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제보’ 주장 네티즌 “하루 만에 ‘복붙’해 공개”…폭로 후 구독자 8배, 예상 월수익 1700만원 이상
#오랜 시간 추적했다더니…
6월 6일 오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인드에 ‘나락보관소에게 밀양 주동자 최초 제보했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을 쓴 A 씨는 “밀양 사건 때 분노해서 그 후로 20년 동안 가해자 신상털이에 몰두했었다”며 “유튜브에 밀양 사건 제보를 받는다는 글을 보고 모아둔 자료들 중 90% 가까이를 (나락보관소에게) 보냈는데 크로스체크도 안 한 건지 다음날 바로 영상이 올라왔다”고 했다.
해당 글에 첨부된 메일 사진 등 자료에 따르면 외국에 사는 A 씨는 현지시간으로 2024년 5월 31일 오전 9시 43분 폭로 유튜버 ‘나락보관소’에게 ‘밀양 단체 성폭행 주범 신상 제보해드림’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A 씨는 메일에 밀양 사건 주범의 신상정보와 자신이 그동안 어떤 방법으로 가해자의 신상을 알아냈는지 등의 방법을 적었다. 또 한 가해자가 취업한 회사에 직접 신고 메일을 넣어 취직을 무산되게 만든 일도 있었다고 했다.
나락보관소는 이 제보를 받은 지 만 하루 만인 6월 1일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제목은 ‘밀양 성폭행 사건 주동자○○○. 넌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나봐?’. 밀양 사건 가해자 신상공개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영상이었다.
그러나 A 씨는 영상 속 내용의 90% 이상이 자신이 제보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 추적이나 가해자 회사로 신고 메일 보내기 등 A 씨가 한 일을 마치 나락보관소 자신이 한 것처럼 자막을 바꿔 달기도 했다고 밝혔다. A 씨는 “(나락보관소가) 크로스체크도 제대로 안 한 건지 제보 바로 다음날 영상을 올렸다. 황당했던 건 영상의 99%가 내가 한 말과 내가 보낸 사진들을 복사해 붙여넣기 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조회수가 올라갈 땐 제보 메일 여러 개 보내도 답장이 없더니 가해자가 청도의 국밥집 아들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내게 ‘국밥집은 아니라고 하네요’라는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실제로 가해자는 국밥집 사장의 아들이 아닌 조카로 밝혀졌다.
그동안 나락보관소는 영상과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자신이 가해자를 오랜 시간 추적해왔다고 밝혔다. 또 자신 외에 밀양 사건 가해자 신상을 올리는 다른 폭로 유튜버들을 겨냥하며 “저를 돕겠다며 가해자들의 신상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건 엄연히 ‘크로스체크’가 되어야 하는 사건이다. 저와 팩트체크 한 번 더 하시고 올리시는 게 좋을 것 같다. 가해자는 맞지만 일부 정보가 맞지 않는다”며 신중을 기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줘 구독자들의 응원과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 역시 무분별한 정보를 올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피해자 의사 존중” 부탁에도 나 몰라라
이러한 무차별적인 영상 게재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밀양에서 네일숍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 B 씨는 5일 지역 맘카페에 “저는 밀양 성폭행 사건으로 거론된 인물의 여자친구가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B 씨는 앞서 나락보관소 영상의 댓글 등에서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지목됐다. 이에 다른 유튜버들이 B 씨의 가게를 찾아가거나 우편함을 뒤졌고 이 과정에서 B 씨의 실명이 노출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B 씨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마녀사냥으로 아무 상관없는 제 지인이나 영업에 큰 피해가 되고 있다. 진정서를 제출하고 법적 조치를 시작했다”고 했다. 사건이 커지자 나락보관소는 “제가 올린 글로 인해 네일숍 사장님이 공격을 받았는데, 공격을 멈춰달라”고 공지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밀양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의 의사가 전혀 존중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6월 5일 밀양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 가운데 한 곳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보도자료를 내고 “피해자 측은 나락보관소가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첫 영상을 게시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사전 동의에 대한 질문을 받은 바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측은 영상이 업로드된 후 6월 3일 영상 삭제 요청을 했고 44명 모두 공개하는 방향에 동의한 바 없다”며 “(해당 공지에 대해) 삭제·수정할 것을 재차 요청했으나 정정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의 일상 회복,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거리가 먼 일방적 영상 업로드와 조회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고 전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밀양 사건 가해자들이 경찰에 체포된 이후인 2004년 12월부터 울산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피해자 가족에 대한 상담과 법률 지원, 병원 연계, 학교 전학, 복지 등을 지원하고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 및 2차 피해 방지 등을 촉구해오고 있는 단체다.
그러나 나락보관소는 이에 대한 어떠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앞서 그는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범행에 가담한 44명의 신원을 모두 확보했고,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사전에 가해자 신상 공개에 대한 허락도 받았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영상을 제작하는 것도 모자라 이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유튜버의 수입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락보관소의 채널 구독자 수는 밀양 성폭행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시작한 이후 기존 6만 명에서 7일 기준 49.2만 명을 돌파했다. 밀양 사건 영상 조회수는 개당 200만~300만을 웃돈다. 크리에이터 데이터 분석 서비스 녹스 인플루언서에 따르면, 나락보관소의 예상 월 수익은 1756만 원이다. 여기에 광고를 붙일 시 얻게 되는 제휴 수익은 영상 1개당 641만 원을 넘는다.
일요신문은 6일 나락보관소에 ‘A 씨로부터 제보 메일을 받은 적이 있는지’ ‘가해자 44명의 정보를 모두 확보하고 영상 제작을 시작한 것이 맞는지’ ‘피해자 가운데 몇 명에게 가해자의 신상공개에 대한 동의를 받았는지’ 등의 질의 메일을 보냈으나 같은 날 메일을 확인한 나락보관소는 7일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