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책 빌라·오피스텔 공급 확대에 방점…수요 받쳐주지 않아 효과 크지 않다는 분석
#정부, 비아파트 대책에 집중하는 이유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비아파트의 인허가·착공·준공 물량이 전년 동기 대비 모두 반토막 수준으로 감소했다. 올해 5월까지 준공된 서울 내 빌라(다가구·다세대·연립) 수는 2900여 가구로 지난해보다 58% 감소했다. 착공 실적도 부진하다. 올해 5월까지의 착공 물량은 1800여 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5% 줄었다. 주택 공급의 첫 단계인 인허가 물량도 3400여 가구로 지난해에 비해 46% 수준으로 감소했다. 비아파트가 전체 주택 인허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40.7%에서 지난해 16.8%로 줄었다.
비주택인 오피스텔 준공 물량도 올해 1~5월 2만 1000여 실로 지난해보다 25% 줄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국 오피스텔 분양 물량은 2500여 건으로, 상반기가 다 지나도록 지난해 총 분양물량의 35%밖에 채우지 못했다. 오피스텔 입주 예정 물량도 3만 3800여 호로 지난해 5만 6700여 호에 비해 대폭 감소할 예정이다.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 안정화를 위해서는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하지만 아파트의 경우 인허가 절차가 까다롭고 공급 세대가 많다보니 3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반면 비아파트는 인허가 기간과 공사 기간이 1년 미만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짧다. 정부는 비아파트를 급등하는 집값을 안정화할 수 있는 주거 공급 방안으로 보고 신축 공급을 늘리기 위해 규제를 풀고 있다.
정부가 8월 8일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신규 대책을 내놓으면서 비아파트 공급 확대에 방점을 찍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빌라 등 신축 소형주택을 구입하면 취득·종합부동산·양도세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기간을 2027년 12월까지 2년 더 늘렸다. 비아파트 구입자가 청약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청약 시 무주택으로 인정하는 비아파트 범위 등도 확대했다.
정부는 내년까지 11만 가구 이상의 비아파트를 신축매입(준공 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 방식으로 수도권에 집중 공급하기로 했다. 특히 서울은 공급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무제한 매입한다. 또 세입자가 최소 6년 임대 후 분양받을 수 있는 ‘분양 전환형’ 신축매입 제도를 새로 도입해 신축매입 11만 가구 중 최소 5만 가구 이상을 대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전세사기 등으로 비아파트 전세 기피 심화
정부의 대책을 두고 비아파트 공급이 많아져도 아파트 시장 가격 안정화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우리가 아파트를 못 사서 불안하지 빌라를 못 사서 불안한 것이 아니다. 아파트는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계약자가 돈을 버는 구조지만 비아파트는 사서 오르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고 건축업자만 돈을 버는 구조”라며 “비아파트 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아파트 매매 수요가 빌라로 옮겨붙지는 않기 때문에 주택 가격 안정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축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오피스텔 미분양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 주요 지역 역세권 오피스텔마저 대거 청약 미달 사태를 빚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진행된 오피스텔 청약 17건의 평균 경쟁률은 4.9 대 1을 기록했다. 고금리와 시장 침체로 청약 시장이 위축됐던 2022년과 2023년의 연간 평균 경쟁률인 5.3 대 1과 6.7 대 1보다 낮은 수치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안 팔리는 미분양 오피스텔이 한둘이 아닌데 인허가·착공·준공만 놓고 건축업자 관점에서 생각해서 공급 부족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굳이 얘기하면 신축이 부족한 거고 공급은 차고 넘친다. 진짜 부족한 건 수요”라고 지적했다.
비아파트는 아파트와 달리 가격이 잘 오르지 않기 때문에 실수요보다 세입자를 받으려는 임대 수요가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깡통전세·전세사기 대란 등으로 비아파트의 전세 기피 현상이 심화하면서 임대를 놓기 어려워지자 비아파트를 사려는 수요도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까다로워진 점도 비아파트 매입 수요를 낮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HUG는 전세 보증보험을 통해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에게 우선 전세금을 돌려준 후 임대인에게서 회수한다. 그런데 HUG가 임대인으로부터 회수하지 못한 채권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4조 2503억 원에 달한다. 대규모 전세사기 발생 등으로 인해 50%가 넘었던 연간 채권 회수율이 14%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래 공시가격의 150%까지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했으나 정부는 지난해 5월 공시가격의 126% 이하까지만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지 못하는 주택이 속출했다. 새로 비아파트를 매수하려는 집주인 입장에서도 보증 한도에 맞게 전세가를 낮추면 세입자들의 전세금을 끼고 갭투자 방식으로 주택을 매수하기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에 비아파트의 매력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가가 낮아지면 집주인 돈이 더 많이 투입돼야 하는데 그럼 투자 실익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자금을 더 모아 아파트를 사려는 수요로 전환된다”며 “보증 한도를 무작정 낮출 게 아니라 전세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방식으로 갔어야 했는데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 정책이랑 보조가 안 맞았다”라고 지적했다.
김인만 소장은 “이번 대책은 미분양이 나면 LH가 사줄 테니까 마음 놓고 신축 지으라는 신호다. 이미 공급이 부족한 게 아닌데 세금을 투입해가며 비아파트를 더 짓도록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아파트는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고 빨리 나온다는 신축 빌라는 사람들이 매수를 원하지 않는다.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역부족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안정화 측면에서는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