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처벌하면 형사고발 급증 우려…‘2025년 말 시한’ 국회 법 개정 전까지 경찰·검찰 적극 수사 않을 전망
언론에서는 가족 간 범죄도 처벌할 길이 열렸다고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곧바로 처벌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족 간 범죄를 모두 처벌할 경우 배우자나 부모·자녀 간 형사 고발이 급증할 수 있지만 국회에서 친족상도례 적용 친족 범위를 줄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2025년 말까지는 경찰이나 검찰 모두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헌재에 위헌 청구를 처음 제기한 법무법인 동인의 임복규 변호사는 “일정 금액 이상의 경우 처벌이 가능하도록 정하거나 친족 간 재산 범죄 수사는 친고죄(기소를 위해서 피해자의 고소를 필요로 하는 범죄)에 한정하는 방식으로 입법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지적 장애인 사건에서 시작된 위헌청구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던 지적장애 3급 장애인 A 씨는 2014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남긴 유산 2억 원을 물려받았다. 돈에 대한 개념도 부족했던 A 씨에게 작은 아버지 부부는 동거를 제안했고, 그 후 A 씨는 작은 아버지 부부의 ‘경제 범죄 피해자’가 됐다. 상속 재산과 그 동안 모은 급여 등을 수십 차례에 걸쳐 가로챈 것. 작은 아버지 부부는 A 씨 명의로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을 산 뒤 그 소유권을 자신의 자녀 명의로 해두기까지 했다. 그렇게 A 씨가 4년 동안 작은 아버지 부부에게 빼앗긴 돈은 2억 3000여만 원이나 된다.
검찰은 작은 아버지 부부를 적극적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동거하지 않았던 기간인 2018년 1~4월 빼앗긴 1400여만 원에 대해서만 횡령 혐의를 적용하는 게 전부였다. 친족상도례상 ‘동거친족’으로 인정돼 공소를 제기하지 못했다.
A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여러 변호사들은 ‘공익 사건(무보수로 사건을 진행해 주는 것)’으로 2020년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판사 출신으로 헌재 파견 근무 경험이 있었던 임복규 변호사는 “지적 장애인인 A 씨의 상황이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변호사들이 공익 사건으로 참여했다”며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4년여 만에 나온 ‘헌법 불합치’ 판단
이후 추가적으로 친족상도례 헌법소원 심판이 청구됐고, 헌재는 여러 사건을 묶어 6월 27일,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27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친족상도례의 입법 취지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심판 대상 조항은 형사 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며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서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현행 친족상도례 조항이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등 친족 관계만 있으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는 점이 문제라고 본 것이다.
이득 액이 50억 원이 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죄, 폭행이나 협박을 동반한 공갈이나 흉기를 든 특수절도 범죄 등까지 친족상도례를 적용하는 것은 가족 간 손해 회복과 용서가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위헌’ 아닌 헌법 불합치, 국회 법 개정 필요
헌재 결정으로 법원과 검찰 등 국가기관은 이제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없고, 2025년 12월 31일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조항은 효력을 상실한다. 헌재가 위헌이 아니라 헌법 불합치 판단을 한만큼 국회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
개정이 필요해진 형법 328조 1항은 직계혈족(부모·자식)이나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등 사이에서 벌어진 재산범죄 중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모든 재산범죄에서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이다. 사기, 횡령 등 피해가 큰 범죄도 부모나 자식이 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 친족상도례는 친족 간의 재산범죄에 대해선 가족 내부의 결정을 존중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
헌재는 친족상도례가 남아 있을 필요성도 언급했다. 헌재는 “경제적 이해를 같이하거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용인 가능한 수준의 재산범죄에 대한 형사소추 내지 처벌에 관한 특례의 필요성은 수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회에 ‘친족의 기준이나 처벌금액 기준’을 새롭게 정하라고 한 것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분석하지만 헌재는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기간을 줬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경찰이나 검찰 모두 법 개정 여부를 기다리며 무리하게 기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개그맨 박수홍 씨나 골프 선수 박세리 씨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고 해도 곧바로 수사기관이 ‘적용’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임복규 변호사는 “친족의 범위를 ‘동거하는 배우자’로 한정해서 경제공동체인 부부의 경우에는 친족상도례의 적용을 받게 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고, 가족 간 재산범죄를 친고죄로 한정해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기소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친고죄의 경우 고소가 이뤄졌지만 피해가 회복돼 고소를 취하하면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가족의 특수성을 고려해 친고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임 변호사는 또 “1억 원 등 일정 금액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고소가 가능하도록 해 가족 간 고소가 남발되지 않도록 친족상도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국회 입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