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송무 주관, 유력 전관 영입으로 왕조 이룩…위기설? “몇 번 졌다고 해서 약발 떨어진 건 아냐”
#왕조는 어떻게 탄생했나
김앤장의 정식 명칭은 김·장법률사무소다. 1973년 초에 김영무 변호사가 설립한 김앤장은 법무법인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형성한 조합 형태의 법률사무소다. 같은 해 말 김 변호사의 서울대 법대 동기이자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로 유명했던 장수길 변호사가 합류했다. 장 변호사는 1971년 ‘서울대생 신민당사 점거 사건’ 당시 담당 판사로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해 청와대에 밉보이고 판사 재임용에서 떨어진 상황이었다.
김앤장의 역사를 보면 오늘의 김앤장 왕조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앤장은 1970년대 국책은행과 기업들의 차관 도입 업무를 수행하며 진가를 보여줬다. 당시 대한항공(5억 달러)과 호남정유(2억 달러)의 차관 도입은 한국 기업의 신인도를 높인 대표적인 사례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해외 증권 발행 등 국제 금융 조달과 관련한 자문에서 명성을 높였다. 금융권과 기업들의 외국인 대상 수익증권 발행과 해외 전환사채 발행 등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폴로·캘빈클라인·샤넬·구찌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이 김앤장을 찾으며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도 선두 주자가 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김앤장 성공신화의 발판이 됐다. 김앤장은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파산 위험에 직면할 때 법원의 중재감독 하에 채권자들과 채무변제협정(화의조건)을 체결, 파산을 피하는 ‘화의 사건’을 주관했다. 화의 제도는 파산하거나 대주주가 교체돼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면서 부실을 은폐할 수 있는 제도로 활용됐다. 이에 따라 부실기업주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김앤장의 화의 사건 수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해외매각·인수합병 등의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는데 그 과정에 김앤장이 개입해서 사업으로 만들었다. 김앤장은 여기서 막대한 수임료를 챙기면서, 법률도 다루면서 자본도 집적하게 됐다. 실제로 1997년에 김앤장은 기아그룹 계열사들에 16건의 법률자문을 해주고 28억 원을 받았는데 그것이 너무 많다고 해서 변협 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기도 했다.
이후 김앤장은 ‘맨파워’를 바탕으로 성장을 가속화했다. 김앤장 설립 초기부터 합류한 이들은 대부분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졸업, 사법시험 수석 합격·졸업 또는 최연소 합격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게다가 거액의 연봉을 주면서 퇴직한 고위 법관과 검사, 행정부, 금감원, 공정위 고위 관료들을 끌어모았다. 이른바 ‘힘 있는 전관’들을 영입해 권력기관 핵심부를 겨냥한 셈이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법률사무소로 거듭난 김앤장의 명성은 바다를 건넜다. 2012년 7월 세계적 법률 전문 미디어 영국 ‘후스후 리걸(Who's Who Legal)’이 ‘세계 100대 로펌’을 선정했는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김앤장이 포함됐다. 또한 2021년 9월 미국의 법률전문지인 ‘아메리칸 로이어’가 발표한 ‘전 세계 200대 로펌의 2020년 매출 실적’에 따르면 김앤장은 9억 8851만 달러(약 1조 1650억 원)를 기록해 53위를 기록했다. 100위권 진입 국내 법률사무소는 김앤장이 유일하다.
#대형 사건 패소, 김앤장의 위기?
하지만 김앤장이 대형 사건에 잇달아 패소하자 업계 1위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김앤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과 ‘하이브 계열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제기한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모두 패소했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혼소송의 경우 1심에서 사실상 승소했지만, 김앤장 소속 변호인단이 합류한 항소심에서 최 회장 측이 패소하면서 이러한 위기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월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1조 3808억 원, 위자료로 20억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1심 때 재산분할액 665억 원, 위자료 1억 원에서 껑충 뛴 것이다. 재판부는 최 회장의 유책행위가 있다고 봤으며 “동거인인 김희영은 2008년 11월 이혼했는데, 같은 시기 최 회장이 노 관장에 보낸 자필 편지에 따르면 최 회장이 김희영의 이혼에 관여한 것이 확인됐다”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쓴 편지의 내용인 “내가 김희영에게 이혼하라고 했다. 내가 계획하고 시킨 것”이라고 적힌 게 근거가 된 것이다.
