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화섬상숙’ 적자 누적으로 닝샤시 공장 설립도 전면 재검토…태광 “향후 투자 다각도로 검토”
#코로나 엔데믹 이후 실적 하락
태광산업은 2003년 중국 창수(常熟)시에 자회사 태광화섬상숙 법인을 설립한 후 스판덱스 공장을 준공했다. 태광화섬상숙의 공장은 연간 3만 2000톤(t)의 스판덱스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태광화섬상숙은 한때 태광산업 알짜 자회사로 평가 받았다. 태광화섬상숙은 2020년 매출 1551억 원, 순이익 32억 원을 거뒀고, 2021년에는 매출 3282억 원, 순이익 472억 원으로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다. 태광산업의 2021년 전체 매출 2조 5918억 원 중에서 12.66%를 차지한 셈이다. 태광화섬상숙의 당시 실적 호조의 배경으로는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2020년대 초반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해 마스크 수요가 급증하면서 스판덱스 수요도 덩달아 늘었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일부 국가가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을 선언하면서 태광화섬상숙의 실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도 영향을 미쳤다. 스판덱스 수요가 늘어나자 중국 업체들이 적극적인 설비 투자에 나서면서 공급이 급증한 것이다. 중국이 2022년 봉쇄 조치를 취한 것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중국 스판덱스 가격은 원재료(BDO) 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수급 밸런스 악화 등으로 작년 한 해 동안 하락세를 시현했다”며 “아직 뚜렷한 업황 개선 시그널은 부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태광화섬상숙은 2022년 매출 2397억 원, 순손실 564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이에 태광화섬상숙은 2022년 7월 수익성을 위해 경편직물 사업에서 철수했다. 경편직물은 루프를 수직 또는 경사 방향으로 형성해 만든 직물로 수영복 원단 등에 사용된다. 태광화섬상숙 경편직물 사업부의 2021년 매출은 127억 원으로 그 비중이 크지는 않았다.
경편직물 사업 철수 후에도 태광화섬상숙의 실적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태광화섬상숙은 2023년 매출 1392억 원, 순손실 397억 원을 거뒀고, 올해 1분기에도 매출 293억 원, 순손실 102억 원을 기록하는 등 적자 구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태광산업 자회사 중 지난해 적자를 거둔 곳은 태광화섬상숙뿐이었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연결 기준 147억 원의 순손실을 거뒀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태광화섬상숙의 부진은 뼈아픈 대목이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태광화섬상숙의 자본총액은 올해 3월 말 마이너스(-) 32억 원이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중국의 회계 기준에 맞춰서 작성된 재무제표를 한국 기준 회계로 변경하다보니 자본잠식으로 표기가 됐지만 실제로는 재무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태광화섬상숙의 실적 부진은 태광산업의 중국 투자 계획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광산업은 2022년 중국 닝샤시에 자회사 태광화섬닝샤를 설립한 후 스판덱스 공장을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요신문 취재 결과, 태광산업은 닝샤시 스판덱스 공장 설립 계획을 전면 재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스판덱스 공급이 과잉 상태고, 글로벌 경제 성장률 둔화 등으로 수익성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투자 미룰 수 없다”지만…
재계에서는 태광산업의 스판덱스 투자 확대를 예상하고 있다. 재검토 중인 닝샤시 스판덱스 공장 설립도 수년 후 업황 회복 시기에 맞춰 재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태광산업은 2022년 10조 원 투자 계획을 공개하면서 “스판덱스, 아라미드 증설 등을 통해 기존 사업의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공시한 바 있다.
성회용 태광산업 대표도 투자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성 대표는 서울방송(SBS) 보도국장 출신으로 지난해 6월 태광그룹에 합류해 티캐스트 대표를 맡았고, 올해 3월 태광산업 대표로 선임됐다. 성 대표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더 이상 투자를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태광그룹은 그간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진행했던 투자도 성과가 좋지 않다. 일례로 태광산업은 2021년 LG화학과 합작사 설립을 추진했지만 시황 악화로 사업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상태다(관련기사 [단독] 아직 착공도 안했다고? 태광산업 티엘케미칼 투자 재검토 내막). 앞서 태광산업은 2009년 북한 개성시에 공장을 세우고 원사와 마대 등을 생산했지만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된 후 더 이상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태광산업의 회사 규모도 축소되고 있다. 태광산업의 재계서열은 2018년 36위였지만 올해 50위까지 떨어졌다.
태광산업이 스판덱스 투자를 진행하더라도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이겨내야 한다. 섬유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시장이 회복하고 있다지만 그 속도는 예상보다 더딘 것 같다”며 “중국 현지 업체들이 공장 증설을 워낙 많이 해 국내 섬유업계가 힘든 시기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수는 오너 리스크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이 태광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직원들의 계좌로 수십억 원의 급여를 허위 지급한 후 이를 빼돌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월 16일 이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횡령 등의 혐의로 수감됐다가 2021년 만기 출소했다.
이 전 회장은 그간 취업 제한 규정으로 인해 경영에 복귀하지 못했다가 지난해 광복절 특별 사면을 받으면서 경영 복귀가 가능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오너와의 교감 없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며 “이 전 회장이 경영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섣부르게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앞서의 태광그룹 관계자는 “향후 투자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하게 확정된 것은 없다”며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