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장관과 윤 대통령 통화 등 주목…사실관계 확인 과정, 윗선 조사엔 아직 신중
현재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설 관련 수사를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VIP 격노설’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측이 제기한 것인데 “지난해 8월 1일 회의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대통령실 회의에서 VIP(대통령)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제기됐다. 조사 보고서 경찰 이첩을 막은 게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주장한 것인데, 법조계에서는 ‘VIP 격노설’은 처벌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수처도 “VIP 격노설을 수사하는 게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휴대전화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VIP 격노설을 입증하는 증거들은 휴대전화 속 기록들이다. 현재 공수처의 수사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휴대전화다. 평소 김 사령관은 통화를 모두 녹취해 왔는데, 이를 토대로 공수처는 ‘VIP 격노설’과 관련한 전화 통화 녹취를 확보했다.
통화가 이뤄진 것은 2023년 8월 1일. 사건 기록을 경찰에서 회수하기 하루 전날인 이날 김 사령관과 해병대 한 고위 간부가 대화를 나눈 건데 여기에 ‘VIP 격노설’ 관련 김 사령관의 육성이 담겨 있었다. 다만 김 사령관은 그동안 ‘VIP 격노설을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5월 21일 공수처에 출석했을 때에도 “VIP라는 단어를 언급한 적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수처는 녹취를 토대로 ‘경찰 이첩 결정’이 바뀌게 된 과정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당시 김 사령관과 통화한 간부도 조사해 “김 사령관이 ‘VIP 격노’에 대한 말을 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공수처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휴대전화 속 기록도 주목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겨레 보도 등을 종합하면 이종섭 당시 장관은 ‘VIP 격노설’의 시기로 지목된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회의 때 대통령실 유선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받아 2분 30초가량 통화했다. 격노설의 발원지인 안보실 회의는 오전 11시부터 열렸고 정오 즈음 마무리됐는데 그 회의가 끝날 때 즈음 통화가 이뤄졌다.
2023년 8월 2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낮 12시 7분 이 장관에게 자신이 검사 시절부터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첫 전화를 걸었다. 이후 낮 12시 43분과 12시 57분에도 각각 14분여와 1분여가량 통화했다. 2일 이뤄진 통화만 세 통이다.
이 통화가 이뤄진 전후로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보직 해임 통보를 받았고, 오후 2시 즈음에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경북경찰청에 ‘사건기록을 회수하겠다’고 연락했다. 8월 2일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통화도 수차례 이뤄진 날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이시원 비서관은 유재은 관리관과 통화하며 박정훈 대령 및 사건 이첩 관련된 의견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통화 이후 뒤바뀐 일련의 결정들을 고려할 때 ‘대통령의 격노와 통화 지시’가 경찰로 이첩하기로 했던 사건 회수 및 박정훈 대령 보직해임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수처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계환 사령관을 소환해서 박정훈 대령과 대질을 시도한 것이나, 유재은 관리관과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소환해 확인한 것도 당시 통화 등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에 확인하기 위함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지시가 불법? 화내면 불법?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법조계 대다수의 반응이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 관련 수사 방향을 지시한 것은 국방법원법 등을 고려할 때 ‘상관의 지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령관 등 윗선까지 책임을 과도하게 묻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해도, 이를 불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특히 VIP 격노설의 경우 직접 보거나 들은 사람이 없다. 제3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렇다더라’는 전언이 전부다. 전언의 경우 법적 증거 효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 증거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7월 31일 열린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회의에 참석자들 중 누군가를 소환해 조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직 관련 ‘범죄 혐의’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대통령의 격노 대상이었다고 알려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측은 “대통령의 격노를 접한 사실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이 화를 내면서 밑에서 처리한 사안에 대해서 ‘다른 방향으로 처리하라’고 지시를 하는 게 불법이 된다면 역대 모든 대통령이 다 외압이니 특검을 당해야 하는 것이냐”며 “처리 방향을 놓고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군 통수권자이기도 한 대통령의 조치는 군사법원법을 고려할 때 ‘따라야만 하는 상관의 지시’”라고 풀이했다.
공수처도 VIP 격노설이 자꾸 언론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2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범죄 혐의를 규명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며 “VIP 격노설을 확인하려는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나 신범철 전 차관 등 의혹의 윗선으로 조사를 확대할 단계는 아직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당시 사건 처리 과정 확인을 위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대통령실 관계자 및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혐의를 적용하기 쉽지 않은, 고난도의 정치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보면 공수처가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자리를 잡았는지를 확인하는 동시에 신임 공수처장의 역량까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