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배경, 중장년층 사이 입소문 타고 정주행…“주인공 삼식이의 진의, 16부까지 다 봐야 알 수 있죠”
“요즘 ‘왜 이제야 드라마를 하게 됐냐’는 질문을 자주 받고 있어요. 사실 제가 배우로 활동하면서 ‘영화는 하고, 드라마는 안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던 건 아니거든요. 제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제가 느낀 걸 나눈다는 목적 그 자체였어요. 그 목적을 다양한 채널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풍성하게 이룰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런 시대에 맞춰서 하게 된 거죠(웃음).”
‘삼식이 삼촌’은 격동과 혼돈의 시대였던 1950~1960년대, 전쟁 중에도 하루 세 끼는 반드시 먹인다는 이유로 삼식이 삼촌이란 별명이 붙은 박두칠(송강호 분)과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엘리트 청년 김산(변요한 분)이 함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국전쟁 직후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혼란스러웠던 사회가 배경이 되다 보니 OTT 주력 시청층인 젊은 세대에게 큰 어필을 하지 못했지만, 모든 회차가 공개된 뒤 중장년층에서는 입소문을 타고 정주행이 시작돼 시선을 모았다.
“처음엔 이 작품에 저도 나온다고 하니까 관심 받고 시청 순위 1위를 한 적이 있긴 있어요. 그게 아마 공개 첫 주 때 일일 거예요. 그러다 쭉쭉 밀리면서 아예 순위권 밖으로 빠진 거고(웃음). 사실 어쩔 수 없어요, 저희도 소재부터 이미 다 예상한 것이기도 하고요(웃음). 한편으론 이런 소재의 작품을 선택해 주신 디즈니+에 존경심도 들어요. 사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신감이 없다면 이런 장르의 작품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성적 측면에서는 저희로서도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결국은 이게 자산이 되고, 이 이후 이걸 바탕으로 더 단단한 콘텐츠가 탄생할 것이라 생각해요.”
시청자들의 호평은 역시 송강호의 ‘삼식이 삼촌’으로서의 호연에 집중됐다. 박두칠이란 본명보다 삼식이 삼촌으로 불리길 원하는 그는 권력자들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박쥐 같은 인물로 비쳐지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제 영혼마저 더럽힐 각오가 돼 있는 순수한 집념의 총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의 제일 밑바닥을 누비며 온갖 더러운 짓을 도맡아 하면서 단 한 순간도 손아귀에서 이상을 놓아본 적 없는 그는 극 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 연결돼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야망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여권 차기 지도자 후보 강성민(이규형 분)과 대한민국을 부국을 만들고자 하는 육사 출신의 엘리트 청년 김산과 깊은 관계성을 보인다.
“삼식이와 강성민은 애증관계죠. 성민의 집안이 삼식이를 여태까지 키워주고 보살펴 줬지만, 성민은 제 욕망을 위해 삼식이에게 너무 힘든 일을 시켜요. 그러다 보니 증오심이 드는데, 한편으론 그럼에도 삼식이는 성민이만큼은 보호해주고 싶다는 연민도 가지게 되죠. 반대로 김산은 삼식이에게 있어 로망 그 자체예요. 내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 줄 유일한 로망이기에 굉장히 큰 애착을 가지고 있고요. 삼식이가 극중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또 연결돼 있지만, 김산이란 인물에 대해서만큼은 태도가 다른 게 확연히 보일 거예요. 그런 차이들이 있죠.”
송강호가 해석한 삼식이 삼촌은 여러 가지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캐릭터다. 꿈을 이뤄줄 누군가를 위해 제 손에 진흙도 피도 다 묻혀가며 끝까지 등을 밀어주고자 하면서도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고뇌하고 괴로워한다.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추악함부터 순수함까지 모든 곳에 발을 담가본 그가 보여주는 희로애락과 끝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좌절을 16부작이란 흐름 속에 모두 표현해 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삼식이는 이상주의자지만 현실에선 가장 비열하고 추악한 짓을 하면서도 이상을 꿈꾸는 이율배반적인 캐릭터예요. 이 인물이 과연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악인일까. 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런 것의 답이 잘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그래야만 ‘삼식이 삼촌’을 통해 얻어지는 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일 것 같았거든요. 제 생각엔 그게 어느 정도 적중한 것 같아요. 약간 나쁜 사람 같은데 어떨 때 보면 또 애정과 따뜻한 감성이 비쳐 보이는. 그런 것들이 점철돼서 마지막 16부에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을 통해서야 이 인물의 진짜 야망이 무엇인지가 드러나게 되죠. 16부까지 다 봐야 진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인물로 그려지는 건 꽤 성공했다고 봐요(웃음).”
본래 10부작이었던 이야기가 16부작으로 늘어나면서 서사는 더욱 풍부해졌지만 그만큼 곁가지가 많아져 전체적인 스토리가 산만하고 늘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빨리빨리’가 필수가 된 숏폼 시대의 작품인 만큼 적절한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압축했다면 더 많은 시청자들을 유입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극을 이끈 송강호 역시 이런 평에 공감하면서도 “그런 긴 호흡이 또 장점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서사 자체가 방대하다 보니 편수를 늘려서라도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원래대로 10부작이었다면 빠른 스피드로 임팩트 있는 마무리를 보여줄 수 있었겠지만 그 장점보단 좀 더 쉽고 편안한 서사로 접근하고자 한 거죠. 이를 통해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풍부하게, 또 치밀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작품 촬영 기간이 5개월 반 정도로 정말 빨리 찍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솔직한 얘기로 영화 찍을 때보다 좀 벅찼어요(웃음). 하루에 소화해내야 할 분량이 굉장히 방대했거든요. 재미있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정말 빡세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웃음).”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송강호라는 명배우의 연기를 짧은 러닝 타임이 아니라 16부작이라는 대서사시로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삼식이 삼촌’은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그의 연기 인생 최초의 드라마 부문 ‘신인상’까지 기대해 볼 만하다니, 여러 모로 대중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신인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재미있어 하면서도 송강호는 30여 년 전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든 ‘삼식이 삼촌’에 새삼 더 가슴 뭉클한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다.
“캐스팅 기사가 처음 나왔을 때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온 신인상 소리를 누가 보시고 저한테 얘기해줬거든요. 우리 팀 배우들끼리도 전부 그 이야기하고 기자 분들도 재미있어 하시기에 제가 제작발표회 때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로 ‘(주시면) 감사히 받겠다’ 그랬어요(웃음). 사실 진짜 신인상은 앞으로 한국 드라마의 주축이 될 보석 같은 후배분들이 받으셔야죠. 그런데 한편으론 또 감사하기도 합니다. 저를 그렇게 봐주신다는 게 오히려 저 자신에게 있어 다시 한 번 연기를 생각하게 만드는, 순수한 열정을 불러일으켜 줬으니까요. 앞으로도 제게 드라마를 또 할 것이냐고 물어보신다면 답은 ‘얼마든지’예요. 정말로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전혀 상관없습니다(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