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전 이사장 결재 없이 출장 간 직원 정직 3개월…언론진흥재단 재심에서 1개월로 감경, 대상자들 “수사의뢰 검토”
#'전 정부 이사장' vs '현 정부 이사진'
감사원은 6월 10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규정 위반과 신문 공동수송노선 사업 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감사원은 2023년 8월 16일 일부 상임이사들이 표완수 당시 이사장 해임안을 상정한 사건의 위법성 여부도 동시에 밝혔는데, 결론적으로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표 전 이사장 해임 추진' 사태는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 임명한 상임이사 3명이 이사회에서 표 전 이사장 해임을 건의한 사건이다. 표면상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사업' 등의 부실을 들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표 전 이사장을 압박하려는 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당시 표 전 이사장 해임안은 1표 차이로 부결됐다. 그러나 2023년 11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가 국정감사에서 표 전 이사장 해임 건의가 적절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감사원 감사가 착수됐고, 약 7개월 만에 내놓은 이번 결과에서 감사원은 "정관을 준수한 이사회로서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언론재단은 김효재 이사장이 맡고 있다. 2023년 10월 20일 임기를 시작한 김 이사장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2008∼2011년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윤석열 정부에선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및 위원장 직무대행 등을 역임했다.
#언론재단의 '의심'
언론재단은 이제야 전임 이사장 관련 논란을 마무리 짓고, 새 이사장도 진즉 맞이한 상태지만 몇몇 직원들은 여전히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다. 표 전 이사장과 3명의 상임이사들이 갈등을 빚던 시점, 의도와 달리 한쪽 편에 섰다는 오해를 부른 이들이 크고 작은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언론재단 광고본부의 박사 연구원 A 씨의 경우 6월 5일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다. 애초 정직 3개월이었으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A 씨의 구제신청을 들여다본 결과 '징계 양정이 부당하다'고 결정해 그나마 감경된 처분이다. A 씨는 이 역시 과도하다며 후속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2023년 10월 17일이었다. A 씨를 포함한 직원 4명은 이날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출장을 떠났다. 현지 내각관방부와 도쿄도청 등을 방문해 일본의 정부광고 제도를 배우고, 도쿄 애드테크 등 행사에 참여해 각종 시스템의 장단점을 파악해 국내 정부광고와 비교 및 연구하려는 목적이었다.
문제는 출장 첫날이 언론재단의 국정감사 날과 겹치며 불거졌다. 국회 문체위는 표 전 이사장 해임 건의를 이끈 상임이사 가운데 B 이사를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B 이사는 일본 출장을 들어 국회에 사유서를 제출하고 불출석했다. 이후 국회에서 '국감 회피' 논란이 거세지며 B 이사는 사표를 내고 언론재단을 떠났다.
이 출장은 매우 커다란 파장을 낳았다. 당시 B 이사와 일본에 간 언론재단 직원 3명은 해당 출장 승인신청이 표 전 이사장으로부터 반려됐단 사실을 현지에서 알게 됐다. 확인해보니 표 전 이사장의 반려 조치는 출국 불과 하루 전 출장 인원들이 전부 퇴근한 오후 6시 26분에 이뤄졌다.
언론재단은 A 씨에 정직 3개월을 처분했다. 근거는 "B 이사의 국감 회피를 돕기 위해 '고의로' 급조한 출장이었다"며 "A 씨가 무단 출장을 기획·주도했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표 전 이사장은 여러 번 출장 품의·명령서를 반려했다"면서도 "A 씨 외 2명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간 사정을 참작해 징계는 면한다"고 결정했다.
A 씨는 크게 반발했다. 그는 "나 역시 B 이사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며 "표 전 이사장이 출장 전 '임원은 빼고, 직원만 가라'는 구두지시가 있었기에 반려 가능성은 고려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또 "국감 일정이 확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추진된 출장이었다"며 "언론재단에서 이미 항공료와 숙박비도 지출한 상태였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언론진흥재단은 “간부가 아닌 두 일반 직원에 대한 출장만 허가한 것”이라고 밝혀왔다. 또한 “A 씨가 기관예산부서의 지출 승인 없이 소속팀 앞으로 지급된 재단 법인카드를 쓴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지노위는 이사장 결재가 없는 출장이었던 만큼 징계 사유 자체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A 씨도 직속상관인 B 이사의 지시를 따르는 입장으로서 그가 출장을 기획·주도했다는 의심은 무리고, 오히려 출장을 가지 않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바라봤다. 출장도 사전에 계획이 돼 있었다고 판단했다.
지노위는 "재단이 일반 직원의 출국은 허락한 점에 비춰 출장의 필요성도 인정된다"며 "A 씨가 출장을 강행하게 된 데에는 정상을 참작할 사정이 있어 이 사건 징계는 언론재단이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직 3개월은 파면·해임과 더불어 무거운 징계라 양정이 과하다"고 결론지었다.
