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분할은 증여세·소득세 과세 해당 안 돼…사망 앞둔 부자들 ‘재산 정리’ 위해 이혼하기도
#노소영 관장, 현금으로 받을 경우 세금 0원
노소영 관장은 2심에서 (주)SK의 주식 50%를 요구했던 것에서 ‘현금 2조 원’으로 전략을 바꿨다. 그리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당시 선경)에 흘러들어간 증거들을 토대로 ‘SK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이혼이었다.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원고)이 노 관장(피고)에게 재산 총액 4조 115억여 원의 35%인 1조 3808억여 원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노소영 관장이 1조 3800억 원을 현금으로 받게 될지라도 내야 하는 세금은 0원이다. 이혼을 원인으로 하는 재산분할은 증여세나 양도소득세의 과세 대상이 아니다. 재판에서 ‘재산 형성 과정의 기여한 부분’을 따지기 때문에 재판부의 판단은 ‘원래의 몫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법원 역시 “재산분할제도는 혼인 중에 취득한 실질적인 공동재산을 정산·분배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조 원이 넘는 거액이 오가지만, 증여세가 발생하지 않는 다.
최근 증여세나 상속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이혼’을 하는 위장 이혼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증여나 상속세 최고 과세율은 무려 50%에 달한다. 하지만 부부가 합의해 위장 이혼에 성공하면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재산을 정리할 수 있다.
특히 종합부동산세 등을 피하기 위해 ‘위장 이혼’을 하는 경우는 2020년 부동산 가격 급등 당시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2채 이상 가진 부부가 이혼을 진행하며 재산분할을 합의하는 방식으로 한 채씩 나눠 가져 ‘1가구 1주택’을 선택한 것. 세금을 피하기 위함이다.
고령의 경우에도 이혼으로 절세를 시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자산이 50억 원인 A 씨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A 씨가 고령으로 사망하면 일괄공제(5억)와 배우자공제(30억) 등을 제외한 나머지 몫(15억 원)에 대해 상속세가 발생한다. 유족들은 7억 5000만 원 정도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부동산이 있다면 시가에 상응하는 취득세도 내야 한다.
하지만 생전에 이혼 소송을 통해 배우자에게 40억 원 이상의 재산을 넘긴다면, A 씨는 사망하더라도 자녀들이 상속세를 내지 않을 수 있다. 상속세는 고인이 남긴 재산이 10억 원을 넘는 경우에만 부과되기 때문이다. A 씨의 배우자에게 이미 재산 대부분이 분할로 넘어가 있기 때문에 세금을 0원만 낼 수도 있다.
증여세와 상속세의 빈틈을 노린 것이다. 증여세는 수증자별로 증여받은 재산 규모에 따라 10~50%의 세율로 과세된다. 부부 간의 증여는 10년 동안 6억 원까지 세금을 부여하지 않고, 자녀의 경우 성인이면 10년간 5000만 원까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서로 부부 관계가 아닌 직계존속(할아버지, 할머니 등)이나 기타 친족은 동일인으로 보지 않아 누적 합산하지 않는다. 이혼을 통해 거액의 자산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절세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물려줄 ‘재산 정리’를 하는 경우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이 자산의 대부분인 우리나라 특성상 위장 이혼으로 ‘거주의 안정성’도 도모할 수 있다. 사망을 앞두고 부부합의로 위장 이혼을 하면서 재산을 배우자에게 몰아주면, 막대한 상속세와 증여세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한 채 보유한 경우, 합의 이혼을 통해 아파트와 함께 취득세를 낼 수 있는 현금을 사전에 증여하거나 재산분할로 넘겨주면 피상속인의 사망 이후에도 배우자의 노후 거주를 확보할 수 있다.
소형 로펌의 한 대표 변호사는 “재산이 100억 원이 넘는 분들은 세금을 최소한으로 내면서, 거꾸로 최대한 가족들에게 많이 남겨 주기 위해 위장 이혼을 진행한다”며 “이혼 과정에서 재산 분할에 대해 합의했다고 하면서 배우자에게 많이 남겨주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을 절세의 방법으로 보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법원에 ‘이혼하기로 했다’며 이혼합의서와 재산분할합의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쉽게 처리되기 때문에 이를 문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장 이혼 잡는다고 하지만 쉽지 않아
물론, 조세당국도 이런 재산분할 목적의 위장 이혼은 가장행위로 보고 증여세를 과세하곤 한다. 다만 대법원이 2017년 위장 이혼이라도 이혼으로서의 법적 효력은 인정한 바 있어 다툼의 여지가 생겼다. 법적 효력을 인정했기에, 이혼 과정에서 발생한 재산분할도 법적 효력이 있다고 볼 여지가 생긴 것이다. 물론 대법원은 이 같은 지점을 염두에 두고 “조세회피 목적의 재산분할 규모가 과대한 경우에는 증여세 과세가 가능하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 상속세 부분에서 배우자공제 부분에 대해 손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남편이나 부인의 상속재산은 ‘혼인 중에 부부 간의 협력으로 이룬 공유재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민법 제 829조의 ‘부부 별산제’를 적용해 배우자에게도 상속세를 부과한다.
하지만 프랑스와 미국, 영국은 상속세는 존재하지만 배우자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배우자를 상속재산의 공동 소유자로 보기 때문이다. 호주, 캐나다, 스웨덴의 경우 상속세가 아예 없다. 세대 간의 부가 이전되는 것을 일부 사회로 환원시키기 위해 상속세를 유지하더라도, 배우자 상속의 경우 현재 30억 원인 공제 금액을 대폭 늘린다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자녀에게 거액의 자산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상속세를 유지해야 한다면 거꾸로 현행 30억 원인 배우자 상속 공제 금액을 올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부부 간 함께 협력으로 이룬 공유재산으로 인정해주는 몫이 늘어야 위장 이혼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