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주목…4조 원 우선주 처리 문제도 숨은 변수
#불공정 논란 속 가결…일반주주 선택 배경
지난 8월 27일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에서는 SK E&S와의 합병 안건이 85.75%로 가결됐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은 1 대 1.19다. 합병기준 주가의 주당순자산가치(PBR)는 각각 0.46배, 1.62배다.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은 시가로, 비상장사인 SK E&S는 수익가치와 자산가치 혼합한 기준을 적용했다. ‘SK이노베이션은 저평가, SK E&S는 고평가’라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최대 기관투자자로 분류되는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행법에서 상장사라도 기준 주가가 순자산 가치에 미달한다면 자산가치를 적용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기준 주가를 2배 이상 높일 수도 있었지만 선택하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SK E&S 주식 인수를 위해 더 많은 신주를 발행하면 그만큼 보유한 지분 가치가 희석된다. 반대로 SK E&S 주주는 그만큼 더 많은 SK이노베이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SK이노베이션 지분 36.22%를 가진 최대주주는 SK E&S 지분 90%를 가진 SK(주)다. SK(주)는 SK이노베이션 주주로 손해를 봐도 SK E&S 주주로서는 득이 될 수 있다.
50%에 달하는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들이 대주주 손을 들어준 이유는 무엇일까. 합병 효과에 대한 기대일 가능성이 크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자회사인 SK온의 경영부진으로 고민이 깊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시설을 짓는 데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데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누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 상반기 영업적자만 1조 2000억 원이 넘을 정도다. 무이자 자본조달이 가능한 상장이 어려워지면서 우선주 발행, 영구채 발행에 이어 급전에 해당하는 기업어음(CP)까지 발행하며 자금을 조달해야 할 정도다.
SK에너지도 감당이 어려워지면서 SK그룹으로서는 돈 잘 버는 계열사들을 SK온에 묶어 재무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다.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 입장에서는 합병 비율이 다소 불리해도 이후 재무개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찬성표를 던질 만도 하다.
#‘양날의 칼’ 매수청구권…숨은 변수는?
SK이노베이션이 공시한 매수청구권 가격은 주당 11만 1943원이다. 현재 SK이노베이션 주가는 10만 6800원이다.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시가보다 높은 값에 지분을 팔 수 있다. 국민연금 보유지분 모두 매수청구되면 액수가 6817억 원에 달한다. 다른 소액주주까지 합세하면 SK이노베이션이 계약을 해지하거나 합병 조건을 변경할 수 있는 한도 8000억 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기존 상한선을 1조 4000억 원으로 높일 준비가 돼 있다며 강행 의지를 확인했다. 그만큼 SK온의 사정이 절박함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매수청구권의 재무 부담을 반영한 듯 주총에서 합병이 가결된 후 SK이노베이션 주가가 되레 더 하락했다.
국민연금의 매수청구권 행사 여부 결정은 합병법인의 향후 기업가치 개선에 대한 판단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합병비율 논란에도 불구하고 SK이노베이션에 긍정적이라면 매수청구권까지는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합병의 경영개선 효과가 제한적이라면 매수청구권으로 투자를 회수하는 선택이 가능하다. 전자는 SK이노베이션의 재무부담을 줄여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만하다. 반대로 후자라면 SK이노베이션의 재무부담은 물론 향후 경영개선 전망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SK E&S는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상대로 2021년(1차)과 2023년(2·3차) 총 세 차례에 걸쳐 3조 1350억 원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했다. 2019년과 2020년 모기업인 SK(주)가 대규모 배당으로 현금을 가져가면서 상장이 어려워졌고, 수소와 해외 가스전 등 새 먹거리 사업 투자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지 못하게 돼서다. 일종의 고리대다.
SK는 이 우선주를 이번 합병 대상에서 제외하고 합병 완료 전까지 유상감자, 상환, 기타 여러 방안을 통해 소멸시키기로 했다. 합병비율을 소멸을 전제로 산정했다는 뜻이다. 소멸되지 않으면 선행조건 불충족으로 이번 합병은 무산된다. 그런데 우선주 소멸을 위해 필요한 돈이 투자 원금에 보장수익률을 더해 무려 4조 3000억 원에 달한다. SK가 선택한 방법은 도시가스 계열사의 자산재평가다.
SK E&S는 장부가 6000억 원인 6개 도시가스사 지분을 이엔에스씨티가스라는 신설법인에 2조 6000억 원에 양도했다. 장부가만 4600억 원이 넘는 부산도시가스도 비슷한 방법으로 넘길 것으로 보인다. 장부가 1조 원의 7개 도시가스사 지분으로 4조 3000억 원의 채무를 막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약 3조 원의 자산재평가이익이 발생한다.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등이 부과될 수 있어 SK의 대응이 주목된다. 세 부담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SK E&S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도시가스 부문이 KKR로 넘어가면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 효과도 반감된다. 국민연금의 매수청구권 행사 여부도 SK와 KKR의 거래구조와 효과를 예의주시할 가능성이 크다.
최열희 언론인