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지지자들 북새통, 장동혁·진종오 당선 축제 분위기…진행자 논란 발언 및 AI 준비 부족 아쉬움
#환호성으로 알 수 있었던 한동훈 대세론
전당대회 입구 앞은 후보 지지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지자들은 킨텍스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일종의 지휘본부였다. 우비를 걸친 지지자들은 비를 맞으며 후보 이름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킨텍스 입구 근처에서 일렬로 늘어서 장구와 꽹과리를 치며 세를 과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경원 후보 지지자들이었다. 입구 안쪽은 윤상현 후보 이름이 적힌 깃발과 나무 피켓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 들기 위해 까치발을 하는 이들로 북적였다.
윤상현 후보 지지자라고 밝힌 60대 여성은 윤 후보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같은 지역 사람 100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왔다고 밝힌 그는 윤 후보가 5선 의원의 관록과 뛰어난 소통능력을 바탕으로 당대표직을 잘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동훈 대세론’에 대해 그는 “(윤 후보가) 큰일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민주당이 너무 막 나가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은 경험이 있고, 원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오후 2시 31분 최고위원 후보들이 전당대회장으로 입장했다. 최고위원에 입후보한 장동혁 박정훈 후보가 들어오자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뒤를 이어 청년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진종오 후보가 열렬한 환영 속에 등장했다. 세 사람 모두 한동훈 후보 러닝메이트였다. 한 후보의 팬클럽인 ‘위드후니’는 이들을 ‘F4(한동훈 장동혁 박정훈 진종오)’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뒤이어 당대표 후보들이 들어왔다. 빨간색 재킷을 입은 나경원 후보가 먼저 들어왔다. 이어 원희룡 후보와 윤상현 후보가 입장했다. 나 후보만큼의 환호는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동훈 후보가 등장했다. 당원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나왔다. 한동훈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의 함성이 전당대회장을 가득 채웠다.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후보의 손을 잡기 위해 몰려들었다. 진행자가 시간이 지체됐다며 어서 무대로 나와 달라고 재촉한 다음에서야 후보자들은 단상에 올라왔다.
오후 2시 59분 진행자가 윤석열 대통령 입장을 알렸다.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났고, 정부 슬로건인 ‘다시 대한민국’을 외치는 응원가가 재생됐다. 뒤이어 2022년 대선 때 사용하던 로고송 ‘KOREA’가 나왔고, 동시에 ‘윤석열 일어나자, 윤석열 승리하리라’라는 가사가 울려 퍼졌다. 윤 대통령이 여당 전당대회를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입장하는 윤 대통령에게 대의원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한동훈 후보가 받았던 만큼의 환호성은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보냈다. 전당대회 출마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 후보와도 악수했다. 다른 후보들보다 인사 시간이 짧았다. 한 후보 특유의 90도 인사는 나오지 않았다.
오후 3시 8분 전당대회가 개회했다.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당 공식 깃발을 4번 흔들었다. 뒤이어 애국가 제창과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사회자는 줄곧 윤 대통령이 자주 강조하던 자유 민주주의를 언급했다.
이어 황 비대위원장, 서병수 선관위원장, 추경호 원내대표 순으로 축사를 했다. 세 사람 모두 통합을 강조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선당후사와 선민후당의 정신을 강조했고, 서 위원장은 결과에 승복하고 지도부를 중심으로 단결해 윤 정부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108명의 국민의힘 의원이 단합해서 민주당에 맞설 것을 주문했다.
세 사람은 입을 모아 윤석열 정부 업적을 칭찬했다. 동시에 윤 대통령에 대한 청중의 환호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추 원내대표는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압도적인 함성과 지지를 보내줘야 한다”며 윤 대통령의 이름을 연호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윤 대통령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축사를 시작했다. 지난 전당대회와 달리 특유의 어퍼컷 퍼포먼스는 선보이지 않았다. 참석자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행동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또렷하지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당정일체’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을 이겨내고 이 나라를 다시 도약시키려면 무엇보다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당정이 원팀이 돼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일할 때 국민들께서도 더 큰 힘을 우리에게 실어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축사를 마친 윤 대통령은 결과를 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당원들의 관심은 윤 대통령 이동 여부보다는 한 후보와 러닝메이트들의 당선 여부에 집중된 분위기였다. 서병수 위원장은 청년최고위원, 최고위원, 당대표 순으로 결과를 발표했다. 진종오 후보(48.34%)가 청년최고위원에 당선됐고, 장동혁(20.61%) 김재원(18.70%) 인요한(17.46%) 김민전(15.09%) 후보가 최고위원이 됐다. 득표순으로 5위였던 김민전 후보는 당헌·당규에 따라 4위 득표자인 박정훈 후보 대신 당선됐다. 국민의힘 당헌·당규는 여성 당선인이 없으면 4위 득표자 대신 여성 후보자 중 최다득표자를 최고위원으로 당선시키도록 규정한다.
한동훈 후보 러닝메이트인 장동혁 진종오 후보 당선이 확정되자 장내에서는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당대표 당선자로 한동훈 후보가 호명되자 한 후보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 한 후보는 합산 득표율 62.84%로 과반을 달성하며 1차 투표에서 선거를 마무리했다.
