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돈 다 쏟아 루나 살렸어야” 투자자들 상실감…벌금 다 낼지 미지수, 내더라도 형사소송 기다려
6월 13일 SEC는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가 배심원 만장일치로 약 45억 달러 이상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SEC는 테라-루나 폭락으로 투자자가 손실을 본 책임을 묻기 위해 2022년 11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SEC 발표에 따르면 2024년 4월 9일 배심원단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은 테라 블록체인 문제와 테라-루나 핵심인 UST 안정성에 대한 권 대표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관련기사 72시간 만에 50조 자산 99.9% 폭락…‘루나 사태’ 전말).
또한 SEC는 2022년 5월 1달러 가치를 가진다던 UST가 미국 달러와 페깅이 깨진 뒤 UST뿐만 아니라 테라 다른 토큰 가격이 거의 0에 가깝게 폭락했고 이에 따라 거의 하룻밤 사이에 400억 달러 시장 가치가 소멸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SEC는 이 폭락으로 인해 권 대표 등 주요 인사들의 거짓말을 믿고 테라폼 생태계에 평생 모은 돈을 투자한 수많은 개인 투자자를 포함한 수많은 투자자에게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고 설명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상품의 상표나 과대광고가 아니라 상품의 경제적 실체가 증권법에 따른 증권 여부를 결정한다”며 “권도형과 테라폼랩스 부정행위는 투자자들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입혔다. 이 사기는 회사가 법을 준수하지 않을 때 투자자가 피해를 본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합의로 대규모 사기 피해자들은 어느 정도 정의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겐슬러 위원장은 “권도형과 테라는 가상자산 성배를 달성했다고 거짓 주장함으로써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증권 사기 중 하나를 조직했다. 배심원들이 발견한 것처럼 그것은 거짓말이었고,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들이 성공한 것은 투자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수백억 달러의 시장 가치를 쓸어버리고, 피해자를 만드는 것뿐이었다”고 비판했다.
권도형 대표와 SEC 합의로 테라폼랩스는 배상금으로 35억 8687만 달러(약 5조 원), 판결 전 이자로 4억 6695만 달러(약 6500억 원), 민사 벌금으로 4억 2000만 달러(약 5838억 원)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권도형 대표 측은 100만 달러를 제시했고 SEC는 53억 달러를 요구했는데, 합의 금액은 SEC에 가깝게 결정됐다. 구체적 합의 내용으로 테라폼랩스는 파산 사건에서 법원 승인을 조건으로 가상자산 증권 매각을 중단하고, 운영을 중단하고, 이사 2명을 교체하고, 청산 계획을 통해 나머지 자산을 투자 피해자와 채권자에게 분배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인해 루나에 투자했던 투자자뿐만 아니라 크립토(가상자산)에 투자했던 투자자 대부분이 큰 충격에 빠졌다. 지금까지 테라-루나가 가진 자산은 UST가 달러 페깅이 깨졌을 때 방어용으로 모두 소진됐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 가상자산 투자자 A 씨는 “6조 원 넘는 돈을 숨겨뒀다면, 페깅이 깨졌을 때 방어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망이 너무 크다”면서 “최소한 권도형이 루나 방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고 알고 있어 당시 상황이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밝혀진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B 씨도 “루나를 살릴 수 없었다고 해도 가진 돈 전부를 다 썼어야 한다. 6조 원 합의 기사를 보고 가상자산 투자자 상실감이 얼마나 크겠나”라며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가진 돈을 다 부었다면 루나가 살아 돌아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크게 다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도대체 권도형 대표는 6조 원 이상 되는 돈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미국에 어떻게 제공할지를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 미국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합의를 했기 때문에 지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낼 수 없다면 굳이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EC는 법원에 보낸 요청서에 “권도형이 스위스 은행 계좌 및 보유한 피스네트워크(PYTH) 코인 등을 통해 합의금을 납부할 예정이다. 만약 합의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 SEC는 압력을 행사해서 최대한을 받아내겠다”라고 밝혔다. 2023년 2월 SEC는 권도형 대표가 테라폼랩스를 운영하며 사들인 비트코인 약 1만 개(약 9150억 원)를 빼돌렸다고 밝혔는데, 이걸 활용할 수도 있다.
반면 6조 원 되는 돈을 전부 지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테라폼랩스는 자산이 5억 달러 미만이라고 알려졌다’고 했고, 권도형 대표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합쳐도 2조 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추가로 권 대표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가 관건이 되는 셈이다.
권도형 대표가 이 돈을 낸다고 해도 현재 미국에서 제기하고 있는 형사 소송이 무마되진 않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변호사이기도 한 하종선 법무법인 나루 변호사는 “크리미널 페널티(Criminal penalty)와 시빌 페널티(Civil penalty)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 합의는 시빌 페널티다. 시빌 페널티를 완벽히 대체할 한국 개념이 없긴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과태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합의로 벌금을 내면 시빌 페널티는 사라졌지만, 형사상 제재에 해당하는 크리미널 페널티는 아직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권도형 대표는 미국 뉴욕 연방 검찰에 상품 사기, 금융 사기, 시세 조작, 증권 사기 등 8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하 변호사는 “합의하고 벌금을 내면 형량이 줄어든다고 확실하게 말하긴 어렵다. 다만 참작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권도형 대표가 6조 원 상당 벌금을 실제로 납부하는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권도형 대표가 실제로 벌금을 낸다면 이 돈은 피해자에게 돌려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벌금에다 파산 이후 남은 재산을 합쳐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파산 법원이 테라폼랩스 파산 절차를 거쳐 남은 재산을 확정하고 여기에 권도형 대표 등이 낸 벌금을 더한 뒤 이 기금을 관리할 관리인을 선임한다. 이렇게 선임된 관리인은 채권자, 피해자 등을 결정해 돈을 분배한다.
한국에서는 서울남부지검이 부패 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법)에 따라 권 대표 재산에 추징 보전을 청구한 바 있다. 법원은 이 가운데 약 2333억 원을 인용했다. 2023년 뉴시스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권도형 대표 재산에 대해 ‘최대한 찾을 수 있는 건 찾아서 최대한 추징보전 조치를 했다’며 ‘해외 계좌 중 동결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찾아서 해놨다’고 전한 바 있다.
한편 2024년 6월 18일 권도형 대표는 현재 붙잡혀 있는 몬테네그로 현직 총리인 밀로코 스파이치 총리와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는 SEC가 법원에 제출한 엑셀 자료에 따르면 ‘테라폼랩스가 설립된 2018년 4월부터 2021년 여름까지 총 81명의 초기 투자자가 기재돼 있고, 스파이치 총리의 이름은 이 명단에 16번째로 등장한다’고 보도했다.
스파이치 총리는 앞서 권도형 대표와 연루 의혹이 불거졌지만, 자신이 아닌 당시 근무했던 회사가 테라폼랩스에 7만 5000달러(약 1억 원)를 투자해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해당 자료에 따르면 스파이치 총리는 2018년 4월 17일 개인 자격으로 75만 개의 루나 코인을 1개당 10센트에 구매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번 보도에 따라 권도형 대표가 일반적인 해외 도주 사례와 달리 몬테네그로에 간 이유가 스파이치 총리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스파치이 총리와 권 대표 사이가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스파이치 총리는 권도형 대표가 인터폴 적색 수배를 받던 시기인 2022년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따로 만난 사실도 확인돼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그는 ‘권도형이 수배 받았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반박했다. 또한 2023년 3월 권도형이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됐을 땐 자신이 당국에 정보를 흘린 덕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