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내에서도 임기단축 개헌 동의 발언 나와…지지율 10%대로 떨어지면 탈당 목소리 거세질 전망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총선 이후 두 달째 20%대에 머물고 있다. 5월 28일부터 30일까지 한국갤럽 자체 실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에 ‘잘하고 있다’ 평가가 21%에 그쳤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70%를 기록했다. 긍정평가는 취임 후 최저치, 부정평가는 최고치다. 더 큰 문제는 채 해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 등으로 인해 지지율 반등 모멘텀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야권은 190석이 넘는 의석을 앞세워 윤 대통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통령 탄핵’ ‘임기단축’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윤 대통령이 ‘채 해병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하자 자신의 SNS에 “거부권 행사로 탄핵의 마일리지가 쌓였다”며 “국민과 야당은 ‘윤석열 탄핵열차’에 탑승할 준비가 됐다. 출발신호를 기다린다”고 직격했다.
조국혁신당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통한 윤 대통령 임기단축을 제안했다. 조국 대표는 5월 17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22대 국회가 열리면 국회와 국민 모두 개헌을 논의하자”며 윤 대통령을 향해 임기단축에 대한 결단을 촉구했다.
야권의 전방위적 공세에 맞서기 위해 윤 대통령은 여당 단속에 신경을 쓰고 있다. 윤 대통령은 5월 30일 국민의힘 의원 워크숍에 참석해 “여러분 한분 한분이 당과 국가의 귀중한 자산”이라며 “이제 지나간 건 다 잊어버리고 한몸이 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도 윤 대통령 탄핵 및 임기단축 가능성 관련 발언이 공공연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당권주자인 나경원 의원이 대통령 임기단축을 거론했다. 나 의원은 5월 27일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에서 개헌을 통한 윤 대통령 임기단축에 대해 “4년 중임제를 논의하면서 대통령 임기단축 얘기도 함께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며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라 먼저 얘기하기 조심스럽지만, 개헌을 논의할 땐 모든 것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임기단축 문제도 전향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냐’는 질문에 “논의를 하다보면 결국 어떤 쪽으로 합의되느냐에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도 이어갈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발언 논란이 거세지자 나경원 의원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다음날 자신의 SNS에 “(대통령) 5년 임기는 원칙이고 기본이며 국민 공동체의 약속”이라며 “대통령과 현 정권을 흔들기 위한 정략적 의도의 개헌 논의는 나 역시 반대한다. 탄핵 야욕을 개헌으로 교묘히 포장하는 일부 야당의 주장은 단호히 거부한다”고 선을 그었다.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앞서 국민의힘 의원 워크숍에 강연자로 초청돼 “절대로 이 땅에 다시는 탄핵이 있어선 안 된다. 하야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깜짝 놀란 게 옛날에는 탄핵이란 말을 입에도 못 올렸다. 요새는 까딱하면 탄핵이라고 한다”며 “엊그제 광화문에 수만 명이 모여 탄핵하라고 집회를 하는데 탄핵이란 얘기가 이렇게 막 동네 강아지 이름 부르듯이 쓰이니까 임기단축, 하야라는 말은 너무 쉽게 나온다”고 비판했다. 탄핵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여권에서도 실제 탄핵이 추진될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나경원 의원은 여당 주요 요직을 다 거친 중진 의원이다. 공개석상에서 자신이 한 발언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다 알고 있다”며 “여당 내에서도 윤 대통령 임기단축에 대해 말이 돌았으니, 토론에서 그렇게 발언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실제 국민의힘 일각에서 야당이 주장하는 윤 대통령 임기단축을 포함한 4년 중임제 개헌에 동조하며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한 핵심 관계자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4년 중임제 개헌 추진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22대 국회가 본격 가동돼 개헌 목소리가 나오면 함께 논의에 나선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언제까지 국회에서 민주당에 끌려 다닐 수만은 없다.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그걸 개헌으로 잡은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보수진영 전체로 봤을 때 탄핵보다는 임기단축이 낫다는 판단이 고개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보수정당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을 겪었다. 당시 보수정당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찬반 여부를 두고 둘로 쪼개졌고, 결국 민주당에 정권을 내줬다”며 “국민의힘 내부에는 윤석열 대통령보다 일단 보수정당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탄핵국면을 맞이해 다시 궤멸 수준의 위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대통령 임기단축을 선택하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개헌 필요성은 10년 전부터 있어왔다. 그때마다 나온 제안이 4년 중임제다. 그런 연장선에서 나온 논의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러워 했다.
