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자체 체육회 신청 받아 항공권만 자비 부담…이기흥 3연임 관련? 대한체육회 “전액 기부금 운영”
8월 4일 대한민국 남자 양궁 국가대표 김우진이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김우진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개인 최다 올림픽 메달 기록을 세웠다. 이날 또 다른 이슈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바로 지자체 체육회 고위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민폐 응원’을 했다는 의혹이었다.
한 누리꾼이 소셜미디어에 남자 양궁 개인전을 관람하며 ‘민폐 응원’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글을 게재했다. 누리꾼은 “세금으로 올림픽 양궁 경기를 관람하러 간 협회 소속 회장, 부회장, 사무처장 등 임직원이 관중석에서 상대방을 자극하는 민폐 행동을 해 부끄러웠다”면서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이 아니고, 세계 민폐 국가로 등극하는 순간을 목도하게 돼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누리꾼은 “한국 어르신들을 무지성으로 저격하려 글을 작성한 게 아니”라면서 “과할 정도 비용을 태워서 이들을 지원해야 할 일인지 이렇게 해서 전국 지자체가 얻는 효용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라 망신 다 시키는데 무엇을 위한 경기 참관이냐”고 반문했다.
취재에 따르면 이들은 대한체육회가 파견한 ‘제33회 파리 하계올림픽 참관단(파리 참관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요신문은 참관단의 세부일정 문건을 입수했다. 4월 중순경 대한체육회에서 각 지자체 체육회에 발송한 문건이다. 참관단 참가 최종 신청은 2024년 3월 말경인 것으로 파악됐다.
파리 참관단에 참가신청서를 제출하면 비행기 티켓값을 개인이 지불하는 형태였다. 비행기 티켓은 대한체육회가 지정한 업체를 통해 구매했다. 이코노미 좌석은 300만 원대, 비즈니스 좌석은 800만 원대 가격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한 뒤 일정과 관련한 비용은 대한체육회에서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은 ‘2024 파리 하계올림픽대회 참관단 일정, 숙박, 경기 및 항공권 등 안내사항’이란 제목으로 작성됐다. 이에 따르면 참관단은 3차에 걸쳐 각각 4박 6일 일정으로 파견됐다. 1차 참관단은 7월 27일부터 8월 1일까지 배드민턴 남녀복식, 혼합복식 예선전, 남녀 탁구 예선전 2라운드, 여자 에페 단체 예선전~준결승을 관람하는 일정이었다.
2차 참관단은 8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육상 높이뛰기 예선, 배드민턴 여자단식 8강전, 양궁 남자 개인 8강~결승전을 관람하는 일정이다. 3차 참관단은 8월 6일부터 8월 11일까지 탁구 남녀복식 8강전, 태권도 남자-68kg 예선전, 여자-57kg 예선전, 아티스틱 스위밍 듀엣 예선~결승전 등을 관람한다. 여기엔 다음과 같은 경기 관람 참고사항도 명시돼 있었다.
“대한민국 출전 확정된 종목의 경기 티켓을 구입하지만, 경기 일정이 변경될 수 있고 세부 종목 일정 및 대진 등 우리나라 선수의 정확한 경기일정은 확정되지 않아 우리나라 선수 출전 경기를 참관하지 못할 수 있음.”
1~3차 참관단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통일정들도 있었다. 문건에 따르면 차수별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으로 ‘선수촌 또는 급식센터 견학’, ‘코리아하우스 등 방문’, ‘시설견학’, ‘숙소 체크아웃 후 문화탐방’ 등 일정이 계획돼 있었다.
1~2차 참관단은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를 이용했고, 3회차 참관단은 대한항공 여객기를 이용했다.
문건엔 숙박에 대한 안내도 있다. 숙박 장소는 ‘메흐큐어 파리 웨스트 생제르망 호텔(Hotel Mercure Paris Ouest Saint-Germain)’이었다. 회차별 4박 숙박이며 조식이 포함돼 있는 옵션이었다. 눈에 띄는 조건은 1인 1실이 제공된다는 점이었다. 숙소로부터 도보 5분 거리 내에 공원과 성이 있고, 도보 10분 거리 이내 식당가 및 상점이 많다고 소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일요신문은 2024년 상반기 대한체육회가 참관단 참가 신청을 받을 당시부터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한 제보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비행기 티켓 값만 내고, 파리 현지에서 숙식 및 경기관람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참관단 세부일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서 “관련 내용을 공식채널 민원을 통해 대한체육회에 질의했다”고 했다.
제보자는 민원을 제기하며 “원하시는 분은 왕복 항공권만 자비로 부담하고 체류 기간 중 숙식은 대한체육회에서 부담한다고 한다”면서 “몇 분이 가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숙식비용이 별도 예산으로 책정돼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제보자는 파리 올림픽 선수단에게 책정된 금액을 돌려서 쓰는 것인지, 아니면 책정된 예산에서 출전하지 못하는 종목 예산을 돌려쓰는 것인지 여부를 물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지 지자체 체육회장(및 고위관계자)들을 동계, 하계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에 대동하는 이유를 모르겠으나 그 역시 체육 사유화 작업의 일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민원에 대한 답변서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측은 “2024 파리 올림픽 참관단은 대한체육회 임원 및 지방체육회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국제종합대회 참가 기회를 제공해 국제경기대회 개최 및 운영 노하우를 습득하고 대한민국 선수단 응원 및 격려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대한체육회 측은 “항공료(보험료 포함)는 참가자 자비 부담이며, 경기 입장권 및 체재비 등 현지 소요 비용은 (대한체육회가) 전액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대한체육회 측은 “참관단 운영 예산은 정부지원금이 아니”라면서 “참관단 예산 전액 참관단 지원을 위한 기부금으로 운영함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였다.
한 지자체 체육회 관계자는 “대한체육회 참관단 지원사업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궁금하다”면서 “이제 곧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펼쳐지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3선 연임을 도전하려는 상황에서 회장 선거 유권자인 지자체 체육회장들을 향한 금권선거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지자체 체육회 관계자는 “참관단 파견은 상당히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사항”이라면서 “메가 스포츠 이벤트 현장을 직접 체험한 뒤 국내 스포츠계에 도입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참관단 파견을 대한체육회장 선거와 연결짓는 것은 체육계 내부 정치적 움직임”이라면서 “참관단 파견을 고위급에 치중된 것이 아니라, 젊은 차세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훨씬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기부금으로 참관단 파견을 지원했다더라도, 기부금을 기부한 사람이 ‘올림픽 관광’을 지원하려 기부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 위원장은 “정작 국가대표 트레이너는 돈이 없어서 못 쓴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수량이 모자라 AD카드가 못 준다든지 이러고 있는데, 참관단은 가서 뭘 하는 것이냐”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참관단 파견은 일종의 관행이 돼 버렸다. 그러나 참관단이 현장에 가봐야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젊고 참신한 실무급 직원들을 세금으로 파견해 현장을 견학하게 해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은 아깝지 않다. 그러나 지금 방식은 문제가 있다. 경기를 보고, 응원을 하고 싶으면 사비로 가는 것이 맞다.”
김현수 위원장은 “지자체 체육회 고위급 관계자들을 참관단으로 파견하는 목적은 특정인의 정치력을 키우려는 목적”이라면서 “실제로 이런 파견을 다녀오면 다 같이 사이가 좋아진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