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배드민턴협회, 부상 조치 등 관련 다른 주장…문체부·대한체육회 조사 예정
#금메달 후보 1순위였던 배드민턴 여제
이번 올림픽에 나선 대한민국 선수단은 8월 8일 기준 금메달 12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종합 6위에 올라 있다. 대회 전 대한체육회가 설정한 목표는 금메달 5개였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당초 높지 않던 예상치에도 메달 획득이 가장 유력시되던 선수는 안세영이었다. 2023년 7월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23년부터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정상 등극 이후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도 여자 단식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기세를 올렸다.
정상의 자리에 오른 배경에는 '천적 극복'이 있었다. 그동안 중국의 천위페이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비록 안세영이 대회 당시 어린 나이였다고는 하지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20 도쿄 올림픽 모두 안세영의 발목을 잡은 선수는 천위페이였다. 안세영은 각각 대회 32강과 8강에서 천위페이를 넘지 못했다. 2022시즌까지도 상대 전적에서 열세를 보였으나 2023시즌부터 전세가 뒤집어졌다. 천위페이를 넘은 안세영은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스타일 변화도 호성적을 이끌어 낸 비결로 꼽힌다. 이전까지 안세영은 '수비형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탁월한 체력을 바탕으로 경기를 끌고 가며 상대 실수를 유발하는 유형이었다. 하지만 2023시즌 들어서며 기존의 플레이 스타일에 공격성을 더했다. 안세영이 상대 코트 구석구석을 찌르는 공격에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이 탄성을 쏟아낸 시점도 이때부터다.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하고 한 차례 고배를 맛봤던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정상 등극과 동시에 악재가 따랐다. 아시안게임을 치르던 도중 부상을 입은 것이다. 금메달을 눈앞에 둔 결승전에서 안세영은 부상을 입었다. 진단은 무릎 힘줄 파열이었다. 자연스레 아시안게임 이후 남은 2023시즌 일정에서 그는 페이스가 떨어졌다. 이 시기 3개 대회 성적은 3위, 16강, 3위였다. 부상의 여파가 적지 않은 듯 했다.
부상은 올해 들어서도 떨쳐내지 못했다. 허벅지 부상을 입은 채로 일정을 소화하다 반대편 무릎까지 부상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안세영은 올림픽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당시 그는 "당장 상태가 좋아질 수는 없다. 통증에 적응해야 한다"며 '버티기'를 선택했다.
#12년 만의 배드민턴 금메달 쾌거
안세영은 아픈 무릎에 테이핑을 덕지덕지 감은 채 올림픽에 나섰다. 하지만 코트에서는 마치 부상이 언제 있었냐는 듯 승승장구했다. 조별리그에서 그는 2연승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16강 없이 부전승으로 곧장 8강으로 향했다.
8강에서는 안세영 이전 세계랭킹 1위였던 야마구치 아카네(일본)를 만났다. 첫 세트를 내주며 불안감을 노출했으나 이후 두 세트를 내리 따내며 역전승을 거뒀다. 최대 장점인 탁월한 체력을 자랑하며 3세트에선 압승을 거뒀다.
4강전 그레고리아 마리스카 툰중(인도네시아)을 상대로도 8강과 비슷한 양상이 펼쳐졌다. 안세영은 1세트를 먼저 내줬다. 하지만 2세트부터 특유의 상대를 흔드는 날카로운 공격을 선보였다. 결국 다시 한 번 역전승을 거둔 안세영은 결승으로 향했다.
결승은 비교적 수월했다. 과거 천적이었던 천위페이가 8강에서 탈락한 점도 안세영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결승 상대 허빙자오(중국)은 안세영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안세영은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완승으로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배드민턴에도 경사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16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여자 단식으로 범위를 좁히면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이후 28년 만의 정상이다. 28년 전 금메달의 주인공이었던 방수현 해설위원은 현장 중계석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는 안세영과 방 위원의 포옹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대관식 직후 터진 ‘대형 폭탄’
여제의 대관식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한국 선수단이 연일 금메달 소식을 전한 가운데 다시 한 번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일부 메달 획득이 국내에서는 새벽 등 취약 시간에 이뤄진 반면, 안세영의 금메달 획득 순간은 많은 국내 팬들이 지켜볼 수 있었던 시간대였다. 안세영의 결승전은 한 채널에서만 1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환희의 순간도 잠시, 안세영을 둘러싸고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가 지금까지 과정에서 지원 등의 아쉬움을 표현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의 표현은 금메달을 딴 직후부터였다.