민주당 등 야권으로서도 윤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범야권은 최근 윤 대통령의 채 해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두고 탄핵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해도,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최종 인용 의견을 받아야 한다. 현재 헌재 구조는 보수적 성향의 재판관이 다수라 통과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이번에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 기각 결정에서 보듯 윤 대통령 탄핵국면이 가도 헌재 탄핵심판 인용을 받아내기 쉽지 않다. 이에 차선책으로 개헌을 통해 윤 대통령 임기를 단축시키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6월 1일부터 2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 질문에 응답자 절반이 넘는 55.5%가 ‘찬성’ 입장을 보였다. 반대는 33.2%였다. 하지만 개헌을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 본인의 임기단축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가에서는 윤 대통령이 동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변수는 윤 대통령 지지율이다. 앞서 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는 27.8%를 기록했다. 특히 정치성향을 중도라고 밝힌 층에서는 긍정이 19.3%로, 지지율 20% 선이 붕괴됐다(각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처럼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20~30%대에서 답보 상태이거나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조만간 20%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지율 10%대’는 상징성을 갖는다.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려도 정치권이나 정부기관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고 갇혀버린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이 마비된 ‘심리적 탄핵’에 접어든 단계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이 수개월 지속되면 여당에서도 ‘인기 없는 대통령’에 탈당을 요구하는 등 거리두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지금이야 아직 윤 대통령의 영향력이 여전하지만, 7월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꾸려지고 차기 권력이 부상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며 “22대 국회의원들은 윤 대통령보다 임기가 길다.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윤 대통령에 등을 돌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재임 중 본인이 몸담았던 정당에서 탈당을 요구 받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당시 후보와 갈등을 빚다 차기 대선을 74일 앞둔 1992년 10월 5일 탈당계를 제출하며 민자당을 떠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말인 1997년 11월 7일 신한국당을 탈당해야 했다. 차기 대선을 41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이회창 당시 대선후보가 기자회견을 통해 김 전 대통령 탈당을 공식 요구하는 등 압박이 거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16대 대선을 227일 앞두고 탈당을 선택했다. 임기 말 각종 권력형 비리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당에 부담이 커지자, 16대 대선을 227일 남긴 2002년 5월 6일 새천년민주당 당적을 포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두 번이나 탈당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 9월 열린우리당 합류를 위해 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했다. 이후 임기 말인 2007년 2월 대통령 지지도 추락이 대선판에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여당의 공세에 열린우리당에서도 당적을 정리했다. 17대 대선을 294일 앞둔 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임기 말 새누리당 내에서 탈당 요구가 거셌지만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며,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으로 탈당 없이 대통령 임기를 마쳤다. 하지만 2017년 1월 친이계 의원들이 대거 새누리당을 떠나자, 그때서야 당적을 정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말 탄핵국면에서 자진 탈당을 요구 받았다. 하지만 탈당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에서 파면됐고, 결국 2017년 말 자유한국당이 박 전 대통령을 강제 출당 및 제명 조치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자진 탈당이 아닌 강제로 당적이 정리된 첫 사례가 됐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들이 대부분 여당으로부터 탈당 요구를 받았지만, 이는 임기 말의 일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경우 이제 임기 3년차에 불과하다. 국정마비 상황을 2년 가까이 지속되도록 국회가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도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서 탄핵 추진 논의가 본격화됐다. 윤 대통령도 지지율이 10%대를 기록하면 탄핵 발언이 더 자주 나올 것이다. 그럼 윤 대통령으로서도 탄핵과 임기단축 개헌을 두고 고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