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힘들어 하기보다 동기 부여하려 노력”…루키 시즌 이례적 보블헤드 데이 진행
매일 경기에 나서며 메이저리그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던 일상이 부상 이후 갑자기 멈추게 됐다. 그는 지나온 시간들을 수차례 곱씹었고, 자신의 경기들을 복기하며 그라운드가 아닌 더그아웃에서 동료의 경기를 지켜보고 응원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있다.
7월 29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인 오라클파크에서 만난 이정후는 한층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이날은 한화 라이프 플러스의 후원으로 이정후의 보블헤드 데이가 진행됐는데 메이저리그 루키 신분의 그가 첫해부터 자신의 보블헤드 데이를 갖는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어깨 수술 후 이정후의 일상은 출근, 재활, 경기 분석, 퇴근 등으로 이뤄진다. 홈에서 경기가 있을 때는 이런 루틴이 진행되는 반면에 팀이 원정을 떠나면 야구장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다 퇴근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재미 없겠지만 이정후는 그 안에서 동기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재활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마냥 힘들어하기보다는 동기 부여 이유를 찾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힘든 시기도 지나가기 마련 아닌가. 힘들다고 해서 너무 그런 쪽에 빠져 있으면 더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이런 시간을 잘 견뎌내면 좋은 시기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버텼다.”
이정후는 지난 5월 13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 경기에서 수비 도중 오라클 파크 중앙 담장에 부딪혀 어깨가 탈구되는 부상을 당했다. 순간 극심한 고통에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다며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본 고통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부상 직후 야구장에서 병원에 가려고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느꼈을 만큼 아팠다. 이전에 어깨가 빠졌을 때는 야구장에서 다시 꿰맞췄는데 이번에는 너무 세게 빠져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피가 많이 고여 있어 그 피가 빠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수술을 했다. 그 시간이 3주나 됐다. 수술을 위해 기다렸던 그 3주가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난 여기에 야구하러 왔는데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실망감이 컸다. 내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사라지고 다시 재활을 해야 한다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생겨 슬프기도 했다.”
이정후는 지난해 7월 22일 사직 롯데전에서 수비하다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쉼 없이 달려왔으니 잠시 쉰다고 생각하자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번 시즌 초 어깨 부상은 그에게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안겨줬다.
“시즌 초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남은 시간들이 너무 길었지만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것 또한 공부라고 생각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함께 고생했던 동료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조금씩 적응해 나갔고, 재활에 집중하면서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이정후는 부상 전까지 자이언츠의 리드오프로 나서 37경기 타율 0.262 2홈런 8타점 15득점의 성적을 올렸다.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던 선수의 부상과 수술로 인한 시즌아웃은 누구보다 선수 자신이 감당하기 버거운 순간이었겠지만 이정후는 그 또한 시간의 힘으로 받아 들였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입성 때 ‘바람의 손자’로 큰 화제를 모았다.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아버지 이종범 전 코치가 선수 시절 ‘바람의 아들’로 활약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이언츠 구단은 이정후가 오라클파크에서 처음으로 경기를 치를 때 특별 영상을 제작해 이정후의 별명이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자세히 소개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6월 27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선 ‘한국 문화 유산의 밤’을 맞이해 아버지 이 전 코치가 마운드에 올랐고, 아들은 시포자로 포수석에 앉아 오른손으로 아버지의 공을 받았다.
“메이저리그는 이런 스토리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스프링캠프 때 텍사스 레인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에서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너리그에서 연수를 받던 아버지가 빅리그 팀의 시범경기에 합류해 경기 전 선발 라인업을 주고받는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다. 원래는 우리 팀에서 내가 나가 아버지와 라인업 카드를 주고받았어야 했는데 미리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해 아버지와 그라운드에서 만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한국 문화 유산의 밤’을 맞이해 아버지와 시구와 시포로 만나게 됐다. 물론 경기를 뛰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년 시즌도 있으니 그 아쉬움은 금세 털어낼 수 있었다.”
이정후한테 메이저리그는 도전의 대상이었다. 아무리 KBO리그의 기록과 성적이 화려했다고 해도 최강의 선수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에서의 생존은 또 다른 숙제였다. 그럼에도 이정후는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시즌 개막을 원정 경기로 치렀고, 상대 팀은 김하성이 뛰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개막전에서 이정후가 처음으로 맞붙은 선발투수는 다르빗슈 유였는데 첫 타석에서 이정후는 삼구 삼진으로 물러난다.
“그때는 타석에서의 느낌이 편하지 않았다. 평소의 느낌이 달랐다. 일단 초구를 치려고 스윙했는데 파울이 됐고, 두 번째 공은 엄청 느린 커브에 타이밍이 안 맞아 투 스트라이크로 내몰렸다. 다음 공을 기다리는 순간 갑자기 뭐가 쑥 지나가더라(약 153km/h의 포심 패스트볼). 그대로 서서 삼진 아웃을 당했는데 오히려 그 이후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이정후는 팀이 1-0으로 앞선 5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다르빗슈 유에게 중견수 방면 안타를 때렸다. 시범경기에서의 좋은 타격감이 개막전 안타로 증명이 된 것이다. 이후 이정후는 타석에서의 안정감을 찾았고, LA 다저스 원정 경기까지 매 경기 안타를 만들어냈다. 시즌 1호 홈런을 샌디에이고 홈구장인 펫코파크에서 때려냈다면 시즌 2호 홈런은 오라클파크에서 자이언츠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왔다. 이정후는 오라클파크에서의 홈런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당시 엄청난 환호와 함성이 오라클파크를 뒤덮었기 때문이다.
이정후에게 KBO리그 경기를 챙겨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주로 보고 있다고 대답한다. 키움 시절 동료였던 김혜성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가운데 이정후가 김혜성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이정후는 김하성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미국에 오기 전 (김)하성 형한테 많은 도움을 받은 것처럼 나 또한 (김)혜성이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이곳 미국 생활이라든지 메이저리그 투수들에 대해 주로 이야기해주는 편이다.”
인터뷰 말미에 “올 시즌을 마치면 FA가 되는 김하성과 한 팀에서 뛰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이정후는 “형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게 최선의 선택일 것이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응원하겠다”라고 답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