#상관 말 들었을 뿐인데…징계 '강행'
언론재단과 A 씨가 각각 일정부분씩 잘못을 지적받은 셈이지만, 다툼 과정에서 양측은 회복하기 힘든 신뢰의 손상을 입었다. 게다가 당시 출장을 떠난 인원 외에 관련 문서에 서명한 직원들도 줄줄이 징계 받았다. A 씨 등의 출장명령서 등을 결재한 3명으로, 처분은 '감봉' 혹은 '견책'인데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 징계 대상자들은 "B 이사 등 직속상관의 말을 잘 들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며 "임원들의 정치 갈등에서 애꿎은 실무자들이 피해를 봤다"고 토로한다. 무엇보다 당시 언론재단은 이사장 대신 본부장들이 회의를 주관하는 방식으로 바뀐 터라 본부장들의 힘이 강한 때였다. B 이사도 본부장이었다. 이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도 드러난 사항이다.
징계 대상자 일부는 원래 지노위에 구제를 신청했지만 최근 포기했다. 지노위의 '양정부당' 결정에도 A 씨의 정직이 유지된 상황을 지켜보며 무의미한 분쟁이 될 가능성이 커 보여서다. 본부장인 B 이사 출장 논란 직후 언론재단 노동조합이 "상급자 지시를 따른 실무자들은 보호해야 한다"고까지 요구했지만 이미 공염불이 된 상황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언론진흥재단은 “노조는 출장 명령도 없이 부하직원들의 출장을 강요한 A 씨를 보호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입장”이라고 알려왔다.
오히려 언론재단은 A 씨 등 출장 직원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개인 그룹웨어(이메일·사내쪽지 등) 계정을 당사자 허락도 없이 열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정황은 언론재단이 지노위에 제출한 자료에서 드러났다. 일본 출장을 떠난 직원 일부가 A 씨 등의 주도로 어쩔 수 없이 동행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과정에서다.
당시 일본에 함께 간 한 직원은 사실확인서에서 "복귀 중 회사 그룹웨어에 접속하면 발송되는 인증문자가 날아와 사무실에 있는 동료에 경위를 물어보니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제 계정에 접속을 시도한 상황이라 무시할 수 없어 회사에 다시 확인하자 '나중에 말해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직원은 "불안한 마음에 회사에 간단한 설명이라도 다시 부탁을 청했더니, 한 팀장님께서 '상부 지시'로 반려품의서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또 "(팀장이) '이 건은 비밀로 해달라'하기에 알겠다고 밝혔으나 일이 커질까 두려웠다"고 상황을 떠올렸다.
이에 언론재단은 "일본 출장에 동행한 한 직원이 A 씨 지시를 받고 작성한 기안문서를 (저희가) 확인하려 했으나, 해당 직원이 즉각 대응을 해주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그룹웨어에 저장된 문서를 확인했다"며 "이 문서는 재단 소유의 업무 관련 서류로서, 직원 개인 소유도 아니고 개인정보도 아니다"라고 변론했다.
이 밖에도 A 씨는 "일찍이 회사에 예산협조전을 올려 결재도 받았으나 돌연 삭제됐다"며 "회사가 급조된 출장으로 몰아가 '표적 징계' 하려던 것"이라고 의심한다. 반면 언론재단은 "출장 인원이 기존 8명에서 4명으로 줄었기에 이를 반영하려던 정상적인 절차"라고 반론했다. 지노위는 이 부분들은 별도로 판단하지는 않았다.
언론재단 임원 사이 갈등이 촉발한 이번 노사 대립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회사의 규정에 따라 숙의를 거쳐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며 "이 밖에는 징계 대상자들의 개인정보에 관한 사항이 많으므로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회사가 직원 그룹웨어에 무단 접속했다는 등의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표 전 이사장이 반려 사유를 뭐라고 적었는지 확인해보고자, 전산실 등을 통해 기안문서를 확인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서, 당사자한테 충분히 설명했고 지노위에서도 쟁점이 되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A 씨는 "임원끼리 정치 갈등을 벌인 상황에서 묵묵히 업무에 임한 직원들을 한 쪽 편에 선 인물로 매도하고 보복 목적으로 징계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원인과 정황, 절차상 하자를 다시 꼼꼼히 따져 중앙노동위원회나 정식 수사의뢰 등을 거쳐 사실관계를 명확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정보도] <표완수 전 이사장 해임 건의 사태 여파…언론재단 직원들 ‘줄징계’ 속앓이> 기사 관련
본 신문은 지난 6월 14일자 <사회> 섹션에 <표완수 전 이사장 해임 건의 사태 여파…언론재단 직원들 ‘줄징계’ 속앓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언론진흥재단이 부당하게 직원을 징계하고 부적절한 방법으로 개인 그룹웨어 계정을 열람한 것처럼 보도하였습니다.
사실 확인 결과, 한쪽 편에 섰다는 오해를 부른 이들이 징계를 받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기관장의 승인을 받지 않은 출장 강행과 부하직원에 대한 부당한 업무 지시 등이 이유였고, 지노위는 징계사유를 인정하고 징계절차에도 하자가 없다고 판정한 것으로 확인되어 이를 정정합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