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있다면 신체검사서 제출 없이 도검 소지 가능…경찰, 평소 이상행동 보인 가해자 관리 ‘허점’
경찰은 병원으로부터 피해자 B 씨의 사인이 ‘다발성 열상으로 인한 저혈압 쇼크’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다발성 열상’은 두 군데 이상의 신체 여러 부분에서 피부가 찢어져서 생긴 상처이고 ‘저혈압 쇼크’는 출혈로 혈액량이 줄어 혈압이 낮아져 발생하는 쇼크다. 얼마나 무참하게 일본도로 공격을 당해 사망에 이르렀는지를 알 수 있는 안타까운 사인이다.
A 씨는 범행 직후 자신의 집으로 도주했지만 사건 발생 1시간가량 지난 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이 확보한 흉기는 칼날 길이만 80cm 가량이고 전체 길이는 120cm 정도인 일본도였다. 검거 당시 A 씨의 집에서 다른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직후 관심사는 같은 아파트 주민인 A 씨와 B 씨의 관계로 집중됐다. 요즘 아파트 주민들끼리 분쟁이 야기되는 사례가 워낙 많아 이로 인한 원한관계로 벌어진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서로 얼굴 정도는 알고 지냈을 뿐 별다른 관계는 없는 사이로 파악되면서 살인 동기가 모호해졌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30일 오후 4시부터 A 씨에 대한 피의자 조사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A 씨 역시 “산책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마주친 적은 있으나 개인적 친분은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그에게 일본도를 휘두른 것일까. A 씨는 “피해자가 지속해서 나를 미행하는 스파이라고 생각해 범행한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음주로 인한 사건은 아니다. 사건 발생 한 시간여 뒤 경찰이 검거했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약 불법 투약 여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A 씨가 마약류 간이 시약 검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A 씨에게 정신 병력이 있는 것일까. 적어도 2024년 1월까지는 정신질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니 없었어야 한다. 범행에 사용된 일본도에 대해 A 씨가 지난 1월 장식 목적으로 허가당국의 소지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총포ㆍ도검ㆍ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포화약법) 제13조는 심신상실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또는 알코올 중독자, 정신질환자 또는 뇌전증 환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등은 총포와 도검 등의 소지 허가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신질환자가 아니기에 허가관청(주소지를 관할하는 경찰서장)이 소지를 허가한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 허점이 있다. 총포의 경우 총포화약법 제12조는 ‘제1호 및 제2호의 총포 소지 허가를 받으려는 경우에는 신청인의 정신질환 또는 성격장애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서류를 허가관청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총포화약법 시행규칙)에선 구체적으로 총포는 총포 소지의 적정 여부에 대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견이 기재된 진단서 또는 소견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도검 소지 허가는 총포만큼 엄격하지 않다. 총포화약법 시행규칙 21조에 따르면 도검을 소지하려면 도검 소지 허가 신청서, 신체검사서, 출처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사진, 병력 신고 및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신체검사서의 경우 총포는 종합병원 또는 병원에서 발행한 것에 한하지만 도검의 경우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은 신체검사서를 첨부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운전면허만 있다면 도검의 소지가 가능하다. 게다가 별도의 갱신 규정도 없다.
그나마 병력신고 및 개인정보 이동 동의서가 있지만 조현병·정동장애·고도의 성격장애 및 이에 준하는 증세로 치료 받은 사실이 있는지, 뇌전증 등으로 치료 받은 사실이 있는지,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알코올중독 등으로 치료 받거나 수사기관에 단속된 사실이 있는지 등 세 가지를 묻는데 그친다. 모두 ‘없음’으로 표시하면 허가관청이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결국 지난 1월 기준 A 씨는 운전면허가 있고 병력신고 및 개인정보 이동 동의서에는 모두 ‘없음’으로 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종합병원 또는 병원에서 발행한 신체검사서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견이 기재된 진단서 또는 소견서는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경찰 역시 A 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력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피해자 B 씨가 A 씨를 미행하는 스파이였을까. B 씨는 가구회사 직원으로 초등학교 3학년과 4세의 두 아들을 둔 평범한 40대 가장이었다. 행여 피해자가 신분을 속인 스파이였다면 A 씨는 스파이가 미행할 이유가 있는 대상이었을까. A 씨는 대기업 직원이었지만 지난해 말 상사와의 갈등으로 퇴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퇴사하고 한 달여 사이에 일본도를 구입한 셈이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A 씨가 평소 이상행동을 보였다고 얘기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해 자주 항의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A 씨가 심신상실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또는 알코올 중독자, 정신질환자 또는 뇌전증 환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등이 아니라고 판단해 도검 소지 허가를 한 허가관청은 ‘주소지 관할 경찰서장’이다. 그리고 A 씨의 이상행동으로 아파트 단지에 경찰이 출동했다면 역시 ‘주소지 관할 경찰서 소속’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번 사건의 원인이 A 씨의 정신질환 때문이라면 총포화약법 시행규칙의 제도적 허점과 경찰의 안일한 관리에 대한 지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