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기여로 인정된 ‘정경유착’ 반박 증거 필수…‘SK 주식=특유재산’ 전원합의체 간다면 다퉈볼 만하다는 의견도
1심 때만 해도 ‘당연한 판단’이라며 관망하던 최태원 회장 측은 비상이 걸렸다. 2심에서 판단한 1조 3800억 원이라는 재산분할 결정을 이행하려면 최 회장이 주식담보 대출을 일으키거나, SK실트론 등 알짜 기업의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관련기사 [단독] 끝까지 간다? 공정위-최태원 SK실트론 관련 소송 대법원행). 상고를 해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의 시간을 벌었다지만, 2심의 완패가 뼈아프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최 회장 측은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 등 노소영 관장 일가의 ‘도움’을 반박할 핵심적인 증거들을 제출해야 한다. 원래 대법원은 법리만 다투는 곳이기 때문에 ‘특유재산과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기여도’에 대해 법리적인 접근을 해야만 최 회장 측이 2심 판단을 뒤집을 가능성이 생긴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 속 노소영 정중동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SK 관련주들이 급등했던 상황. 특히 재판 과정에서 ‘SK 경영권을 욕심내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했던 노소영 관장 측이 “(우호 지분으로 남는 것에 대해) 아직 생각할 상황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이슈가 됐다.
1심에서 패소한 직후 ‘경영권을 노리는 게 아니’라는 점을 법률신문 인터뷰에서도 강조했던 것과 다소 달라진 입장이라는 분석이다. 노 관장은 2023년 법률신문에 “상급심(2심)에서 저의 기여만큼 정당하게 SK 주식을 분할 받으면 SK가 더 발전하고 성장하도록 적극 협조할 생각”이라며 “제 아이들 셋이 다 SK에 적을 두고 있다. 당연히 SK가 더 좋은 회사가 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는 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재판에서도 주식 대신 ‘현금’으로 재산을 분할해달라고 요구하며 경영권에 대해 다툴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2심 선고 이후 뉘앙스가 바뀌었다. 일부 언론에서 노 관장 측 법률대리인이 “SK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SK(주)의 우호 지분으로 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보도가 나오자, 노 관장 측은 “변호사가 개인 의견을 얘기한 것”이라며 “(우호지분으로 남는 것에 대해) 아직 생각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을 아꼈다.
최 회장이 재산분할 금액을 마련하려면 SK그룹 지주회사인 SK(주)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해야 하거나 담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들도 나온 상황이다. 특히 노 관장이 재산분할 받은 1조 원대 현금으로 SK(주) 지분을 매수하는 등 방식으로 SK 경영권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 관장 측을 상담한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노소영 관장 개인뿐 아니라, 노씨 일가 전체가 SK에 기여한 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이혼 소송은 노소영 관장 개인이 아니라, 노씨 일가 모두가 함께하는 싸움이기에 보통의 이혼 재판처럼 재산만 분할 받고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오너 리스크 우려에 입장 내놓은 최태원
1심 판결 승소 이후 노소영 관장의 언론 인터뷰에 강하게 반발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6월 3일 SK 구성원을 포함, 여론에 입장을 내놓았다. “개인적인 일로 SK 구성원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SK와 국가 경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묵묵하게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힌 것. 이어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 잡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오전, 최 회장은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임시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도 참석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 최고협의기구로, 최창원 의장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이 매월 1회 모여 그룹 차원의 공동 현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날 회의는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최태원 회장도 참석했는데 참석자들은 최 회장 개인을 넘어 그룹 가치와 역사가 흔들리는 만큼, 그룹 차원의 입장 정리와 대책 논의 등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SK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 노태우 정부의 특혜가 있었다는 취지의 판결에 대해서는 일부 CEO들이 “노태우 정부 당시 압도적인 점수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고도 정부의 압력 때문에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직접 경험한 일”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2심’ 반박할 수 있는 증거들 제시해야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2심 재판부 판단을 뒤집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2심 재판부는 ‘남편’으로서 최태원 회장이 제대로 된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질타한 점은 뼈아프다는 분석이다.
2심 재판부는 선고 당시 “최 회장(원고)이 시인하는 부정행위 시점은 2009년도 5월 초경이고 혼외자가 2010년에 태어나고, 이후 입양해 현재까지 십수년 사실혼 관계를 유지 중”이라며 “최 회장은 노 관장과 별거 후 김희영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의 관계 유지 등으로 가액 산정 가능 부분만 해도 219억 원 이상을 지출하고 가액 산정 불가능한 경제적 이익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또 동거인(김희영 이사장)과의 혼인관계를 일방적으로 공개하고, 공거인과 공개적 활동을 지속한 것은 마치 배우자 유사 지위에 있는 거 같은 태도라고도 지적했다.
때문에 대법원에서 최 회장 측은 혼인 생활 과정에서의 책임을 놓고 다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가정법원 재판 경험이 많은 한 부장판사는 “결혼생활 중 책임을 놓고 다투기에는 최 회장이 불리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역대 최대 위자료 20억 원 같은 부분은 적극적으로 다투는 게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며 “차라리 특유재산 여부를 놓고 법리적으로 붙어보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SK 주식 등 최 회장 소유의 계열사 지분 대부분을 특유재산 재산분할 대상으로 폭넓게 인정한 사건인 만큼 대법원 소부에서 ‘대법관 중 누군가의 이견’이 나올 수 있다. 전원합의체로 간다면, 거꾸로 최 회장 손을 들어줄 대법관이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다퉈볼 만하다는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재산분할 비중을 놓고 다투기보다는 물려받은 SK 주식을 부부의 공동 재산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를 얼마나 잘 세워서 증거와 함께 제시하는가가 최태원 회장 측에 필요한 법적 전략인 것 같다”며 “전원합의체에 가지 않고, 소부에서 사건이 뒤집히려면 일부 재산에 대해 ‘공동 재산이 아니’라는 정도일 텐데 그럴 경우 1조 원이 넘는 재산분할은 피하기 힘들 것이고 전원합의체까지 간다면 SK 주식이 특유재산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대법관들의 판단이 나오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