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용량으로 구매해 일주일 치씩 소분, 식비 절감+다이어트 두 토끼 잡아…도시락 용기까지 덩달아 불티
#‘밀프렙’이 뭐길래
‘밀프렙(Meal Prep)’은 식사(Meal)와 준비(Preparation)의 합성어로 일주일치 식사를 한 번에 미리 준비해 놓고 끼니마다 꺼내 먹는 문화를 말한다. 밀프렙족은 보통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에서 식재료를 대량으로 사서 나눠 보관한다. 밀프렙 문화의 확산과 함께 최근에는 더운 여름에도 신선함을 유지해 줄 도시락에 대한 수요도 증가 중이다.
30대 직장인 A 씨는 “식비 절감을 위한 정보를 찾다가 밀프렙족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서 “원래는 1인 가구이다 보니 장을 봐도 식재료를 낱개로 구매하기 때문에 집밥을 해먹어도 돈을 절약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밀프렙을 시작하고 창고형 매장에서 대용량으로 식재료를 구매하면서 식비 절약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계산해보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외식을 포함해 한 달 식비를 30만 원 아래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2년 차 밀프렙족이라고 밝힌 20대 여성 B 씨는 “다이어트 목적보다 좋은 것을 먹고 건강해지기 위해 밀프렙을 시작했다”면서 “처음엔 저녁만 밀프렙을 했는데 일요일 저녁마다 평일 5번 분량의 도시락을 쌌다. 질리지 않게 도시락마다 한 가지라도 다른 재료를 쓰려고 했는데, 인스턴트 음식이나 배달 음식 등에서 해방돼 좋았다. 현재는 평일 점심에도 밀프렙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며 플라스틱 사용이 줄어 환경에도 기여하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식 대신 집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가운데 밀프렙이 유통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눈길을 끌고 있다. 단위당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대용량 상품을 판매하는 창고형 매장에선 밀프렙을 위한 샐러드·파스타용 식재료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홈쇼핑에선 도시락통·밀폐용기가 때 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식비를 절감하면서 건강도 챙기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6월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마트의 창고형 매장인 트레이더스에선 밀프렙 식단 중 하나로 주목받는 샐러드 관련 식재료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2024년 5월 말까지 트레이더스에선 당근 판매가 지난 연말 대비 108% 증가했다. 계란 74%, 토마토 58%, 오이 37%, 샐러드드레싱 36%, 파프리카 24%, 새송이버섯 20%씩 판매가 늘었다. 과일·채소의 평균 매출 증가율이 19%를 웃돌았다.
롯데마트에서도 꼭지가 없어 도시락용으로 인기가 높은 스위텔토마토 인기에 힘입어 방울토마토 매출이 올해(5월 말까지) 들어 20%나 뛰었다. 특별한 손질 없이 도시락에 담기 편한 간편닭가슴살 매출도 같은 기간 90% 뛰었다.
홈쇼핑에선 음식·식재료 보관에 편리한 밀폐용기와 도시락통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홈쇼핑 업체인 CJ온스타일이 5월 한 달 동안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밀폐용기 주문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0% 증가했다. 최근 3개월 동안 CJ온스타일에서만 40억 원 가까이 팔린 밀폐용기도 있다. 일반 용기 대비 평균 5배에 달하는 보관 기간을 내세운 밀폐용기 브랜드 바퀜의 상품이다. 쉽게 무르기 쉬운 과일과 야채의 보관력을 높인 과일 전용 도시락인 ‘메팔의 후르츠팟’도 인기다. 5월 TV 라이브방송에서 5분 만에 2만 1000개가 팔렸다.
#고물가 속 '지갑 지키기'?
도시락을 준비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는 건 그만큼 점심값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다. 급증하고 있는 외식물가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식물가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상황은 2021년 6월부터 3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6월 17일 신한은행이 발표한 ‘2024 신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점심 한 끼에 평균 1만 원을 지출했고, 10명 중 7명은 점심값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퍼지고 있는 ‘인증샷’ 문화도 밀프렙 인기에 기름을 부었다. 서로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기준 단어 밀프렙의 검색량은 2배로 늘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직장인도시락’ 해시태그로 올라온 게시물 수도 이미 50만 건을 넘어섰고, ‘밀프렙’ 해시태그로 올라온 게시물도 8만 건이 넘는다.
유튜브에서는 밀프렙 노하우를 담은 영상 콘텐츠가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 신선함을 유지하는 밀폐용기를 추천하거나, 같은 샐러드라 하더라도 월·화에는 상하기 쉬운 해물류를 먼저 넣고 수·목·금에는 닭가슴살을 넣는 등 밀프렙 관련 노하우를 공유하는 모습이었다.
밀프렙족이 늘어나는 요인은 규칙적인 식단 등 일상 속 건강 관리를 추구하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 문화와도 맞물려 있다. 밀프렙은 신선한 재료로 정해진 양의 균등한 식단을 짜기 때문에 건강에도 유리하다. 밀프렙 단골 메뉴는 볶음밥과 닭가슴살 채소 샐러드, 삶은 계란 등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밀프렙 메뉴 중 하나로 당근을 잘게 썰어 소스에 절여 먹는 프랑스식 피클인 당근 라페가 유행”이라고 귀띔했다.
직장인 커뮤니티에선 밀프렙 메뉴를 공유해 달라는 글도 많이 올라온다. 한 누리꾼은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면서 “귀찮은 것도 있지만 밖에서 음식 먹을 때보다 속도 편하고 반찬도 다양하게 먹는 것 같아 좋다. 건강 관리를 위한 다양한 밀프렙 메뉴를 공유해달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식 물가 상승과 1·2인 가구의 증가로 밀프렙 문화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면서 “밀프렙의 소비 방식은 시간과 비용을 아끼면서도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식재료 구입비용이 높은 편”이라면서 “밀프렙족의 목적이 외식 물가를 극복하기 위함이라면 유통업계도 이를 겨냥한 전략을 앞다퉈 선보일 것이다. 앞으로는 밀프렙족의 증가와 함께 많은 일주일 치 대용량 식재료를 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창고형 매장을 찾는 발길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