환호와 박수를 유도할 필요는 없었다. 당선자 발표 직후 객석에서 터져 나온 환호성이 전당대회장에 울려 퍼졌다. 한 후보 지지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당선자를 발표하는 서 위원장 뒤로 한 후보가 다른 후보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우려했던 지지자들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 후보가 당선 소감을 발표하기 시작하자 다른 후보 지지자들은 실망한 얼굴로 전당대회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경원 후보도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채 장내를 빠져나갔다. 지지자들은 나 후보 이름을 연호하며 격려했다. 다른 후보들도 한 후보의 당선 소감 발표 때 장내에 보이지 않았다.
한 후보는 “저를 선택한 당원 동지 여러분이 후회하지 않을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우리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했다”며 “때로는 화나고 걱정하고 힘든 한 달 보낸 것을 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견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2007년에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선 과정에 모든 일을 잊자. 하루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몇 날에 거쳐서 잊자’고 하셨다”며 “그 한마디가 치열한 경선의 균열을 메우고 상처를 봉합하는 한마디였다”고 전했다.
한 후보 지지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다른 후보 지지자들이 모두 떠난 다음에도 현장에 남아 기쁨을 나눴다. 흥미로운 점은 중년 여성들이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셀카봉’을 든 유튜버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한 후보가 기자회견을 끝내고 1층으로 내려오자 열광적인 함성을 보냈다. 한 후보는 지지자와 유튜버들 카메라 앞에서 질의응답과 사진 촬영을 하며 일종의 ‘팬 미팅’ 시간을 가졌다.
한 후보가 전당대회장을 떠난 다음에도 남아있던 인천에서 온 지 아무개 씨(19)는 “국민의 지지도 받고 당원들에게도 충분히 지지받는 이런 당대표가 우리 보수 국민의힘의 당대표가 되어야지 우리 당이 분열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 씨는 한 후보 유세현장을 따라다녔다고 했다. 유세현장에서 50~60대 중년 지지자들과 알게 됐다. 이번 전당대회도 이들과 함께 왔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온 한 중년 여성은 “오늘 현충원에서 (한 후보 당선을 기원하는) 108배를 하고 왔다”며 “국민의 입장에서 위에 있는 권력인 윤석열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수평적인 관계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F4를 다 지지했다. 그런데 박정훈이 떨어졌다. 마음 한쪽이 몹시 아프다. 그래도 박정훈은 국회의원 자격이 있기 때문에 한동훈 옆에서 보필해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족했던 AI 콘텐츠
전당대회 땐 논란이 되거나 미흡했던 장면도 관찰됐다. 먼저 진행자 발언이 논란이 됐다. 이날 김병찬 전 KBS 아나운서와 광주MBC 아나운서 출신인 양종아 광주 북구을 당협위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김 전 아나운서는 관중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지금까지 박수를 치지 않은 분들이 꽤 계신다”며 “어디서 오셨을까요. 이분들 정체를 밝힐 수 없는 간첩이라든가”라고 말했다. 박수를 치지 않은 참석자들은 전라북도에서 온 당원들이었다. 진행자가 전라북도를 호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발언이 나온 직후 김 전 아나운서가 일간베스트(일베) 등 극우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호남 간첩’ 발언을 썼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 전 아나운서는 해당 발언에 대해 “오해할 수 있는 것 같아 바로 잡는다. 불편하게 했다면 양해 부탁드린다”며 사과했다.
국민의힘이 준비한 AI(인공지능) 콘텐츠는 참석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앞서 국민의힘은 △젊은 세대와 함께하는 전당대회 △전국이 온라인으로 하나 되는 전당대회 △AI 시대를 주도하는 미래 정당으로 발돋움하는 전당대회 등을 전당대회 콘셉트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전당대회장 바깥에 AI 캐리커처 체험 부스, AI 사진관, AI 안내 로봇 등을 설치했다. 안내 로봇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뿐 이를 이용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부스와 사진관을 이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 참석자가 이용하려 했지만, 현금이 없어 그냥 떠났다. 콘텐츠를 체험하려면 현금 1000원이 필요하다. 현장 안내 직원은 AI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AI 진행자 ‘AI힘’도 등장했다. AI힘은 일정을 알리거나 후보자들에게 질문을 했다. 다만 대부분의 진행은 진행자들이 도맡았기 때문에 비중이 적었다.
전직 대통령 육성을 AI로 복원한 콘텐츠는 참석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고 이승만 전 대통령,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의 복원된 육성이 나왔다. 세 대통령 명언을 AI가 그대로 읽는 식이었다. AI가 대통령들의 육성으로 말하기 시작하자 감탄사가 나왔다. 다만 AI는 대통령들의 사투리나 특유의 말투까지 따라 하지 못했다. 경상도 방언을 쓰는 김영삼 대통령이 서울말을 썼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사무총장인 성일종 의원은 전당대회 개회 전 기자간담회에서 “AI 포토존도 있고, AI가 사진을 찍어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기법에서부터 안내까지 AI가 곳곳에 등장한다”면서도 “아직 부족한 것도 많이 확인했다. 감정처리를 못한다든지, 김영삼 대통령은 ‘확실히’를 ‘학실히’라 하는데 이런 (방언을 구현 못 하는 게) 확인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