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운영위·과방위원장 배분 놓고 팽팽…민주당 독주 강행 시 윤 대통령 거부권 반복 전망
6월 5일 오전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 첫 본회의를 앞두고 원 구성 협상을 진행했으나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총 18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원 구성 협상을 두고 대치를 이어갔다. 특히 법제사법위원장(법사위) 국회운영위원장(운영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과방위)을 두고 여야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회동 후 기자들에게 “원 구성 협상에서 서로의 의견을 개진했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며 “앞으로 계속 대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화와 타협을 계속 시도하고 협의를 이뤄나가겠지만 민주당은 6월 5일 의장단 선출, 7일 원 구성을 법대로 완수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결국 22대 국회 첫 본회의는 국민의힘 불참으로 파행하며 ‘반쪽 출발’이란 오점을 남겼다. 6월 5일 오후 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등 야당 의원들만 본회의에 참석했다. 제헌국회 이후 집권 여당이 불참하고, 야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개원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단독 본회장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학영 국회부의장을 선출했다. 국민의힘은 여당 몫 부의장 후보를 내지 않았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지금 본회의가 열렸다고 하지만 여야 간 의사일정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본회의는 성립할 수도 없고 적법하지도 않다”며 “거대 야당이 힘자랑만 하며 막무가내로 국회를 끌고 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준 45.1%의 민심을 존중하지 않고 짓밟고 조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표가 0.73%포인트(p) 차이로 졌는데, 그런 민심을 존중했는지 되묻고 싶다”며 “윤석열 정부는 2년간 검찰을 동원해서 대선 경쟁자였던 이 대표를 향해 칼날을 겨누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가 이번 총선 의석수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민심을 받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선 21대 국회 전반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군소 정당과 함께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과 국회부의장을 선출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거세게 항의하며 불참했다. 이후 여야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갈등을 빚은 끝에, 민주당이 21대 전반기 국회에서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민주당은 원 구성 법정시한인 6월 7일까지 협상을 마쳐야 한다며 국민의힘을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도 6월 10일 본회의에서 법사위, 운영위, 과방위를 포함한 민주당 몫 11개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을 단독으로 표결할 예정이다. 이후 여당 설득에 나서되,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나머지 7개 상임위원장까지 차지하겠다는 구상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6월 7일 이재명 대표는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타협을 시도하고 조정을 해보되 타협이 되지 않으면, 합의가 될 때까지 미룰 게 아니라 헌법과 국회법 그리고 국민의 뜻에 따라서 다수결 원리로 원 구성을 하는 게 타당할 것”이라며 “노는 국회가 아니라 일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 국정을 책임진 주체는 정부와 여당”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국회 관례상 여당이나 원내 제2당이 법사위원장 및 운영위원장을 맡아왔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22대 국회에서도 21대 국회 후반기에 위원장을 맡았던 7곳을 그대로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법제사법위원회·국회운영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국방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정보위원회다.
6월 7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주재한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 참여할 수 없다”며 “상임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명단도 제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6월 7일 자정까지 상임위 선임안 제출을 요구한 바 있다.
6월 7일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국민의힘에) 상임위원장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수요가 있다. 아마 끝까지 보이콧을 해서 협상 결렬시켜서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18개를 다 가져가게 만들 것 같지는 않다”며 “가장 합리적인 안은 법사위원장은 소수당인 여당에 주고 나머지 운영위원장과 과방위원장은 다수당인 민주당 요구에 맞춰서 합의해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선 법사위원장보다는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원장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더라도 법안 처리 속도만 늦출 수 있고 통과를 막긴 어렵다는 이유다. 192석의 거대 야당은 본회의 직회부를 통해 법사위를 무력화할 수 있다. 국회법상 법사위에서 60일 이상 법안이 계류되면 소관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찬성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은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이나 본회의 직회부를 택하면 법안 처리 속도도 늦어지고, 조국혁신당 등 다른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법사위원장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도 거대 야당이 여당과 합의 없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하는 양상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윤 대통령이 21대 국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14개에 달한다. 6월 5일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을 향해 “법사위를 갖고 계속 입법을 강행하고 입법 독재가 진행될 때 수백 건의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거대 양당 모두 총선 민심을 오판하고 있다. 민심은 싸우지 말고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해 협치하라고 했다. 원 구성부터 ‘강대강’ 극한 대치하고 있는 걸 보면,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되고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은 품위를 지키면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회의장을 민주당이 차지했으면, 상식적으로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에 줘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안을 다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을 갖고 있지 않나. 도대체 왜 퇴로도 열어주지 않고 이렇게 거칠게 국민의힘을 압박하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총선 민심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를 바꾸고, 민주당은 탄핵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