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별과 같이’ 들으며 편안히 떠나…‘나는 노래밖에 할 줄 모른다’ 항상 말해”
7월 15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가수 현철이 마지막 순간에 선곡한 노래는 ‘내 마음 별과 같이’였다. 비록 병마와 싸우느라 한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한평생 그를 지탱해 준 노래가 함께했다.
필자는 수년에 걸쳐 현철의 아내와 연락을 취해왔다. 연초 통화했을 때도 “더 나빠지지 않았다”며 “잘 지내고 계시다”고 했지만 최근 두 달 사이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졌다. 7월 15일 현철이 눈감은 뒤 경황이 없는 아내와 직접 통화는 못 했지만 16일 오전 문자 메시지가 왔다.
“폐렴으로 입원해서 두 달간 중환자실에 계셨습니다. 본인이 가장 아끼는 노래인 ‘내 마음 별과 같이’를 아들이 귀에 가까이 들려드렸고, 아끼는 손자들을 모두 보신 뒤 편안하게 가셨습니다. 모두의 사랑 그리고 은혜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왜 ‘내 마음 별과 같이’였을까. 이 곡은 1987년 현철이 발표한 곡이다. 당시 동명 드라마 OST로도 쓰였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며 덩달아 현철의 인지도도 상승했다. 이듬해 고인은 출세작인 ‘봉선화 연정’을 발표했고 이 노래로 이듬해 KBS 가요대상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1990년 발표한 ‘싫다 싫어’로 2년 연속 ‘가수왕’이 됐다. 20년 무명의 설움을 단박에 날린 셈이다.
당시 현철은 오열하며 “한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한 달만 더 사셨으면 좋았을걸. 가요계 생활 20년인데 살아생전 제가 불효해서 아버님께 정말 죄송하다”고 가슴 절절한 소감을 말했다. 아버지가 그 목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일까. 그때부터 현철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 시작점에 있는 노래가 바로 ‘내 마음 별과 같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현철의 삶과 닮았다. “찬란한 젊은 꿈을 피우기 위해 떠도는 몸이라지만”은 가수로 우뚝 서기까지 20년의 세월을 보낸 그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너는 알리라 내 마음을 부평초 같은 마음을”에서 ‘부평초’는 개구리밥과의 여러해살이 수초다. 물 위에 떠 있는 풀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를 이를 때 쓰는데, 가수로서 20년 동안 뿌리내리지 못하던 그는 공교롭게도 부평초를 노래한 ‘내 마음 별과 같이’를 통해 한국 가요계에 뿌리내리고 거목으로 우뚝 선다.
마지막 문장은 더 먹먹하다. “내 마음 별과 같이 저 하늘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리.” 마치 이승에서 82년 생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는 그를 지칭하는 듯하다.
2020년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에 ‘레전드 가수’로 참여한 것이 TV에서 본 현철의 마지막 모습이다. 당시 현철의 아내는 “경추 디스크 수술을 받은 후 인지 기능이 저하돼서 재활 운동을 하고 있다”면서 “20년 전에도 이 수술을 했는데 지금은 연세가 깊으니까 회복이 잘 안 된다”고 전했다.
그사이 현철에 대한 온갖 가짜 뉴스가 유튜브상에 떠돌았다. 와병설을 넘어 사망설까지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 대해 아내는 의연하게 대처했다. 당시 전화 통화에서 현철의 아내는 “저도 처음에는 속상하고 많이 울었는데, 조금 지나니 남편을 그만큼 아껴주시고 남편의 노래를 듣고 싶으니 소문을 내는 것 같았다”며 “가짜 뉴스를 내는 분들이 오히려 고맙다. 안 잊어버리고 그리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속내를 밝혔다.
2023년 연말 TV조선에서는 ‘현철 가요제’가 열렸다. 쟁쟁한 후배 가수들이 출연해 현철의 명곡을 불렀다. 하지만 현철은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후배들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과거에도 후배 가수 최수호가 부른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다는 현철에게 여러 트롯 프로그램은 무대에 서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기회였다.
아내는 이야기했다. “‘나는 노래밖에 할 줄 모른다’, 항상 그런 말을 합니다. 표정을 보면, 말은 안 하지만 (무대가) 굉장히 그립고 아쉬운가 봐요. 근데 이제 괜찮아요. 이렇게 안 잊어버리고 생각해주고 또 저런 어린 딸 같은 손자뻘 되는 후배들이 나와 노래 불러주니까 행복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가수라는 게 굉장히 행복하답니다.”
27세 때 처음 마이크를 잡고 50년 넘게 가수로 살아온 현철. 그 삶이 행복했고 또 감사하다고 가족들에게 말하고 떠났다. 대중도 마찬가지다. 현철이라는 가수가 있었기에,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기에, 또 고인은 떠났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는 남았기에 대중은 여전히 행복하다.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