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친일 기조 일본도 알아…한미일 안보협력은 하되 군사동맹은 절대 안돼”
‘한일관계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취임 후 일본과 우호적 관계 수립에 노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국무회의에서 “한일관계는 한쪽이 더 얻으면 다른 쪽이 그만큼 더 잃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며 “한일관계 정상화는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에 대해 ‘퍼주기 외교’ ‘굴욕외교’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동의가 대표적이다. 우리 정부가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 사전 설치 및 노동자 추도식 매년 개최’ 등의 조치를 일본과 약속했다며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에 동의했지만, 일본에선 등재 후 관련 전시물에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 노동을 표기하지 않았다.
뉴라이트 인사 논란도 불거졌다. 정부는 지난 6일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역사관 의혹을 받는 김형석 전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앉혔다.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는 합법적이다’, ‘조선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었다’는 역사 논리를 펼치는 정치 분파다.
‘일요신문i’는 지난 13일 제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한일관계 전문 정치학자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를 만나 현 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에선 윤 대통령을 친일 인사로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 우리 정부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동의, 독립기념관장 뉴라이트 인사 임명 등으로 광복절을 앞두고 나라가 떠들썩하다. 특히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동의를 두고는 ‘대일 굴욕 외교’라는 비판까지 쏟아진다. 일본을 향한 윤석열 정부의 행보 어떻게 보는지.
“일본 논리대로 가고 있다. 이전 보수 인사들은 주로 친미·반공 신념을 가졌다면 현 정부의 일부 인사는 친미·반공에 친일이 더해졌다.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논란이 되는 인물을 독립기념관장에 앉힌 것도 그렇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은 과거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는 나라가 없었다’ ‘우리는 일본인이었다’라며 일제의 침략을 합법화하는 발언을 했다. 이것은 일본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같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은 일본인이었고, 강제노동도 국가가 국민에게 시킨 것이어서 국제법상에 문제될 것 없다’고 일본은 주장한다. 김형석 신임 관장의 말은 조선인의 강제노동도 합법화시키는 발언이다. 사도광산 등재와도 연관된다. 여러 모로 일본이 주장하는 기조로 대일 외교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한 일본의 속내는 무엇인지.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관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한 것이다. ‘조선인이 노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 노동은 아니다. 합법적인 노동이었다’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사도광산은 일본 죄수들이 노동하던 곳이었는데, 일본 여론이 ‘죄수들의 노동이 가혹하다’고 지적하면서 일본 죄수들의 노동이 금지됐다. 여기에 조선인들을 투입시켜 강제 노동을 시킨 것이다. 사도광산에 대해 연구해보니, 당시 사도광산 내 조선인들을 감독하는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모은 돈을 자신들이 관리했다. 도망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런 점만 봐도 일본의 강제 노동이 드러난다.”
― 8월 13일로 예정됐던 우원식 국회의장과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의 접견이 대사관 측 요청으로 연기됐다. 당초 이 자리에선 사도광산 등재, ‘조선인 강제동원 명시’ 등이 거론될 예정이었다. 일본대사관은 연기 이후 일정을 잡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일본대사관의 태도를 어떤 의미로 봐야 하나.
“일본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등 한일 간 문제에 대해 지금 피하고 싶어한다. 또 광복절 행사를 두고 한국 정치권 갈등이 심화되는데 이럴 때 불똥을 맞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일본 측에선 여러 모로 난감해서 일정을 연기한 것으로 보인다.”
― 지난 8월 9일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한 중진 중의원은 당 회의에서 “한국에 친일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에 우리가 타협하기 쉬워졌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를 바라보는 일본 정부의 시각이라고 볼 수 있을지.
“그렇다. 이미 일본은 윤 대통령과 한국 정부 인사들이 친일 인사라고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일도 있었다. 올해 상반기 일본에선 사도광산이 한국과 역사문제가 얽혀 있어 유네스코 등재가 어려울 것이란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지난 5월 10일 일본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일본 통신사를 통해 ‘어려운 상황이 있긴 하지만 윤 대통령과 함께 극복해 나가자’라고 전했다. 사도광산 등재가 어렵지만 윤 대통령과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발언이지만, 일본 정부가 윤 대통령이 일본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근거다. 아마 다음 달 자민당에서 새로운 총재가 뽑혀도 일본의 한국 외교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야당에선 “친일파가 가득한 권력”이라며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실제 대한민국은 여전히 친일파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는지.
“일단 대한민국은 친일파 청산이 어렵다. 이승만 정권 때 반민특위(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만든 특별기구) 해산 조치 영향이 크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인식은 ‘우리의 적은 일본이 아닌 공산주의자다’라고 바뀐 것으로 안다. 제1차세계대전까지 적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나치즘·파시즘이었지만 제2차세계대전 후 (이 전 대통령의) 적은 당시 소련과 중국 중심의 마르크시즘(공산주의)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은 친일파여도 자신과 같이 반공 생각을 가진 인물이거나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물이면 거의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이후로 대한민국은 친일파 청산을 하기 어려워졌다고 본다.”
― 한국이 분단국가여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위해 일본과 우호적 관계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다만 일본과 해결되지 않은 역사문제들이 남아 있는데, 안보협력과 역사문제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관계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는 유지하되 독도·역사문제는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건 안보협력이다.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 즉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군사적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미국과 협력하는 체제로 가야지 동맹체제로 가면 안 된다. 군사동맹을 맺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 중 하나는 영토문제가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과 안보협력을 넘어 군사동맹으로 간다면 일본 공군 자위대가 러시아·중국 공군기의 동해 침범을 명분으로 독도로 오는 건 시간문제다. 이렇게 되면 영공 침해 문제로 분쟁이 발생하고, 일본이 원하는 대로 독도가 분쟁 지역으로 돼 한국과 일본이 독도를 두고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 계획에 말리지 않도록 일본과 안보협력까지만 해야 하고, 협력 수위를 어디까지 할지 확실히 정해야 한다.”
― 한국의 일본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 외교에서 남은 과제는 무엇일지.
“한국과 일본은 지금 독도·역사문제가 남아 있다. 특히 역사문제에서 ‘일제강점기는 불법이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했다’는 논리를 가지고 일본 외교를 지혜롭게 풀어 나가야 한다. 한국은 군함도,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등을 각각의 외교 문제로 짚어 해결하려고 한다. 잘못됐다. 군함도,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모두 ‘일제의 침략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일본과 외교를 진행해야 한다. 일본은 법적인 논리, 문화적 논리, 역사적 논리를 하나로 본다. ‘일제강점기는 합법’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일본 외교에서 ‘일제의 침략은 불법’이라는 공통된 논리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