그는 "내 부상 정도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낫기 힘들었다"며 "대표팀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많이 실망했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함께 가기가 조금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급력은 상당했다. '대표팀과 함께 가기가 힘들지 않을까'라는 대목에서는 은퇴 암시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를 향해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협회는 모든 것을 다 막고 있다. 한국 배드민턴이 더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협회가 좀 더 뒤를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세영은 '은퇴설'에 대해서는 곧장 진화에 나섰다.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수 관리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은퇴라는 표현으로 곡해하지 말아 달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주시고 해결해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본다"고 전했다.
'폭탄 발언'은 적지 않은 파급력을 낳았다. 금메달 획득 이튿날에도 잡음은 지속됐다. 이번 대회에 대한체육회는 메달리스트가 탄생하면 파리에 설치한 '코리아 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세영은 등장하지 않았다. 은메달을 따낸 혼합복식조만이 기자회견에 나섰다. 대한체육회는 '선수 측의 의사'라며 안세영의 불참 소식을 전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안세영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프랑스를 떠나며 만난 취재진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며 자신의 의사로 불참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혔다.
안세영의 귀국에 앞서서는 대한배드민턴협회 인사들이 먼저 한국 땅을 밟았다. 김택규 회장을 비롯한 일부 임원들은 당초 선수단과 함께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급히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손가락질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으나 이들은 "해명 보도자료를 오늘 중으로 배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협회와 선수는 갈등이 없었다"는 말을 남겼다.
자연스레 많은 시선이 안세영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8월 7일 오후로 안세영의 귀국 일정이 정해지자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은 안세영을 기다리는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여느 국제대회 참가 선수단의 귀국 현장 못지않은 인파였다. 타 종목 선수들과 함께하는 귀국이었기에 기존에 정리된 동선이 있었으나 안세영을 향한 뜨거운 관심에 이를 조정해야 할 정도였다.
오후 4시가 넘어 안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싸우려는 의도가 아니라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말을 아꼈다. "자세한 것은 상의한 후 말씀 드리겠다"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안세영이 곧장 공항 출구로 향하자 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는 취재진이 뒤따랐다. 규모가 큰 장비까지 동원돼 위험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협회를 향해 직언을 내뱉은 올림픽 영웅을 향해 응원의 외침을 전하는 일반 공항 이용객도 적지 않았다.
#장기화될 갈등 국면
안세영은 "싸우려는 의도가 아니다"라고 밝혔으나 선수와 배드민턴협회 간 냉랭한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협회는 예고대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5000자가 넘는 긴 분량이었다.
협회는 자신들이 안세영을 무리하게 대회에 참가시킨 일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부상 오진 의혹에 대해서는 안세영 본인이 동행해 진단을 받았으며 본인의 의지로 국제대회에 나섰다고 밝혔다. 또 "본인의 요청으로 소속팀에서 재활 훈련을 진행했다(5주간)"고 덧붙였다.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안세영은 발목이 접질리는 부상을 당했던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협회는 "선수의 요청으로 한의사를 서울에서 파리로 파견했다. 1100만 원의 경비를 들여 지원했다"고 반박했다. 안세영은 기존 트레이너가 올림픽에 동행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는 "트레이너와 계약이 6월 30일까지였다. 계약 연장을 제안했으나 트레이너가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훈련 방식 변화는 고려할 뜻을 내비쳤으며 대표팀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주요 국제대회에 나서는 것은 선을 그었다. 안세영의 말대로 '상의'가 필요해 보인다.
양측이 맞서는 상황에 각계각층에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움직임이 감지된 곳은 정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8월 6일 안세영 건과 관련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개선 조치의 필요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한체육회도 별도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을 전했다. 대한체육회 법무팀장과 감사실장, 외부 감사 전문가도 나설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목소리를 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번 일을 계기로 불합리한 일들이 개선되는 데 힘쓰겠다"고 말한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은 안세영의 귀국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갈등이 심화될 경우 안세영과 협회 간 법정공방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안세영이 스포츠계 사건사고 경험이 많은 한 법무법인과 접촉한 움직임까지 감지됐다. 당분간은 양측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세영은 귀국 이후 인천국제공항을 떠나며 홀로 소속팀 삼성생명의 차량을 이용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