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정책 드라이브, 의원들과 스킨십…당정 관계·정국 주도권 동시 확보 포석…‘채 해병 특검법’ 딜레마 최대 난제
하지만 ‘부자 몸 사리기’란 말이 나올 만큼 한 대표는 취임 초기 극도로 조심 운전을 하는 모습이다. 임기 초반 강경 드라이브를 걸었다가 당내 반발과 마주했던 2021년의 이준석 대표 사례를 분석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발의한 ‘채 상병 특검법’이 한 대표의 첫 번째 시험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난이도가 높아 취임 초 안정적인 스탠스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의문부호가 달린다.
#한동훈, ‘말하기’보단 ‘듣기’
당내 기반이 약한 데다 원외라는 한계를 갖고 있는 한동훈 대표는 최대한 마찰음을 줄인 상태에서 최고위원회 장악이라는 실리부터 챙겼다. 친윤 정점식 정책위의장을 4선 김상훈 의원으로 교체하고, 김종혁 전 조직부총장을 지명직 최고위원에 앉히면서 친한계는 장동혁 최고위원과 진종오 청년최고위원을 포함해 최고위 과반을 확보하게 됐다.
당초 친윤 정점식 의원이 버틸 것이고 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인 정 의원을 임기가 한참 남았는데 정책위의장 자리에서 끌어내리면 그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당내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한 대표는 이 과정에서 묘수를 냈다. 국민의힘 최대 지지기반인 TK(대구·경북) 지역구에다가 계파색이 옅은 것은 물론, 성격이 무난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상훈 신임 정책위의장을 기용한 것이다. 당내에서의 반발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포석이었다. 이런 구상은 들어맞았다. 국민의힘은 8월 5일 의원총회를 열어 김상훈 의원을 새 정책위의장으로 추인했다. 관례대로 표결 없이 박수로 추인했다는 게 의총 참석자들 전언이었다.
계파색 옅은 김상훈 의원이라도 친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긴 했다. 실제 정점식 의원 유임을 바라던 몇몇 친윤계 의원들은 실력 행사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정책위의장 추인권이 주어졌던 의총에서 이 안건에 대한 별도 발언자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의총 분위기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한 재선 의원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의원총회에서 김상훈 정책위의장을 추인하면서 일부 친윤 의원들은 떨떠름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TK 의원들 중심으로 애써 박수로 분위기를 띄우면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정책위의장 교체를 둘러싼 내홍이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마찰음을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최고위를 장악한 한 대표는 이런 기류를 감지한 듯 소리 없이 당내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인재영입위원회 상설화’를 통해 인적 쇄신에 시동을 걸었다. 과거 전국단위 선거를 할 때만 운영되던 인재영입위를 상시 가동해 수시로 외부 인사들을 수혈하겠다는 의지다. 이렇게 될 경우, ‘한동훈 체제’를 뒷받침하는 여권 내 인력 풀이 더욱 넓어지는 효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 대표는 취임 초반 쏟아낼 말이 많을 테지만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선택하고 있다. 8월 2일부터 여당 중진 의원들과 조찬 및 오찬 릴레이를 이어가며 식사 정치를 가동, 당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받아 적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 5일에는 조경태 권성동 의원, 8월 6일에는 주호영 권영세 윤상현 조배숙 의원 등이 각각 참석했고, 8일에는 4선 의원들과 오찬을 가졌다. 식사에 동석했던 의원들은 한 대표가 들으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한 대표가 술을 잘 마시는 호탕한 성격도 아니고 검사 시절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모임을 즐기는 성향도 아닌데 이렇게 식사를 자주 하는 것 자체가 강행군일 것”이라며 “친윤 세력을 다독여 거부감을 줄이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반대 정서를 줄이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조선제일검’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한 대표는 야당에 날을 세우는 공격보다는 차근차근 점수를 따내는 거북이 전략도 취하고 있다. 그는 8월 8일 취약계층 전기료 감면과 반도체 특별법 추진을 발표하며 민생·정책 드라이브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최근 주식 폭락을 계기로 여론이 반응하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신의 장기인 야당 때리기가 아니라 정책을 통해 당정 관계와 정국의 주도권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2021년 이준석 파격 행보, 최고위와 충돌
정치권에서는 한 대표의 이런 초반 행보를 두고 이준석 학습 효과와 연결 짓기도 한다. 이 전 대표는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가 되자마자 파격의 연속을 보여줬다. 당에서 기사가 운전하는 전용차를 제공하지만 당시 이 전 대표는 지하철을 타고 국회 앞 국회의사당역에 내린 뒤 자전거 ‘따릉이’를 몰고 당대표실이 있는 국회 본관까지 출근하는 장면이 언론사 사진기자 앵글에 잡혔다.
