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 기념사진 토대로 제작’ 설명…일각 “7월 17일 헌법 공포 후 찍은 사진”
국회 본관 중앙홀에는 각각 무게 3톤에 달하는 제헌국회의원상과 제헌헌법전문으로 구성된 청동부조 제헌국회기념조형물이 있다. 제작비 4억 2200만 원을 투입했다. 제헌국회의원상은 국회의원과 국회사무총장을 포함해 199인을, 제헌헌법전문은 헌법 공포 당시의 원문을 토대로 한글은 훈민정음해례본체로, 한자는 광개토호태왕비체로 새겼다.
문제가 된 건 제헌국회의원상이다. 국회는 제헌국회의원상이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 후 촬영한 기념사진을 토대로 제작했다고 설명한다. 제헌국회의원상 설명란에는 ‘이 제헌국회의원상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 후 촬영한 기념사진을 토대로 제헌헌법 제정 당시의 국회의원 198인과 국회사무총장 등 모두 199인을 인물부조로 조각한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제헌국회의원상의 토대라고 한 기념사진은 1948년 5월 31일이 아니라 1948년 7월 17일에 찍은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제헌국회의원상의 토대가 된 사진에 대해 ‘제헌국회 의원들이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공포하고 경축하는 기념행사에서 촬영한 사진’이라며 ‘앞줄 중앙에 국회의장 이승만, 부의장 신익회·김동원 등이 앉아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도 제헌국회의원상의 토대가 된 사진을 ‘대한민국 헌법 공포 기념사진’이라고 소개했다. 선관위 사이버선거역사관 홈페이지에는 ‘대한민국 헌법 공포 기념사진이며 제헌국회 의원들이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공포하고 경축하는 기념행사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 크기는 가로 46.5, 세로 29.5 cm다’라고 적혀 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시한 1948년 7월 18일자 조선일보 기사에는 ‘헌법 공포식 직후 국회의원 전원이 기념촬영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948년 7월 16일 제헌의회 제31차 회의 속기록(국회 회의록)에는 당시 산업위원회 소속 홍희종 의원의 ‘여러 동지들은 예식을 갖추기 위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예복을 입고 참석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발언이 명시돼 있다.
반면 국회에서 설명한 1948년 5월 31일 ‘국회 개원식 기념사진’과 관련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1948년 6월 1일자 경향신문 기사에는 ‘국회 개원식이 거행되는 31일 서울시내는 이른 아침부터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게 하고 각 관공서원·학생·청년단체·사회단체·시민들이 손에 국기를 들고 삼삼오오 대를 지어 세종로와 태평로를 향하여 행진을 시작하였다’고 전했다. 1948년 5월 31일 국회 개원식 이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는 대목은 없다.
1948년 6월 30일 제헌의회 제21차 회의 속기록에는 제헌국회 재정위원회 위원장 정해준 의원이 ‘지난 개원식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에 실로 초유의 거사였고 그야말로 기억에 새로운 일이였습니다. 그때 이 자리에서 모였을 때에 으레히 우리 일동에 역사적으로 생긴 이 국회인 만큼 우리가 일당에 모여서 기념할 수 있는 사진을 같이 그때 찍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만반의 유감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라고 말한 내용이 있다. 다시 말해, 개원식 때 기념사진을 찍지 못했고, 오늘날(6월 30일)까지 찍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얘기다. 따라서 국회가 설명하는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 후 촬영한 기념사진’은 없는 것으로 읽힌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제헌국회의원상의 토대가 됐다고 한 사진이 1948년 5월 31일 국회개원식 기념사진이라고 한 이유는 국회기록보존소 자료에 기인한다. 국회기록보존소 홈페이지와 국가기록원 기록정보콘텐츠 등에 이 사진이 게시돼 있는데 ‘1948.5’라고 적혀 있다. 국회기록보존소 관계자는 “제헌국회의원상의 토대가 된 사진 날짜가 타 기관과 다른 건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7월 17일이라는 명쾌한 근거는 찾지 못했지만 자체 조사에 따르면 7월 17일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도서관에 있는 △국회사:제헌국회, 제2대 국회, 제3대 국회(국회사무처,1971)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의정사(국회사무처, 1995) △국회50년연표(국회사무처, 2000) 등 발간물에도 앞의 사진이 ‘제헌국회의원 기념촬영’(국회 개원식 기념사진)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사진 소장자가 기념사진 촬영일을 잘못 파악해 ‘1948. 5’로 작성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 사진이 소장돼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예산으로 (소장자에게) 구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사진에는 ‘단기 4281년 대한민국헌법공포기념 7월 17일’이라고 명시돼 있는 반면 사진 아래 인물표시도에는 수기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글자, ‘제헌국회의원 기념사진 4281. 5’ ‘초일(어떤 일이 처음 시작되는 날) 1948. 5. 31.’이 적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소장자가 잘못 알고 액자에 표기해놓은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원인 민주연구원의 박혁 책임연구위원은 “제헌국회의원상 설명문과 이에 대한 국회 기록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며 “헌법이 공포된 중요한 순간을 국회가 역사 검증 없이 설치하고 설명한 것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