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2000여 명 운집, 박민수 차관 파면 요구…집회 열린 여의도공원 인근 76곳 중 휴진 8곳 불과
#‘의사들이 살리겠습니다!’ 피켓 든 의사들
6월 18일 오후 12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일대는 집회 시작 전부터 북적거렸다. 여의도환승센터 맞은편 차도를 따라 경찰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고 경찰은 집회를 위해 6개 차로를 막는 작업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는 개원의, 전공의, 의대생과 학부모 등 1만 2000여 명이 참석했다.
현장에는 오후 1시 20분쯤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개원의 신 아무개 씨(44)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 휴진을 했다. 환자들에게도 미리 말씀드렸고 휴진 신고도 했다”고 했다. 전공의 김 아무개 씨(34)는 “전공의들을 위해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하는데 전부 허울뿐”이라며 “헌신과 희생의 자리를 낙수효과로 채운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32℃를 넘는 뙤약볕에 일부 참가자들은 차도가 아닌 공원 그늘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이 가운데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있었다. 올해 입학한 의대생 학부모 문 아무개 씨(53)는 “아들이 학교를 제대로 가지도 못한 지 3개월이 넘었다. 아이도 부모도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라며 “정부가 늘어난 인원을 감당할 교육 환경을 제대로 마련하지도 않고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다. 이 정부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오후 2시 문화공연이 끝나고 2시 30분쯤부터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되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의사들이 차로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의료붕괴 저지’가 쓰여 있는 하얀색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 ‘의료농단 교육농단 필수의료 붕괴된다’ ‘비과학적 수요조사 즉각 폐기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곳곳에서 ‘강남구 의사회’ 등 지역 의사회의 깃발이 보이기도 했다.
이날 집회의 슬로건은 ‘의사들이 살리겠습니다’였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연단에 선 의사들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정부가 죽인 의료, 의사들이 살리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도록 호응을 유도했다. 이에 참여자들은 ‘의사들이 살리겠습니다!’라고 쓰인 손수건을 크게 펼쳤다.
대회사를 맡은 임현택 의협 회장은 “출석부터 부르겠다”며 의사협회회원 여러분, 의대생 여러분, 전공의 여러분 오셨습니까?”라고 외쳤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 측은 2020년 최대집 당시 의협 회장과 갈등을 겪은 뒤 줄곧 의협과는 별개로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따라서 전공의 단체의 참석 여부에도 귀추가 주목됐는데, 확인 결과 협의회 차원의 참여는 없었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의사들은 정부를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근처에 계신 일반 국민들께 한 말씀 드려보고자 한다”며 “의사들은 주 6일 근무하는 게 당연한 일이고 전공의들은 주 100시간을 일하고 4년을 근무해야만 전문의를 딸 수 있는 이런 미친 나라에서 국민은 주 4일 일하는 것을 논의하는 위원회가 만들어진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회장은 “정부 관료들은 우리 의사들을 공공재라고 하는데 대민의료의 90%는 사유재산이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의사는 공공재라는 망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석균 연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덫’이라고 표현했다. 안 위원장은 “전공의들이 이번에 사직하면 명령 철회의 대상도 안되고 복귀는 2026년 3월 이후에나 가능하게 된다. 군미필 남자 전공의의 경우 2025년 3월 입대해야 한다. 그런데 교수에게 이 덫을 이용해서 전공의와 학생들을 협박으로 설득하라고 하고 있다”고 했다.
#박민수 차관 파면 요구에 큰 함성 쏟아져
현장에서 가장 큰 호응이 터져 나온 순간은 성세용 목감연세내과 원장의 자유발언이었다. 대한의사협회 의사회원으로 참석한 성 원장은 포괄수가제도를 언급하며 “포괄수가제도 시행 이후 분만 산부인과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괄수가제는 같은 질병에는 같은 진료비를 내는 진료비 정찰제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부터 제왕절개 수술을 포괄수가제에 포함시켰는데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 제도가 분만 인프라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수술을 할 수 있는 타과와 달리 산부인과의 경우 진행되는 수술 대다수가 제왕절개이기 때문이다.
이어 성 원장은 “이 포괄수가제도를 추진한 당시 복지부 국장이 현재 복지부 차관으로 일하고 있다는데 당장 파면하고 책임을 지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상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을 겨냥한 발언에 집회 행렬에서는 다른 때보다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계는 꾸준히 박 차관의 처벌을 요구해 왔다. 박 차관이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주도하면서 초법적이고 자의적인 명령을 남발해 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집회 현장 1km 내 진료 중단 병원 8곳뿐
한편 이날 집회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개원의가 휴진에 참여하느냐였다. 2020년 의사 파업 당시 첫날 참여율인 32.6%가 그 기준이 됐다. 이에 의협은 13일과 14일 양일 대회원 문자메시지를 통해 ‘네이버 스마트 플레이스’에 휴진일 설정 방법을 공유했다. 의협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휴진일 등록 방법이 담긴 50초짜리 영상을 게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계 투쟁 역사상 최대 단체행동이 될 것”이라는 의협의 예고와 달리 실제 휴진율은 낮았다. 보건복지부가 유선으로 전국 의료기관 3만 6059곳에 휴진 여부를 확인한 결과, 18일 오후 4시 기준 휴진율은 14.9%(5379곳)이었다. 4년 전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반면 의협은 ARS, 네이버 휴진 설정 등을 고려해 자체 파악한 결과 휴진율이 50% 내외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집회가 열린 여의도 내 병원조차 휴진 참여율이 높지 않았다. 일요신문이 이날 여의도 공원을 기준 1km 이내에 있는 병원 76곳(한의원 제외)을 직접 방문 또는 문의한 결과 진료를 중단한 병원은 8곳에 그쳤다. 병원을 찾았다가 휴진으로 발길을 돌린 환자도 만날 수 없었다.
다만 사전 접수된 휴진신고율 4.02%보다는 더 많은 의사가 집회에 참석했는데, 이는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휴진한 개원의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방문해 확인한 휴진 병원들 대부분은 휴진 이유를 밝히지 않거나 집회가 아닌 개인 사정을 이유로 들었다. 아예 휴진 공지 없이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집회 참여자들이 외치는 “의사가 살리겠다”는 구호는 길 건너 병원 건물까지 넘어왔다. 여의도 환승센터 승강장에서 집회 현장을 바라보던 직장인 이슬아 씨는 “환자를 위한 것이라면서 집단휴진을 하는 건 모순처럼 보인다”면서도 “정부도 국민의 건강보다 의사와의 기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된 것 같다. 두 집단 모두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