한동훈 대표가 주로 국회에서 머물고 있는 것과 달리 당시 이 전 대표는 취임 첫날 철거 건물 붕괴 참사가 일어난 광주광역시를 찾은 데 이어 그로부터 나흘 뒤에는 전북 전주를 찾아 당원 가입 가두 모집 행사를 했다. 또 며칠 뒤에는 서울에서 가장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 중 하나인 강남역 한복판에서 시민들과 만나 즉석 대화를 가졌다.
한 대표는 최근 대변인들을 ‘임명’했지만 당시 이 전 대표는 4명의 대변인단 선발을 토론배틀 형태의 공개 테스트로 했다. ‘나는 가수다’라는 인기 프로그램을 본떠 ‘나는 국대(국민의힘 대변인)다’라는 채용 이벤트를 만들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직접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나는 국대다’에서도 드러났지만 이 전 대표는 치열한 경쟁을 통한 적합 인재 등용을 내세웠다. 미국 유학파답게 경쟁과 능력 위주 인재 발탁 방식이었다. 이를 당무에 직접 적용하는 방식도 취임 초부터 내세웠다.
이 전 대표의 취임 초기 이러한 여러 행보에 대해 당내에서는 적잖은 거부감이 만들어졌고 결국 이 전 대표에게 등을 돌리는 세력이 늘어갔다. 대표적인 것이 공천자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는 ‘공직 자격시험’이었다.
당시에도 최고위원이었던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당시 공직 자격시험과 관련, “국민주권주의 대원칙과 맞지 않는다. 공천권 자체가 국민의 몫인데 여기에 시험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접근”이라며 이 전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날을 세웠다. 여러 파격적 행동으로 결국 사사건건 최고위와 충돌하던 이 전 대표는 결국 세력 대결에서 패배했고 당대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이 전 대표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회고했다.
“이준석 대표는 총명하고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그런데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어서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동의와 지지를 획득하는 방법을 거친 뒤에 해야 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독불장군 취급을 받고 말았다. 지금 한동훈 대표는 이 전 대표 사례를 철저하게 공부한 것으로 보이고 지금 모습을 보면 반면교사를 확실히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고난이도 첫 시험 임박
한 대표가 일단 수비형 자세로 취임 초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야당이 프레임을 씌우려하는 ‘윤석열 대통령 아바타’라는 상자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공격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차기를 노리고 있는 ‘미래권력’ 한 대표에게 ‘현재권력’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첫 시험대는 한 대표 스스로 약속한 ‘제3자 특검 추천 방식 채 해병 특검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물론, 친윤계가 “야당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도에 휘말리는 것”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특검법을 발의해야 하는 시점이 차츰 다가오고 있다. 한 대표가 전당대회 공약으로 내세운 이상 슬그머니 발을 빼기도 어렵다.
한 대표가 법안 발의·표결권을 쥔 당 소속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야당이 파죽지세로 윤석열 정부 공직자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있고, 이제는 윤 대통령까지 겨누고 있는데 채 해병 특검을 받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 거라고 상당수 당내 의원들은 주장하고 있다.
당장 원내 사안의 결정권을 쥔 추경호 원내대표부터 넘기가 쉽지 않다. 친윤인 동시에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에 참여했던 그는 특검법 발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추 원내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중 의원총회에서 “원내 사안은 원내대표 중심으로 간다”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사실상 한 대표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는 해석을 낳았다.
한 대표가 임명한 김상훈 신임 정책위의장조차 8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해병 특검법’을 두고 “검경 수사가 끝난 후 다시 한 번 논의해볼 문제”라고 밝혔다. 한 대표 입장과는 완전히 다르게 용산 대통령실과 똑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친한(친한동훈)계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종혁 최고위원은 8월 6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에 나가 한 대표의 특검법 추진과 관련해 “현재 당내에서는 의원들의 거부감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한 대표가 공수처 결과가 나오고 나면 설득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기 위해 한 대표는 특검법을 발의하자고 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당내 문턱을 넘기 어려울 전망”이라며 “결국 출구 전략을 짜야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이미지에 일정 부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데 한 대표가 그 상처를 인정한 뒤 인내심을 갖고 나간다면 또 다른 밝은 길이 열릴 수도 있다”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