권 “성실히 소송에 대응”
#대부업체 "BNK투자증권이 먼저 연락"
이번 사건은 한 건설업자가 2019년 어느 대부업체로부터 연이율 24%로 7억 원을 빌린 게 발단이 됐다. 해당 대부업체는 이와 별도로 허위의 용역·채권을 만들어 연이율을 최대 3650%까지 적용했는데, 이는 2024년 1월 18일 법원의 '채권 0원' 판결로 무효가 됐다(관련기사 법원도 속을 뻔…'연이율 3650%' 어느 대부업체의 대담한 사기행각).
그런데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몹시 특이한 지점이 발견됐다. 피해자인 건설업자가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게 된 배경이 BNK투자증권의 금융자문 때문이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공식 금융기관이 고객에 사설 대부업체를 소개해줬다는 점에서 적정성은 물론 위법 여부에도 관심이 모인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 건설업자는 2018년 BNK투자증권에 총 5억 6000만 원을 주고 금융자문을 의뢰했다. 건축 사업을 추진하며 280억 원의 PF대출이 필요해 방법을 찾으려는 목적이었다. 이에 BNK투자증권의 한 영업부 A 이사는 "권리내역 조사 결과, 사업 부지의 근저당권 등 제한물권을 말소해야 한다"는 자문을 줬다.
문제는 제한물권을 말소하는 방법이었다. A 이사는 "PF대출 선행조건 이행을 위한 제한물권 말소에는 약 52억 원의 단기자금이 필요하다"며 한 대부업체를 소개해줬다. 건설업자는 이 말을 믿고 대부업체에서 실제 52억 원을 빌렸다. 약 두 달 동안 발생한 이자만 14억 원에 달했고, 석 달째부터는 매달 8억 원의 이자가 더 매겨졌다.
이 같은 사실은 건설업자뿐 아니라 대부업체가 법원에 낸 자료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대부업체 대표는 본인의 채권이 무효로 돌아간 1심 판결에 불복해 2024년 3월 낸 항소심 준비서면에서 "BNK투자증권에서 먼저 저희에게 연락이 와 단기자금을 조달해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는 BNK투자증권과 이전에 거래한 경험이 있어 신뢰를 토대로 건설업자 고객을 만나게 됐다"며 "제한물권 말소 등에 왜 52억 원이 들어가는지를 설명했고, 건설업자의 동의를 받아 기타 용역비를 지급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건설업자는 PF대출만 실행되면 돈을 갚을 수 있다고 약속했다"고도 강조했다.
BNK투자증권의 A 이사는 대부업체 알선에만 그치지 않았다. 건설업자가 돈을 갚는 데에 어려움을 겪자 상환도 독촉했다. 건설업자의 지인한테까지 연락해 "대부업체 돈을 안 갚으면 땅을 임의경매 처분한다더라"며 "PF대출도 힘들 수 있으니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법원에 제출된 지인의 자필 진술서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대출 실패, 땅 소유권은 대부업체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그 뒤로 계속됐다. 건설업자는 PF대출을 받지도 못했다. 기존까지 토지에 적용된 각종 제한물권은 없앴는데, 그와 동시에 새로운 제한물권이 설정됐다. 다름 아닌 대부업체가 설정한 근저당권이었다. 대부업체가 돈을 빌려줘 기껏 제한을 없애놓고 본인들이 새로운 제한을 설정한 셈이다.
건설업자 입장에서는 이 과정에서도 대부업자한테 돈을 빌려 BNK투자증권에 넣어야 했다. A 이사가 "PF대출을 받으려면 자문수수료와 위약수수료를 먼저 내야 한다"며 지급을 요구하자, 건설업자는 A 이사가 소개해준 대부업자에 또 돈을 빌렸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계좌 내역에는 2억 9400만 원이 부산은행 명의 계좌 등에 이체됐다.
그럼에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BNK투자증권의 A 이사는 2019년 7월 "PF대출이 실행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끝으로 자문을 마쳤다. 결국 건설업자는 대부업자로부터 빌린 돈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땅의 소유권마저 대부업체에 넘기고 말았다. 이 땅은 감정평가액 152억 원에 달했으나 대부업체는 102억 원에 매입했다.
사실상 '헐값'에 땅을 매입한 대부업체는 건설업자가 당초 계획했던 건물을 그대로 신축했다. 이에 대해 건설업자는 '정상적으로 PF대출을 받고 사업에 나섰다면 80억 원 이상의 분양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BNK투자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원고 측 법률대리인 박진현 법무법인 아인 변호사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금융기관이 자문 대상자에 사설 대부업자를 소개해 주는 게 금융자문 계약 범주에 포함되는지 대단히 의문"이라며 "PF대출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피해자는 그 구체적 이유조차 알지 못 한다"고 지적했다.
#임원 개인 행위인지, 법인 결정인지가 쟁점
BNK투자증권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건설업자와 대부업체의 이전 재판 때부터 '고객에 사설 대부업체를 알선해준 경위' 등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에는 BNK투자증권을 상대로 한 본소송이 시작됐는데 어째서인지 아직도 답변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에 제기된 소송에서도 대전지방법원이 4월 29일 BNK투자증권에 '건설업자 측이 낸 구석명신청서에 대해 5월 13일까지 답변하라'고 명령했으나 같은 반응이다. 법원이 '따르지 않으면 재판 때 주장이나 증거신청이 각하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달았는데도, BNK투자증권은 끝내 답변을 제출하지 않았다.
BNK투자증권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로펌 등과 내용을 정리하느라 제출이 미뤄졌다"며 "늦어도 재판 이전까지는 내겠다고 법원에 의사를 전한 상태"라고 밝혔다. 또 "소송이 제기된 만큼 사건 관련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곤란하다"며 "성실히 소송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 이사 역시 건설업자와의 금융자문 계약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입장을 밝히기는 거부했다. 그는 일요신문와의 통화에서 "그 사안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고객에 사설 대부업체를 소개했다는 사실 자체는 있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도 "말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번 소송 쟁점은 사설 대부업체를 소개한 행위가 A 이사 개인의 행위인지, BNK투자증권 법인의 결정이 있었는지와 더불어 알선의 구체적 배경 등이 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도 원고 요청에 따른 법원의 사실관계 확인 요구로 일련의 사안에서 위법 요소가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