항소심부터 노 관장을 대리한 법무법인 율우·평안·리우·한누리 변호사들은 선고 이후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다. 반면 항소심에서 새롭게 선임돼 최 회장을 대리한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은 부담을 안게 됐다. 김앤장은 패소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대응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 측은 지난 1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김앤장 소속 유해용 변호사와 노재호 변호사를 새로 선임했다. 이들은 1심부터 최 회장을 대리했던 법무법인 로고스·원 변호사들과 협업했다.
한편 이 사건 선고로부터 약 1시간 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도 김앤장이 대리한 하이브가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민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민 대표와 하이브는 2023년 3월 주주간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계약은 ‘민 대표에게 해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민 대표를 해임하는 내용으로 하이브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해석된다”라면서 “민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 지배 범위를 벗어나려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나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행위까지 나아갔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는 맞으나 업무상 배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앤장은 하이브와 민 대표 간 분쟁 초기부터 법률 자문을 맡았다. 하이브와 민 대표가 맺은 주주 간 계약이 어도어 지분 80%을 보유한 하이브의 의결권 행사를 막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또 민 대표가 하이브로부터의 경영권 탈취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하이브 산하 다른 레이블(소속사) 가수에게 손해가 되는 행위를 한 점 등을 이유로 해임 사유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앤장이 같은 날 두 대형 사건에서 연이어 패소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김앤장 참사의 날’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누리꾼들은 “김앤장 이름값을 못한 것 아닌가” “향후 재판에서 뒤집지 못하면 김앤장 명성에 금이 갈 듯” 등의 반응을 드러냈다.
반면 두 사건에서 김앤장 반대편에 섰던 변호사와 로펌은 수혜를 보고 있다. 노 관장 측 법률대리인 김기정 법무법인 율우 대표변호사와 민희진 측 법률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세종 등은 ‘김앤장을 이긴 로펌’으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업계 1위인 김앤장에 다소 까다로운 사건이 집중되기 때문에 위기설 거론은 지나치다는 분석도 나온다. 채우리 법무법인 새록 변호사는 “김앤장이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는 사건을 맡다 보니 위기설이 나올 수는 있지만, 김앤장이라고 항상 이기기만 할 수는 없다”면서 “단순 승소율만 따진다면 이기기 쉬운 사건만 수임하면 된다. 몇 가지 패소 사례로 ‘김앤장 약발이 떨어졌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인숙 민들레법률사무소 변호사 역시 “(변호사들이) 소송을 1년에 수백~수천 건을 맡는데 큰 사건에서 졌다고 위기에 봉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높은 업무강도 등으로 인한 내부 불만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김앤장 소속 5~6년 차 변호사 12명이 단체로 판사로 전직한 이례적인 사례가 있었다. 이를 두고 한 법조계 인사는 “김앤장 쇼크”라고 칭할 정도로 업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젊은 변호사들이 많은 업무를 높은 급여로 보상 받기보다는 자율성과 워라밸이 보장될 수 있는 판사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경쟁 로펌 중에서도 업무강도가 엄청난 수준이라 스트레스 때문에 김앤장을 떠나 다른 로펌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고 알려진다. 김앤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김앤장에 대해 “변호사가 직접 수임을 해오기보다는 위에서 일을 계속 분배하는 구조”라면서 “김앤장에 처음 들어갈 때 높은 연봉을 제안 받았지만, 1년도 안돼 후회했다. 사건이 계속 들어와 새벽 4~5시에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전관 출신 변호사 역시 끊임없는 업무로 인해 이직을 후회하더라”라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