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저격수’ 렌호 vs ‘3선 도전’ 고이케…자민당, 탈당한 고이케 물밑에서 밀어주기 움직임
#‘자민당 저격수’ 출마 선언, 그 속내는?
도쿄도지사의 선거 상황이 일변했다. 발단은 5월 27일 입헌민주당의 렌호 의원이 출마 회견을 열면서다. 렌호 의원은 이른바 ‘자민당 저격수’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 이날 회견에서도 ‘반(反)자민당, 비(非)고이케’를 외치며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렌호 의원은 “고이케가 자민당의 정권 연장에 도움이 되는 행정을 하고 있다”며 “낡은 정치와 단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동인구가 많은 도쿄의 경우 인지도가 높은 후보가 우위를 점한다. 전통적으로 도지사 선거는 현직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도전장을 내민 렌호 의원은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일본 매체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입헌민주당이 내밀하게 실시한 사전 조사에서 ‘렌호 의원이 출마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설령 이번 도지사 선거에 실패하더라도 중의원 선거가 있고, 내년 7월 예정된 참의원 선거로 국정 복귀가 가능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무엇보다 렌호가 선전하거나 승리를 거두면 입헌민주당이 정권교체로 향하는 큰 원동력이 된다.
일본 정치 평론가 고토 겐지는 “당초 안정을 추구하는 일본 유권자 특정상 보수성향이 강한 고이케 지사의 3선이 유력하다는 평가가 많았으나 렌호 의원의 출마로 결과 예측이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고이케 지사를 둘러싼 학력위조 의혹이 재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자민당과 기시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도 고이케 지사에게는 악재다.
반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4월 치러진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데 이어, 5월 시즈오카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자민당에 완승했다. 이에 고토 평론가는 “기세가 오른 입헌민주당이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승부수를 걸어 정권교체를 위한 포석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지금까지 고이케 지사가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강했던 이유는 인지도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고토 평론가는 “고이케 지사 못지않게 렌호 의원의 인지도가 높아 충분히 맞서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여론전 능한 고이케 이번에도 통할까
고이케 지사도 뉴스 캐스터 출신으로 미디어와 대중의 속성에 정통한 정치인이다. 일본에서는 ‘극장 정치’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극장 정치란 미디어를 활용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정국을 주도하는 수법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특기였다. 공교롭게도 고이즈미 전 총리는 고이케 지사의 정치 스승이기도 하다.
가령 목적달성을 위해 선악 대결로 밀어붙인다. 반대세력을 악역으로 보고, 자신은 서민 편에서 서서 싸움을 거는 구도를 만드는 것. 2016년 고이케는 도쿄도지사 선거 때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한 바 있다. 이후 자민당 중심의 도쿄도 행정을 ‘블랙박스’라고 비판하고 “자민당 의원들이 장악해온 도쿄 도정을 개혁하겠다”며 앞장서 도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당시 일본 정가에서는 “고이케 극장이 흥행에 성공했다”라는 말이 돌았다. “개혁 이미지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가장 극우성향의 정치인이 고이케”이며 “거대 조직에 핍박받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연출해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걸 빗댄 말이다.
한때 갈등을 빚었던 자민당과 고이케는 최근 들어 협력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비자금 스캔들로 홍역을 앓고 있는 자민당은 올해 선거에서 연달아 패하자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고이케 지사를 지원해 보수진영의 승리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번 선거가 여야 대결로 갈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자민당과 고이케 진영 모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산케이신문은 “수면 아래에서 고이케를 지지하는 ‘스텔스 작전’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자민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드러나지 않게 고이케의 당선을 돕자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도 “만일 자민당 지지를 받은 고이케 지사가 렌호 의원에게 진다면 기시다 정권은 끝”이라고 지적했다.
고이케 지사는 아직 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불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은 “고이케 지사가 3선에 도전할 공산이 크다”라고 본다. 일본 정치 전문가 시라토리 히로시 호세이대 교수는 “극장형 정치가라 불릴 만큼 고이케는 정무적 감각이 뛰어나고, 여론전을 펼치는 데 능하다”면서 “출마를 표명하지 않은 것은 반대로 출마에 대한 기대를 높이려는 전략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조만간 고이케 지사가 입장 표명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고이케는 2020년 도지사 선거 때도 선거 고시 6일 전에 출마를 발표했다. 참고로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 고시일은 6월 20일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신의 거취에 대한 주목을 모으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일본 JX통신사가 지난 5월 18~1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고이케 지사의 지지율은 33%로 나타났다. 2020년 도지사 선거 직전의 지지율(69.7%)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급락한 수치다. 정치 평론가 다사키 시로는 “2020년 선거에서는 약 366만 표로 고이케가 압승했지만, 이번에는 격전이 예상된다”며 “200만 표대의 싸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라고 전했다.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에는 20명 이상이 입후보 의향을 밝혀 역대 최다 후보가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고이케 지사와 렌호 의원 두 명의 각축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고이케 지사가 자민당의 지원을 받을 것인지, 제1야당의 자리를 노리는 일본유신회가 누구를 옹립할지 등 변수가 많아 판세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