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비 70% 조달 확약, 개발부지엔 이사장 일가 땅 3400평…재단 측 “분양대금 입금되면 회수 계획”
#교육재단이 개발 시행사업 '돈줄'?
경남 김해시 진영읍 하계리 일대에선 2018년부터 현재까지 25만 3235㎡(약 7만 6603평) 규모 산업단지 개발을 위한 부동산 시행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삼영중공업이 대표 시행사로 삼영산업·일광기공·대운길산업 등이 참여하고 있다. 사업 기간은 2026년 12월 31일까지다.
김해시 등에 따르면 해당 사업에 필요한 자금은 568억 9700만 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산단 조성 및 토지 보상비만 553억 9700만 원으로 전체의 97.4%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7월 기준 105억 원이 투입된 상태다. 각 시행사들은 사업 마무리 때까지 약 450억 원을 더 투자할 방침이다.
그런데 업계에선 이들 기업의 사업 역량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표 시행사인 삼영중공업만 봐도, 2023년 매출 총액이 363억 원, 영업이익은 8억 9000만 원에 불과했다. 사업에 함께 참여한 삼영산업은 파산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 외에 일광기공과 대운길산업은 한 해 매출이 10억 원 미만으로 공시 대상도 못 된다.
막대한 개발사업 자금 출처는 관정재단으로 확인됐다.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관정재단은 이 사업에 400억 원을 조달하기로 결정했다. 전체 사업비의 70.3%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이 밖에 삼영중공업 외 3개사가 168억 9700만 원(29.7%)을 조달한다.
해당 개발사업은 분양 대신 실수요자들이 입주하는 '실수요자 개발방식'을 택했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관정재단은 사업 부지의 실수요자는 아니다. 입주 계획도 없이 자금만 지원하는 셈이다. 특이하게도 대표 시행사인 삼영중공업마저 이곳에 분양·입주 계획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관정재단은 이 비용을 삼영중공업 등에 빌려주는 대여 형식도 갖추지 않았다. 이는 결국 비영리 교육재단 법인인 관정재단이 산업단지 개발사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표면상으로만 삼영중공업 등이 사업자로 나섰을 뿐, 실질적으론 관정재단이 개발을 이끌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비영리 교육재단이 이러한 개발사업을 할 수 있는지 여부다. 공익법인 설립운영법 및 서울시 공익법인 업무편람 등에 따르면, 교육재단은 목적사업 외에는 다른 일을 벌이거나 돈을 지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관정재단 정관과 법인등기부 등에도 사업 목적에 부동산 임대업은 있으나 시행·개발사업 등은 없다.
#서울교육청 상황 파악 나서
다음 관심사는 관정재단이 산업단지 개발사업을 사실상 주도하는 까닭에 쏠린다. 일각에선 개발 부지에 이석준 관정재단 이사장과 부인 양 아무개 씨의 땅이 포함된 사실에 주목한다. 이 이사장은 대표 시행사인 삼영중공업 회장이기도 하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이 이사장과 양 씨는 이곳에 최소 1만 1218㎡(약 3400평) 규모 부동산을 갖고 있다.
이 땅 처분은 이 이사장의 중요한 과제였다. 그는 부친인 고 이종환 전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재산 상당액을 관정재단으로 귀속시킨 탓에 상속받을 수 있는 재산이 많지 않았다. 이종환 전 회장은 생전에 이 땅 실소유주가 본인이며 이 이사장에겐 명의만 신탁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던 중 이종환 전 회장 건강이 악화하자 일부 측근들은 해당 부지를 이 이사장한테서 제 값에 매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상속에 관한 이 이사장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목적이었다. 2023년 8월 15일 서남수 당시 관정재단 이사(전 교육부 장관)가 이종환 회장에 보고한 녹취록엔 이런 내용도 있다.
"이석준 대표는 어차피 회장님한테 받을 게 없다고 생각할 테니 타협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중략) 회장님, 김해 산단의 이석준 대표 땅이 현재 감정평가를 하면 평당 약 70만 원 되지 않습니까. (중략) 이걸 빼앗지 마시고 사주시는 게 가장 깔끔할 듯합니다."이종환 전 회장은 상속 문제를 풀지 못한 채 2023년 9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결과적으로 이 이사장의 김해 땅은 개발사업 시행사인 삼영중공업과 자금조달을 맡은 관정재단 등이 사주는 격이 됐다. 이 이사장 입장에선 처분이 곤란했던 땅을 본인이 대표인 기업과 재단에서 개발과 매입에 나서준 셈이다.
관정재단 관계자는 "재단이 개발 사업을 주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종환 전 회장께서 작고하시고 삼영중공업 등도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현실에서 인허가와 사업 속도를 높이고자 관정재단이 선급금 지급 형태로 자금 조달을 확약했을 뿐이다. 이후 분양대금 등이 들어오면 다시 회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석준 이사장 등이 토지 매각 등으로 이익을 본다는 점 역시 오해"라면서 "사업 시행사들이 이 이사장 토지를 매입할지, 분양을 위한 사용 동의서만 받을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업부지엔 (이석준 이사장 부부 명의 땅도 있지만) 관정재단 땅도 있고, (공익법인의 기본 재산이 아닌) 보통 재산을 사용하므로 목적 사업이 아니더라도 돈을 쓰는 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관정재단 관리·감독 주무기관인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일요신문 취재 과정에서 이번 사안을 접하고 상황 파악에 나섰다. 관정재단 측에 사업 참여 경위 등을 소명하라고 8월 20일 요구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공익법인은 재산 임의 처분이 안 된다"며 "재단에는 우선 이 부분을 주지시켰고, 관련 절차도 다시 밟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종환 전 회장이 설립해 이 이사장도 경영에 참여했던 삼영산업은 지난 3월 낸 파산신청이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애초 김해 산업단지 조성 사업도 삼영산업이 대표 시행사였지만 경영 위기를 겪은 탓에 삼영중공업이 전면에 대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삼영산업은 회사 재산 대부분을 관정재단 소유로 넘기며 파산 위기에 봉착했다.
관정재단은 생전 '1조 기부왕'으로 불린 이종환 전 회장이 세운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현재 누적 장학생이 1만 2000명에 달하고, 박사학위 수여자도 750명 수준이다. 이들에게 지급한 장학금액은 27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총 자산 규모가 1조 원을 넘어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으로 꼽힌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