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경선 이변 “새 판 짜야” 분석도…친명계 “확대 해석 금물”, 여론은 찬반 팽팽
이재명 대표는 총선 승리 이후 당 장악에 나섰다. 4월 21일 이 대표는 친명계 인사들을 주요 당직에 대거 배치했다. 5월 3일 친명계 박찬대 의원은 추대 형식으로 22대 국회 첫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후보군으로 꼽히던 서영교 김성환 김민석 한병도 박주민 의원 등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 등 친명 지도부가 물밑에서 박찬대 의원으로 교통정리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친명계는 ‘추미애 국회의장 추대론’을 띄웠다. 정청래 김용민 김민석 등 친명계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추미애 당선인 지지를 선언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조정식 정성호 의원을 차례로 찾아 국회의장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친명계가 원내대표에 이어 국회의장 경선까지 교통정리에 나선 셈이다. 결국 5월 12일 두 의원이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추미애 당선인과 우원식 의원의 양자 대결로 좁혀졌다.
동시에 ‘이재명 대표 연임 추대론’ 군불 때기가 이뤄졌다. 5월 11일 정청래 최고위원은 SNS에 “이 대표 연임 대찬성”이라며 “당대표 연임이 정권 교체의 지름길이다. 당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12일 장경태 최고위원도 SNS에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해 이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이 대표가 개혁 국회를 위해 연임을 결단해달라”라고 밝혔다.
정가에선 이재명 대표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길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이 대표가 당대표를 연임한다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의(현 민주당) 총재를 지낸 김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5월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 경선과 총재 경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총재 연임을 발판 삼아 15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의 세 번째 대선 도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대표가 2027년 대선에 도전하면 세 번째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도 네 번째 도전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이번 총선을 치러 대승을 거뒀다. 여론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민심이 이 대표를 향하고 있지 않나. 이 대표가 당대표 연임해서 차기 대권까지 가야 한다.”
그러나 이를 향한 반발도 나왔다. 5월 13일 4선 중진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소위 ‘명심’이 잇달아 후보를 정리하는 것에 대해서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권력 서열 2위다. 구도를 정리하는 일을 대표나 원내대표가 관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조정식 정성호 의원이) 어떤 권유를 받아서 중단한 거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5선, 6선쯤 되는 중진 의원들이 처음부터 나오지 말든가, 나와서 중간에 드롭(Drop)하는 모양을 보면서 자괴감 같은 게 들었다”고 말했다.
5월 16일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재명 대표 연임’에 대해 “민주당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이 대표) 한 사람을 거의 황제로 모시고 있는 당 같다”며 “다들 대표하고 싶겠지만 저런 분위기에서 괜히 했다가 또 개딸들한테 역적이 될까봐 눈치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선하는 것이 역동적이고 당이 건강한 거지, 전부 눈치 보고 안 나오는 당이 다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지 참 걱정스럽다”며 경선을 치렀던 김대중 총재 연임과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기류가 국회의장 경선 결과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가에선 당을 장악해가던 친명계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표 리더십을 거론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 대표는 대표직 ‘연임’ 질문에 “아직 임기가 네 달 가까이 남았기 때문에 아직 그걸 깊이 생각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친명계가 원내대표부터 국회의장 경선까지 사실상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식으로 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재선 이상 의원들 사이에선 추미애 당선인에 대한 우려도 컸다. 우원식 후보도 사실 친명이다. 두 후보가 상대적으로 차별성이 크지 않은 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대표는 이번 국회의장 경선 결과를 통해 리더십을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친명계는 추미애 당선인이 정부‧여당과 싸우는 ‘배드캅’(나쁜 경찰)을 맡게 하고,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을 위해 ‘굿캅’(착한 경찰)을 맡도록 역할 분담을 하는 데 실패했다. 이번 국회의장 경선은 86세대 운동권, 친문계, 친이해찬계 등이 똘똘 뭉쳐서 반이재명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며 “친명계는 판을 새로 짜야 한다. 당초 친명계는 원내대표, 국회의장,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을 모두 차지해서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고, 더 나아가 탄핵까지 하기 위한 에너지를 모으려고 했으나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친명계는 국회의장 경선 결과를 두고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친명계 한 의원은 “이재명 대표 리더십에 흠집이 났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친명계가 우원식 의원을 배제했다면 절대 당선 안 됐을 것”이라며 “우 의원이 속한 김근태계 의원 모임인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민평련)와 ‘을지로위원회’ 등이 모두 살아 있는 조직이다. 여기에 더해 원내대표와 21대 국회 후반기 예결위원장을 지냈다. 반면 추미애 당선인은 4년을 쉬고 왔다”고 말했다.
이 대표 연임을 두고 여론은 팽팽하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5월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연임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45%로 ‘찬성한다’는 응답(44%)보다 1%포인트(p) 높았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연임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83%에 달했다. 반면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에선 연임에 반대하는 응답이 47%, 연임에 찬성하는 응답이 25%였다. 이 대표 연임에 대해서 당심과 중도층 간에 괴리감이 있는 셈이다(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앞서의 민주당 재선의원은 “국회의장 경선이 연임에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연임은 이재명 대표한테 달린 문제”라며 “이 대표 캐릭터를 보면 직진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대표는 그동안 연임하려고 했으나 당을 일극체제로 완성하는 데 실패했다.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며 “이 대표는 국회의장 경선에서 나타난 실질적인 반대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만약 연임하지 않으면 누가 윤석열 정권 대응 전략을 제대로 세울 인물인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