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총장 “원칙 지켜지지 않아” vs 서울중앙지검 “최선의 선택”…“동일체 중시하는 검찰이 쪼개져”
지난 20일 검찰이 김건희 여사를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곳에서 비공개 조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은 주말 내내 시끄러웠다. ‘특혜 없는 수사’를 강조해왔던 이원석 검찰총장은 곧바로 사과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이 없는 이원석 검찰총장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을 노린 서울중앙지검의 반란”이라는 평이 나왔다.
서울중앙지검은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한 것’이라고 반발한다. 역대 대통령 영부인들의 조사 사례를 볼 때 수사청으로 직접 소환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는 것이다. 대검찰청의 감찰 착수 가능성에 수사 담당 검사인 김경목 부부장검사(사법연수원 38기)는 “수사를 열심히 한 것밖에 없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비공개 안 된다” 검찰총장 패싱한 서울중앙지검?
그동안 대검찰청에서 열린 회의 등에서 이원석 검찰총장은 김건희 여사 사건과 관련해 △비공개 소환 △서울중앙지검 외 장소에서의 조사 등에 대해 모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끄는 수사팀은 ‘사후 보고’를 선택하며 이원석 총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와 형사1부(부장검사 김승호)는 7월 20일 오후 1시 30분부터 21일 오전 1시 20분까지 약 11시간 50분 동안 서울 종로구 창성동 대통령 경호처 부속 청사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및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조사했다. 검찰청사가 아닌 곳에서 비공개 조사한 것이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사 5시간여 후인 20일 오후 7시쯤 돼서야 이원석 총장에게 보고를 했고, 이 총장은 사전 보고 누락 등에 대해 강하게 질책했다. 또 22일 곧바로 “사과드린다”며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동안 “수사 결과를 기대해 달라”며 김건희 여사 사건의 원칙적인 처리를 강조했던 이원석 총장의 과거 발언들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자연스레 검찰총장 패싱 논란이 제기됐다. 주말 사이 ‘레임덕이 온 이원석 총장이 2개월 남은 임기를 포기하고 사의를 표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22일 이원석 총장은 “할 일을 계속하겠다”며 임기 완주 의사를 내비쳤다.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총장의 직접적인 수사지휘권이 없는 사건이라는 점이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간 갈등의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 시절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도이치모터스 사건 관련, 검찰총장이 아내의 사건을 지휘를 하면 안 된다’며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그 다음 임명된 검찰총장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됐기 때문에 이원석 총장도 수사를 지휘할 수 없다.
실제로 이창수 지검장도 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배제된 도이치모터스 조사가 끝난 직후이자 디올백 수수 의혹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보고했다. 이를 이 총장에게도 설명했다고 한다. 이원석 총장은 디올백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지휘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대면 보고를 받고 사전 보고 누락 등에 대해 강하게 질책했지만, 거꾸로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최선을 다했고 원칙을 지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역대 대통령 영부인 조사 사례 살펴보니
검찰의 대통령 영부인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씨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순자 씨는 2004년 5월 11일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4시간 30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권양숙 여사는 2009년 4월 11일 부산지검 청사에서 11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 관련이었는데, 당시 수사 주체는 대검 중수부였지만 거주지 등을 고려해 부산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법조계에서 ‘영부인에 대한 출장 조사는 가능하지만 검찰청이 아닌 곳에서 이뤄진 수사는 아쉽다’는 평이 나온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특히 전직 대통령들의 부인과 다르게 현직이기 때문에 서울중앙지검 소환 시 보안 등을 이유로 서울중앙지검으로 부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한다. 정치적으로 예민하거나 논란이 예상될 경우 언론에 알리지 않고 몰래 제3의 청사에서 조사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보안을 이유로 검찰청이 아닌 곳을 선택한 것이 아쉽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앞선 영부인들은 모두 참고인 신분이었지만 김 여사는 피의자 신분이지 않았냐. 검찰이 가지고 있는 건물들 중 보안을 고려해 선정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며 “일련의 과정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찰청에 보고를 한 뒤 동의를 받아 이뤄졌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 반대를 설득하지 않고 이를 강행하다 보니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실에 줄을 서서 수사를 한다는 야권의 비판이 나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담당검사 사표, 역대 초유의 검찰 내홍되나
디올백 수수 의혹 수사팀의 검사가 사표를 제출하는 등 파장은 이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파견돼 김건희 여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를 수사하던 김경목 부부장검사는 이원석 검찰총장의 감찰 조사 지시 사실이 알려지자 항의의 뜻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김 부부장검사는 “사건을 열심히 수사한 것밖에 없는데 감찰 대상으로 분류한 것에 화가 나고 회의감이 든다”고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까지 나서 “검찰 내부 문제”라면서도 “현직 대통령 부인이 검찰에 소환돼 대면조사를 받은 건 전례가 없었다”고 서울중앙지검의 편을 들고 나선 상황.
대검찰청 대 서울중앙지검·법무부·대통령실의 갈등 구도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원석 검찰총장은 최근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지휘권 회복을 구두로 요청했지만,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복원하라는 장관의 지휘도 수사지휘권의 발동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에서는 검찰총장이 대통령 영부인 조사 과정을 놓고 언론에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얘기한 것을 놓고도 불만 어린 목소리가 상당하다고 한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전직 검찰총장이자 현직 대통령의 부인 관련 논란에 ‘동일체’를 중시하는 검찰이 둘로 나뉘어 쪼개졌다”며 “결국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사안을 국민들이 어떻게 처리하기를 바라는지 검찰과 법무부, 대통령실은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