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형은 하늘의 별 따기” 처벌 수위 낮아…2년간 재판 69건, 그중 18건 성폭력 포함
#증가하는 가혹행위, 초라한 처벌
“나 진짜 또라이다. 한 번 때리면 끝까지 때린다. 실명할 때까지 한 군데만 집중적으로 때린다. 어제 목 졸린 이야기 들었냐. 목 졸라서 기절시켰었다.” (가혹행위 가해자 A 씨)
“너는 약하고 엄살을 피우고 맷집이 약하니까 내가 키워주겠다. 격투기를 가르쳐 주겠다. 맞다 보면 강해질 거다.” (가혹행위 가해자 B 씨)
“너희 이거 공론화시키면 징계다. 징계 받을래, 노예 할래?” (가혹행위 가해자 C 씨)
A 씨는 후임병들에게 억지로 가위바위보를 시켜 서로 폭행하도록 시킨 뒤 머뭇거리는 피해자의 목을 졸라 기절시켰다. B 씨는 침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피해자를 아무 이유 없이 구타했다. C 씨는 피해자가 대답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머리를 야구배트로 7~8회 폭행했다. 법원은 A 씨와 C 씨에게는 집행유예를, B 씨에게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일요신문이 최근 2년 동안 군사법원에서 내린 판결을 분석한 결과 ‘가혹행위’(군인등유사강간과 강제추행 포함)가 적용된 재판은 69건이었다. 재판까지 가지 못했거나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방부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가혹행위 현황은 2020년 67명에서 2023년 123명으로 3년 만에 83.5% 증가했다.
문제는 수많은 가혹행위 사건 가운데 실형이 선고되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요신문이 분석한 69건의 판결문 가운데 열람이 제한된 건을 제외하고 징역형이 선고된 사건은 5건 미만이었다. 재판부가 폭행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유죄로 판결하더라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되거나 아예 선고가 유예됐다.
불에 달군 숟가락으로 후임 손등을 지지고 갈비뼈 골절의 상해를 입힌 뒤 돈까지 갈취했음에도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도 있었다. 가혹행위 가해자 D 씨는 2021년 피해자의 손등을 뜨거운 물에 달군 대형 국자와 불에 달군 숟가락으로 지지거나 국이 끓고 있는 대형 솥에 스스로 손등을 가져다 대게 하고, 칼끝으로 가슴을 찌르는 등 가혹행위를 거듭했다.
D 씨의 괴롭힘은 해를 넘어서도 이어졌다. 2022년 1월에는 피해자가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조리병 생활관 내 화장실에서 주먹으로 피해자의 가슴에 물을 뿌리고 구타하는 것을 반복하는 식으로 총 30여 대를 폭행했다. 이후 해당 사실을 외부에 알릴 경우 600만 원을 자신에게 기부하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쓰게 했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86일 동안의 치료를 요하는 다발성 갈비뼈 골절의 상해를 입었다.
괴롭힘은 피해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에도 계속됐다. D 씨는 자신과 떨어져 있는 피해자가 자유롭게 휴대폰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1시간마다 전원을 껐다 켜가며 잠깐씩만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원을 끈 시간과 다시 켠 시간을 매번 보고하게 했다.
D 씨의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복귀한 뒤 또다시 폭행을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났던 피해자는 입원 기간 한 달 동안 가해자의 지시에 따라 핸드폰 전원을 켜고 끄는 시간은 물론 하루 세 번 식사 메뉴와 시간까지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수폭행, 강요, 위력행사가혹행위, 협박, 폭행, 공갈, 폭행치상, 상해, 공갈미수, 특수상해 등 10가지다. D 씨는 과연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을까. 2022년 9월 15일 군사법원은 D 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5년 동안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으면 처벌을 면제해주겠다는 뜻이었다.
#"저지른 범죄보다 낮은 형량 받는 가해자 부지기수"
더 큰 문제는 군대 내 가혹행위에 상당 부분 성폭행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가혹행위 재판 69건 가운데 18건은 군인등강제추행 혹은 유사강간이 포함돼 있었다. 가혹행위로만 기소된 사건도 실제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성추행과 다름없는 폭력이 자행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23년 5월 피고인 E 씨는 소속 중대 생활반에서 피해자인 후임병에게 “관물대를 여자친구라고 생각하고 하라”며 물구나무를 세운 뒤 관물대 상단에 발을 걸치고 성관계하는 모습을 묘사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성추행이 아닌 가혹행위로만 기소되었다.
군검사 출신의 현직 변호사는 폐쇄적인 군 조직의 성격이 드러난 판결이라고 했다. 그는 “수치심 유발을 목적으로 한 동성 간 성폭력이 만연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러한 성추행은 동료 군인들 앞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데 목적이 있다. 가해자를 불러서 조사를 하다 보면 성적으로 괴롭힐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선 엄연한 성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신고를 한다고 해도 오랜 시간 단체 생활을 하며 심리적으로 지배당한 탓에 피해 사실을 축소하거나, 특히 성폭행 피해에 대해서는 진술 자체를 꺼리는 피해자도 있다. 이렇다 보니 저지른 범죄보다 낮은 형량을 받는 가해자가 부지기수”라며 “군 조직이 이에 대해 더 많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경기도 화성시의 육군 51사단 영외직할대에서 경계 근무를 하던 육군 일병이 숨진 채 발견됐다. 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해당 일병의 수첩에서는 군대 내 서열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군사 경찰은 이와 관련하여 선임병 등에 의한 암기 강요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해당 일병의 사망과 병영 부조리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군사 경찰의 조사 결과에 따라 법과 규정에 의거해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