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으로 그려낸 ‘가구 위의 화룡점정’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화려하고 세련된 금속장식 문화가 발달했다면, 조선시대 초중기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되면서 실용성에 중점을 둔 장석 문화가 자리잡았다. 가령 목가구를 만들 때에도 장석이 화려한 꾸밈의 용도로 쓰이기보다는 경첩, 고리, 들쇠(반달 모양의 손잡이) 등 꼭 필요한 부분에 주로 기능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목가구 등에서 장식성이 강조되고 여성 취향에 따른 금속장식이 유행하면서 세련된 장석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장석의 재료로는 주로 두석(황동)이 쓰였으며, 보다 화려하게 장석을 꾸미기 위해서 백동도 사용되었다. 또한 민간에서 목가구의 금속장식을 만들 때에는 철판을 쓰기도 했다. 특히 두석은 금과 은에 비해 값이 저렴하고 색상이 매우 아름다워 귀중품을 보관하는 함과 궤를 비롯해 왕실의 각종 장식용 기물을 제작하는 데 널리 사용됐다. ‘승정원일기’에는 제빈(여러 빈) 이하의 탈것(가마)은 두석으로 장식하였는데 색이 금과 같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장석의 종류는 금속장식을 붙이는 물건에 따라 농장석, 궤장석, 의걸이(옷을 걸 수 있는 장)장석, 벼락닫이(위짝은 붙박이고 아래짝만 오르내려 여닫는 창문)장석, 모반(여섯 또는 여덟 모로 된, 음식을 담는 나무 그릇)장석, 전통장석 등으로 구분된다. 또한 장석의 문양으로는 나비, 박쥐, 붕어, 학 등 다산과 부귀영화, 수복강녕을 상징하는 동식물, 복(福)과 수(壽) 같은 문자, 기하학적 무늬 등이 쓰인다.

장석만으로는 하나의 완성품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에 두석장은 각종 기물을 만드는 소목장의 주문에 따라 기물에 맞는 장석을 특별 제작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목재 기물 제작에서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장석이다. 기물의 기능에 맞게 들쇠, 경첩 등이 만들어지고 부착되어야 비로소 해당 기물이 완성품이 되기 때문이다. 두석장을 목가구에 ‘화룡점정’하는 장인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석장은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초대 보유자인 김덕룡 선생을 거쳐 현재 김극천, 박문열 두 명장이 보유자로 활동하며 작품 제작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김 두석장은 통영 두석의 전통을 4대째 이어받은 토박이 장인으로 김덕룡 초대 두석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박 두석장은 전래되는 다양한 우리 비밀 자물쇠를 재현해 내 이름을 널리 알린 바 있다.
자료 협조=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