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추천 시 ‘사건 판단’ 연관성, 대한변협 추천 시 ‘일부 정책 눈치보기’ 우려
1997년 첫 특검이 도입된 이후부터 대법원장이나 대한변협 회장의 추천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 전 위원장의 제안을 놓고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법원장이 추천한 특검의 경우 사건을 판단해야 할 법원이 추천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협이 추천한 특검을 받아들일 경우에 대한변협의 반(反)온라인 플랫폼, AI 정책들에 대해 정부나 국회가 눈치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제3자 특검 추천’ 과거 사례 살펴보니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해병대원 특검법 추천을 ‘대법원장과 같은 제3자에게 맡기자’고 제안했다. 대통령실에서 해병대원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추천권을 야권에게만 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부분을 보완하는 모델인 셈이다.
특검 추천의 공정성을 얻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나 과거 전례들을 고려할 때 ‘명분이 있는 제안’이라는 평이 정치권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1997년 특검이 처음 도입된 후 출범한 옷 로비 사건 특검 이후 대법원장 등 제3자가 추천하는 게 관례였다.
헌정 사상 최초 특검인 조폐공사 파업유도 및 옷로비 특검(1998년) 이후 특검 후보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대법원장이 추천했다. 이후 2005년 사할린 유전, 2007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BBK 의혹, 2011년 디도스 특검 등은 대법원장이 추천했고, 2001년 이용호 게이트, 2003년 대북송금,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은 대한변협에서 추천했다.
흥미로운 점은 대법원장 추천 특검은 여론으로부터 받은 성적표가 처참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BBK 의혹 특검인데, 특검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당시 정호영 특검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관련한 주가조작 및 BBK 관련 의혹, 상암동 DMC 특혜분양 의혹, 도곡동 땅 및 다스 주식 소유 여부 모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당선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봐주기식 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이후 문재인 정부 검찰 수사에서 다스 주식 소유 여부는 결과가 뒤집혔고, 법원에서도 유죄 판단이 나온 바 있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추천했던 디도스 특검 역시 수사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는다. 2010년 10·26 재보궐 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디도스(DDoSㆍ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을 받은 사건을 맡은 박태석 특검팀은 디도스 공격을 지시한 배후나 윗선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00여 명에 달하는 특검팀으로, 3개월 동안 수사를 했지만 최구식 전 새누리당 의원의 전 비서가 디도스 공격 혐의로 체포되자 이를 최 전 의원에게 미리 알려줘 공무상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김효재(60)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한 게 유일한 성과였다.
헌정 사상 첫 특검인 1998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및 옷로비 특검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대법원장이 함께 추천했지만 고(故)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것만 알아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조희대 대법원장…진보적인 판결 여러 차례 내려
디도스 특검 이후부터는 정당이 특검 추천권을 갖는 게 관례가 됐다. 2012년 내곡동 특검 때부터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특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만 줄 것”이라며 야당이 추천권을 갖는 특검법을 통과 시켰고, 이후부터는 야당(박근혜 국정농단 의혹·드루킹 선거개입 의혹)이나 국회 교섭단체(이예랑 중사) 등이 특검 추천권을 갖는 게 보편화 됐다.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는 대법원장이 추천권을 행사할 경우, 과거의 사례들처럼 또다시 수사 성적표가 실망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조희대 대법원장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인 만큼, 정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조희대 대법원장의 경우 판사 시절부터 진보적인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려왔고, 현재도 중립적이라는 평가가 야권에서도 나오는 점은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일 이유로 꼽힌다. 친명계 좌장격으로 꼽히는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3자 제안을 받을 만하다”고 얘기한 배경에는 대법원장의 중립적인 성향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법원에서는 우려가 적지 않다.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대법원장의 특검 추천권은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2~3명의 특검을 최종 추천하는 과정에서 대법원장 개인의 판단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특검 기소 시 대법원장이 최종적인 판결을 해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현직 판사는 “안 그래도 SNS나 유튜브를 통해 정치적인 재판을 놓고 여러 말들이 나오는데, 대법원장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특검을 추천한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루머’들이 나올지 상상도 안 간다”며 “사법의 영역을 정치로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대한변협에 추천권을 주는 게 맘이 편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비교적 보수적인 김영훈 대한변협 회장…한동훈 전 법무부장관과 갈등 벌여
때문에 대한변협에 추천권이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한변협의 경우, 변호사들의 자체적인 투표로 선출된 김영훈 대한변협 회장이 비교적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나 국민의힘과 법률 플랫폼 로톡을 놓고 갈등을 벌인 바 있다. 대한변협이 로톡을 사용한 변호사들을 징계했지만, 이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대한변협에 추천권이 갈 경우, 법률 플랫폼이나 AI 활용에 강한 반대 입장을 내비치고 있는 대한변협에 정부나 국회가 ‘일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이 해병대원 특검법 이후에도 김건희 여사 종합 특검법 등을 잇따라 추진할 계획인데 이때마다 제3자 특검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한변협이 과거에는 법조삼륜으로, 법조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단체의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변호사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익단체적인 성격이 생겼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봐야 한다”며 “대한변협이 추천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정부나, 민주당, 국민의힘 모두 대한변협과 정무적인 소통을 시도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